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의 채취 기간 연장에 동의하자, 부산경남지역 어민들 분노 목소리
“지난 10년간 정부는 수수방관했던 것 아니냐. 이번만큼은 절대 물러나면 안 된다. 전국 바다에 선박을 띄워서 ‘바다 촛불’을 만들어야 한다.”
2월 28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수협중앙회 경남지역본부에 모인 20여명의 부산·경남지역 수협조합장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남해안 배타적경제수역(EEZ) 바닷모래 채취단지에서 3월 1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1년간 650만㎥의 모래 채취를 허가한다고 고시했다. 해양수산부가 모래 채취 허가에 동의를 해준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정부는 모래 채취 허가가 나면 어민들의 반발이 수그러들 줄 알았다. 오판이었다. 어민들의 반발은 더 거세지고 있다. “이번에도 또 속았다”는 피해의식은 ‘집단행동’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날 수협조합장들은 법원에 정부의 골재 채취 허가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해상시위를 계속하기로 결의했다. 정부가 남해안 EEZ에서 바닷모래 채취 금지를 약속할 때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인 것이다.

어선들이 2월15일 부산 남항에서 바닷모래 채취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걸고 출항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항만용이라더니 민수용으로 쓰기 시작”
남해안 EEZ 골재 채취는 2008년 시작됐다. 해양수산부가 없어지고 국토해양부가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국토부는 부산신항 등 국책사업에 필요한 모래를 조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국책사업에다 항만용이라니까 어민들은 순순히 동의했다. 골재 채취 기간은 2008년 9월부터 2010년 8월까지 2년이었다. 첫해 남해 EEZ에서 파낸 바닷모래는 280만㎥였다. 이듬해인 2009년은 375만㎥였다. 2010년 9월 정부는 2년 4개월간 허가기간을 1차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 1월에는 2차 연장이, 2015년 9월에는 3차 연장이 이뤄졌다. 문제는 연장이 될수록 파내가는 모래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점이다. 2013년 모래 채취량은 927만㎥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1167만㎥까지 늘어났다. 2008년 한 해 채취량의 4배가 넘는다. 모래 채취량이 이처럼 확대된 것은 민수용으로도 쓰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파낸 모래의 85%는 민간용으로 쓰였다. 남해안 EEZ의 모래는 부산·울산·경남지역의 건설사업자에게 저렴하게 제공됐다. 지난해 부산·울산·경남에서는 1795만㎥의 모래를 썼는데, 이 중 57%인 1027만㎥가 남해안 EEZ에서 공급됐다. 이 지역의 모래는 낙동강 하천에서도 조달됐다. 하지만 2012년 4대강 사업이 마무리된 이후 낙동강의 하도 안정화를 위해 모래 준설이 금지됐다. 점점 바다에 기대는 양이 많아지자 바닷모래 채취가 레미콘·골재업자의 배만 불린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레미콘업계는 지난해에만 5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등어 등 어획량 급감 어민들 불만 고조
어민들의 불만의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것은 고등어, 멸치 등 연근해 어획량 급감이었다. 지난해 어획량은 92만톤으로 44년 만에 최악이었다. 특히 경남의 어획량 감소는 심각했다. 고등어는 2011년 1만2000톤에서 지난해 8000톤으로, 멸치는 15만2000톤에서 7만3000톤으로 어획량이 줄었다. 참조기는 같은 기간 2900톤에서 200톤으로, 어획량이 무려 10분의 1로 축소됐다.
어민들은 연근해에서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원인으로 남해안 EEZ의 모래 채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류들은 바닷속 모래에 산란을 한다. 모래를 퍼내면 산란장이 파괴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어민들의 생각이다. 특히 바닷모래는 펌프준설선을 이용해 퍼올리는데, 이때 바다밑은 물론 표층까지 부유물질이 발생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측은 “일본 오카야마현의 경우 1970년대 바닷모래 채취가 급증하면서 까나리 어획량이 급감했지만 2003년 4월부터 모래 채취가 전면 금지되면서 어획량이 늘었다”며 “바닷모래 채취로 인한 어업피해 및 채취 금지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어민들을 더욱 자극시킨 것은 육상에 쌓아둔 모래가 넘쳐난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퍼냈던 모래가 경기도 여주에는 3500만㎥ 쌓여 있다. 지난해 남해안 EEZ에서 퍼낸 모래 기준으로 보자면 무려 3년치의 양이다. “바닷모래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건설업계와 국토교통부의 주장을 어민들이 믿지 못하는 이유다. 국토부는 여주의 모래는 사용처와 멀리 떨어져 있어 운송비가 많이 들고 운반 때 분진 발생 등 환경문제가 있어 경제성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모래는 1㎥당 1만3000원가량 하는데, 50㎞ 단위로 운송이 추가될 때마다 1만원의 수송비가 추가된다. 사실상 가격이 두 배로 뛰는 것이서 시장에서 외면당한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여주 모래가 수도권에서 50㎞ 범위였으면 이미 소진이 됐을 것”이라며 “정부가 비용을 보조해주는 방안도 있지만 법적 근거가 없고, 예산이 없어 지원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어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는 것은 뜨뜻미지근한 해양수산부의 태도다. 해수부는 어민들의 반발이 2월 초 본격화된 이후 사태 해결을 위해 전면에 나선 적이 없다고 어민들은 생각하고 있다. 해수부의 성의 없는 태도는 2월 27일 골재 채취 협의내용 브리핑에서 드러났다. 이날 브리핑은 장·차관도 아닌 국장급 비공식 브리핑으로 이뤄졌다. 해수부 측은 “해수부는 허가부처가 아닌 협의부처여서 주도적으로 브리핑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허가부처인 국토부는 브리핑을 아예 하지도 않았다. 어민들 입장에서는 철저히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해수부가 아예 처음부터 국토부랑 협의를 해주겠다는 전제로 이번 사안을 바라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해수부는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당초 국토부가 신청한 모래 채취량은 연간 1278만㎥였지만 이의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는 것이다. 또 채취 해저면을 10m 이내로 제한하고, 봄·가을 산란기에는 채취를 중단하는 등 부가조건도 붙였다고 말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모래 채취 반대 주장에 십분 공감하지만 정부 부처로서 마냥 반대만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모래 채취가 안 되면 부산·울산·경남지역의 건설업이 어려워진다는데, 이를 외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민들은 반박하고 있다. 정부가 허가해준 650㎥가 결코 적은 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15톤 덤프트럭 65만대 분량으로, 700가구 아파트 단지 65개를 지을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10만㎥가량의 모래로 700가구 아파트 단지 1개를 지을 수 있다. 수협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수협이 이렇게까지 나서는 것은 그만큼 어민들이 절박하다는 것”이라며 “이번에 또 이런 식으로 허가를 해주고 넘어가면 내년에 골재 채취 논란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