면세점 비리 볼수록 가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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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면세점 수 늘리라는 대통령… 기초자료 왜곡한 청와대 수석실·기재부·관세청

“한마디로 참담하다. 수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감사원이 지난 11일 발표한 관세청의 면세점 선정 감사 결과를 지켜본 공직사회의 반응이다.

갑자기 면세점 수를 늘리라는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기획재정부, 관세청 관료들은 이를 이행하기 위해 기초자료를 왜곡했다. 관세청장은 직접 자료 파기를 지시했다. 과거 관세청 직원들은 면세점 입찰에 참여한 업체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가 탈락 직전에 팔아 부당이익을 챙겼고, 면세점 입찰 참여업체에 향응을 제공받기도 했다. 면세점 입찰비리는 ‘윗선부터 아래까지’ 들여다 볼수록 가관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 2015년 호텔롯데는 면세점 심사에서 두 차례 부당 탈락했다. 최근 재판에서 2016년 신규 면세점 허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로 시작됐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감사원 감사 결과 2015년 호텔롯데는 면세점 심사에서 두 차례 부당 탈락했다. 최근 재판에서 2016년 신규 면세점 허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로 시작됐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관세청 직원들 입찰 참여 업체 주식 되팔아

최근 진행되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뇌물 혐의 공판. 면세점 업무를 담당한 관세청 김모 과장이 지난 7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과장은 “2015년 11월 시내면세점 특허 재심사에서 롯데와 SK가 탈락하자 이듬해 초 청와대에서 ‘면세점 특허를 추가할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이런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관세청 내에서 시내면세점 특허를 추가할 계획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면세점 선정비리의 출발은 청와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초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 특허를 발급하라고 지시했다. 2015년 말 롯데와 SK가 면세점 특허 재심사에서 탈락한 직후였다.

시내면세점 특허 발급은 관세청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 방문자 수가 전년 대비 30만명 이상 증가하는 등 시내면세점 추가 설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 가능하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의 지시를 받은 당시 기획재정부 최상목 1차관은 담당부처인 관세청과 협의를 거치지도 않고 2016년 1월 6일 이를 이행하겠다고 보고했다. 관세청에는 1월 말에 가서야 사후 통보했다. 2016년 2월 김낙회 전 관세청장은 안종범 경제수석에게 3개의 특허를 추가 발급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이후 기재부에서는 관세청에 특허 수를 1개 더 늘려 4개로 검토하자고 요청했다. 사실 당시 용역 결과 면세점 특허를 발급할 수 있는 최대치는 1개였다.

그러나 관세청과 기재부는 ‘4개’ 숫자를 맞추기 위해 기초자료 조작에 나섰다. 관세청이 사용한 근거는 2013년 대비 2014년 서울 외국인 관광객 증가분이었다. 그러나 이는 이미 한 해 전인 2015년 신규 특허 3개를 발급하면서 사용한 데이터다. 원칙대로 하면 관세청은 2015년 외국인 방문객 통계를 사용해야 한다. 2015년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기는커녕 줄었다. 이를 검토한 관세청은 김낙회 전 청장의 지시로 관련 보고서에서 이 내용을 삭제했다. 기재부도 ‘가짜 근거’를 만들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기재부 이모 전 관세제도과장은 “청와대의 의중을 돕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진술했다. 답을 미리 정해놓고 연구결과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관세청은 또 매장당 적정 외국인 구매고객 수를 용역 결과인 70만명 또는 84만명 대신 50만명(2012년 매장당 평균 외국인 고객 수)으로 적용했다. 현재 점포당 매장면적을 산출하면서 2015년 11월 후속사업자로 선정된 매장면적(2만2617) 대신 이미 특허 만료된 매장면적(1만2553)을 포함해 현재 면적을 작게 산정하기도 했다. 면세점 특허 수를 올리기 위한 허위명분을 만든 셈이다.

최순실씨, 천홍욱 관세청장 임명 개입 의혹

감사원 감사 결과, 관세청의 면세점 행정은 2015년 ‘1차 면세점 대전’ 때도 부적절했다. 당시 3개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평가점수를 잘못 계산한 것이다. 서울세관은 ‘세관장 검토의견서’에 신청업체의 매장면적과 공용면적을 기재하면서 한화 측의 공용면적을 매장면적에 포함시켰다. 한화 이외 6개 신청업체의 경우 매장면적과 공용면적을 구분해 작성했다. ‘법규 준수’ 평가항목에서는 ‘보세구역 운영 점수’와 ‘수출입업체 점수’를 평균해서 계산해야 했는데 ‘수출입업체 점수’만 인정, 과다 산정했다.

반면 호텔롯데 측은 총 190점 적게 계산됐다. ‘중소기업 제품 매장 설치비율’ 항목에서 전체 매장면적 중 중소기업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면적의 비율을 기준으로 점수를 부여해야 하는데도 호텔롯데의 경우에만 전체 매장면적 중 중소기업 제품 판매 ‘영업면적’ 비율을 적용했다. 호텔롯데의 중소기업 제품 매장 설치비율은 35.68%가 아닌 19.98%로 산출돼 잘못된 점수로 평가를 받은 것이다.

2015년 11월 후속사업자 선정에서도 롯데월드타워점 특허심사에서 2개 계량항목의 점수를 부당하게 산정해 호텔롯데는 191점을 적게 받고, 두산은 48점을 적게 받아 결국 두산이 선정됐다. 당시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 점수에서 관세청은 최근 5년간 실적을 제출하라고 공고해놓고 실제로는 최근 2년간 실적만 반영했다.

2015년 두 번의 시내면세점 특허 신청 과정은 세간에 논란이 많았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당연히 이슈였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받자 14일 퇴직한 천홍욱 전 관세청장은 “업체에 반환해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사업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관세청 직원들은 본청에 보관하던 서류를 해당업체에 반환하고, 서울세관에 보관하고 있던 선정업체의 신청서류 1부는 반환(1부는 보관)하고 탈락업체의 신청서류 2부는 파기했다.

문제는 천 전 관세청장이 최순실씨와도 연관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천 전 청장은 지난해 5월 관세청장에 임명됐다. 관세청장은 통상 기재부 세제실장을 역임한 인사가 가는 자리였기 때문에 파격이었다. 그는 2015년 3월 관세청 차장을 끝으로 퇴직한 상황이었다.

‘최순실 특검’에서 최순실씨는 천 전 청장 임명 이후 만나 “민간인 신분이 관세청장이 되기 쉽지 않다”고 말했고, 천 전 청장은 최씨에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가 임명과정에 개입했다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번 감사원 감사에서는 2016년 초 신규 특허 공고가 되는 과정까지만 다뤄졌다. 2016년 5월 천 전 청장 임명 이후 이뤄진 3차 면세점 심사과정까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최씨의 입김으로 자리에 앉은 천 전 청장이 임명 이후 어떻게 평가가 됐을지 추후 감사를 통해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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