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제연구소에서 서울의 아파트 대출현황을 분석해보니 3분의 1 이상이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만약 경매로 넘어갈 경우 집주인은 한 푼도 찾지 못할 수 있는 ‘깡통주택’이거나,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온전하게 돌려받기 어려운 ‘깡통전세’로 나타난 것이다.
인천의 홍모씨는 2012년 3월 집안의 사업 실패로 채무가 불어나자 다섯 가족이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그는 길거리 전단지를 보고 공인중개소를 찾아갔다. 주위의 도움으로 마련한 보증금 2000만원으로 2년짜리 전세를 얻었다. 시가 4억1000만원짜리 아파트인데 채무가 많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상 1600만원까지 보증금을 보호받는다’는 말을 믿고 계약했다. 그러나 이듬해 5월 근저당권자의 요구로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갔다. 소액임차인으로 1600만원을 배당받았으나 근저당권자가 이의를 제기했다. 판사도 혹시 홍씨가 조직적으로 돈을 노린 ‘가장임차인’ 일당일 수 있다고 의심했다. 게다가 이 아파트에는 3건의 근저당권(채권최고액 3억408만원, 9600만원, 4800만원씩)이 있었다. 모두 4억4808만원으로 시가를 넘는 ‘깡통주택’이었다. 이외에 2건의 가압류등기도 돼 있었다. 그나마 권리신고 및 배당요구 신청서에 잔금지급일보다 확정일자 신고가 3일 앞서 있었다. 덕분에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소액보증금은 챙길 수 있었다. 홍씨 사례는 아무리 적은 보증금이라도 까딱하면 ‘깡통전세’에 노출될 위험이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부동산시장에 예고된 ‘경고등’이 켜졌다. 바로 과도한 주택담보대출이다. 대출을 안고 집을 사는 대열에 끼지 못하면 시대에 뒤처진다는 세태를 자문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정부가 대출 조건을 완화해준 뒤 1년 반 만에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60%가 넘는 대출이 63조2000억원(89.8%)이나 급증했다. 거의 1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대출금은 기본, 여기에 사실상 ‘빚’인 전·월세보증금까지 더해서 집의 잔존가치를 계산해야 더 정확하다. 특히 이른바 ‘갭(gap)투자’라며 보증금을 끼고 수천만원만 얹어서 집을 사는 사람도 요즘 늘었다. 투자자는 물론 세입자도 돌다리를 두드리는 자세로 최악의 상황에까지 대비해야 할 때다.

경기도 분당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 전경을 항공기에서 촬영한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지역 아파트 3분의 1 이상은 경매에 들어가면 집주인이 원금을 한 푼도 찾지 못하는 깡통주택이거나,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다 돌려받기 어려운 깡통전세 위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서울 아파트 10채 중 1채 이상이 현재로서도 집주인의 대출금과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나면 남는 게 없거나 빚이 더 많은 상태로 조사됐다.
선대인경제연구소는 올해 1~3월 서울의 2810가구를 대상으로 ‘등기부등본상 근저당설정액과 전세보증금액의 합계가 주택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조사했다. 연구소는 이를 ‘LTV2’로 이름 붙였다. 선대인 소장은 “기존에 통용되는 LTV는 금융권 담보대출만 보기 때문에 현실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주택담보대출액 대신 ‘근저당설정액’을 기준으로 한 이유는 경매 처분 때 금융업체가 채무 상환을 강제할 수 있는 한도인 근저당설정액을 차감한 뒤 후순위로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어서다. 다만 전세보증금은 개별 아파트마다 확인하기가 어려워서 최근 3개월(올 1~3월) 전세 실거래가 평균을 일률 적용했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주택 가격도 최근 3개월 실거래가 평균치다. 연구소 분석 기준인 LTV2는 ‘경매에 넘어갈 경우 근저당설정액을 제하고 전세보증금도 빼고 남는 실제 주택의 가치’에 가까운 척도로 보면 된다.
대출금에 임대보증금까지 빚으로 봐야
선대인연구소는 이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서울의 2810가구 아파트 가운데 비교적 전세금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LTV2 80% 미만은 1831가구로 65.2%였다”고 5일 밝혔다. 반면 LTV2 80% 이상은 979가구로 34.8%를 차지했다. 연구소는 “이는 전체 아파트의 3분의 1 이상이 경매에 들어갈 경우 집주인이 원금을 한 푼도 찾지 못하는 ‘깡통주택’이거나,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온전하게 돌려받기 어려운 ‘깡통전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선대인 소장은 “현재 서울의 아파트 경매 낙찰률은 91%를 넘지만, 만일 집값 하락기에 접어들어 경매량이 몰리면 떨어지고 유찰을 거듭할수록 가치는 더 하락한다”고 말했다.
LTV2 분포별로는 80~90% 미만이 504가구(17.9%)로 가장 많고, 이어 70~80% 미만이 365가구(13%), 60~70% 미만이 300가구(10.7%)로 나타났다. 특히 조사 대상의 13.5%인 379가구는 LTV2 비율이 100% 이상이었다. 이 비율이 140% 이상인 곳도 119가구(4.2%)나 됐다.
연구소는 “LTV2가 100% 이상이라면 현재 수준의 주택 가격으로도 주택 소유자가 금융권에서 빌린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나면 남는 게 없거나, 그러고 나서도 청산해야 할 빚이 더 큰 상태”라고 밝혔다. 그만큼 주택 소유자 부채가 과도하거나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이 불안한 상태라는 의미다.
근저당설정액만 보면 조사대상 중 1억~2억원 미만이 425가구(32%)로 가장 많고, 9억원이 넘는 경우도 96가구(7.2%)나 됐다.
서울의 조사대상 전체로 보면 부채 있는 가구가 1327가구로 47.2%였다. 이들 부채가구의 평균 근저당설정액은 3억2600만원이다. 부채가구 중에서 주인의 거주 여부로 나눠서 보면 거주하는 경우의 근저당설정액은 3억2600만원, 비거주 부채가구 근저당설정액은 3억2500만원으로 엇비슷했다.
부채가구 평균 근저당설정액 3억 넘어
서울의 강남·강북을 나눠서 봐도 차이가 드러난다. 연구소는 “상대적으로 고가 아파트일수록 부채를 가진 가구 비중이 낮은 반면 저가 아파트일수록 부채가구 비중이 높았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아파트 101동은 부채가구 비중 40%대인 데 비해 구로구 독산동 금천현대 101동의 부채가구는 64%를 넘었다.
강남(1803가구)의 부채가구는 46.2%이고, 이들의 평균 근저당설정액은 4억1000만원이었다. 10억 이상 근저당설정액인 가구도 8.7%였다. 강북(1007가구)은 부채가구 비율이 49.1%로 강남보다 높았다. 이들 평균 근저당설정액은 1억8300만원으로 강남보다는 크게 낮다. 이는 일단 집값 차이 때문이다. 강북은 근저당설정액이 3억~4억원 미만은 6.9%이고, 10억원 이상은 5가구(1%)에 그쳤다.
서울 전체로 보면 주인이 거주하는 경우 근저당설정액은 1억9600만원, 비거주자는 1억2100만원이었다. 비거주자의 부채가 적은 이유는 뭘까. 선 소장은 “세입자에게 보증금으로 전가한 격”이라며 “거주하지 않으면서 부채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세입자의 보증금을 안고서도 상당히 많은 부채를 갖고 있는 경우로, 투기성이 강하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즉 보증금은 당장 주지 않고 다음 세입자에게 받아서 ‘돌려막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부채로 인식하지 않고, 별도로 대출까지 받았다. 최근 저금리에다 전세가율 상승으로 매매가와 차이가 1억원도 안 나는 경우가 늘자 ‘갭투자’가 기승을 부린다.
또한 선대인연구소는 서울 아파트 10개 단지(강남 3, 강북 7)의 부채 실태와 전세보증금 안전도를 추가로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작은 집인 강남 도곡동 도곡렉슬 101동 161가구(59.97㎡)의 경우 담보대출 빚이 있는 가구(65세대·40.4%)보다 비부채 가구(96세대·59.6%)가 더 많았다. 부채 가구의 근저당설정액은 평균 2억5144만원이다. 부채가 있으면서 주인이 살지 않는 가구는 4억6371만원이나 됐다. 거주하지 않으면서 상당량의 빚을 내서 사뒀다는 뜻이다.
서초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103동 54세대(84.76㎡), 48세대(48.85㎡)의 경우 부채가구 비율(26.5%)은 작지만 근저당설정액은 8억1573만원이었다. 특히 비거주 부채가구의 경우 근저당설정액이 11억2366만원으로, 거주 중인 부채가구(5억2979만원)를 크게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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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주 부채가구는 세입자에 빚 맡긴 꼴
이 아파트 113동(169.31㎡)은 부채가구 평균 근저당설정액이 8억원을 넘고 비거주 부채가구는 근저당설정액만 11억7033만원이었다. 이곳 실거래가는 올 3월 28억2000만원이고, 전세보증금은 17억5000만원이었다. 근저당설정액만 보면 문제 없어 보인다. 그러나 보증금까지 더하면 실거래가를 넘어선다. 선 소장은 “이런 대형 고가 아파트도 대출을 받아 투기성으로 매매하는데, 부동산시장의 하락기에 접어들면 더 빨리 떨어질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북은 부채규모는 작아도 부채비율은 강남보다 오히려 더 높은 경우도 많다. 강북권으로 분류되는 관악구 신림동 관악휴먼시아 1단지 101동 55가구(84.97㎡)의 경우 부채가구 비율이 52.7%로 더 많다. 이들의 근저당설정액 평균은 1억8468만원이다. 특히 비거주 부채가구는 2억257만원으로 더 많다.
광진구 광장현대 3단지 301동 42가구(74.92㎡)의 경우 부채가구(59.5%)는 평균 3억4025만원의 근저당설정액이 있다. 이 동의 LTV2를 보면 100% 이상이 11가구(26.2%)나 된다. 금천구 독산동 금천현대 101동 128가구(84.83㎡)는 부채가구가 64.8%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 올 3월 실거래가는 3억6000만원이었고, 전세보증금은 2억7000만원 정도였다. LTV2가 100% 이상인 곳이 27가구(21.1%)였다.
최창우 전국세입자협회 대표는 “차익을 노리고 샀다가 생각만큼 오르지 않고 보증금을 돌려주기도 어려워지자, 세입자에게 자꾸 집을 사라고 강권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급매를 하자니 손실이 커지기 때문에 ‘나중에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세입자를 꼬드겨 집을 처분하려는 속셈이다. 또는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도 요구한다.
서울 화곡동 직장인 이모씨(37)는 올해 봄 보증금 5억원짜리 아파트(105㎡)에 전세로 들어갔다. 전세대출금 2억원까지 냈다. 이씨는 “매매가는 6억2000만원 정도다. 만에 하나 경매로 넘어가도 확정일자를 받아뒀기 때문에 큰 염려는 안 한다”고 안심했다. 하지만 이 집주인이 은행 융자는 없지만 만에 하나 사업이 망할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때 ‘체불임금’ 등은 최우선 변제를 받기 때문에 보증금을 일부라도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세입자가 많다. 최 대표는 “보증금 1억원에 확정일자를 받았더라도 경매로 가도 7000만원 정도는 건진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며 “퇴직금을 포함한 6개월치 임금을 최우선 변제로 50% 정도 떼고, 각종 세금도 우선순위여서 이들을 제하면 남는 건 별로 없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주인이 사업을 하는 경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서울 송파, 강동 같은 동남권에서는 최근 전셋값이 떨어지고 있다. 강동구 강일동의 84㎡형 한 아파트는 올해 1월 중순 4억원에 전세가 나갔으나 7월 15일 3억3000만원 안팎으로 하락했다. 실거래가(약 4억5000만원) 대비 전세가율이 88% 선에서 73%로 내렸다. 매매가가 더 높은 송파는 전셋값이 1억원 넘게 떨어진 곳도 속속 나왔다. 다만 여름 비수기여서 일시적 현상이라는 견해는 있다. 반면 이는 옆에 위례신도시와 하남 미사지구에서 1만 가구 이상 공급된 여파이기 때문에 후폭풍이 이어질지 시장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칫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토해내야 하는 ‘역전세난’이 이어질 수도 있어서다. 이 경우 세입자는 보증금을 다 돌려받지 못하고, 전세를 끼고 무리하게 집을 산 집주인도 집을 경매에 넘기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국토교통부 당국자는 “보증금도 집주인으로선 돌려줘야 할 빚이라는 관점에서 세입자나 투자자나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세입자로선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보증금 반환보증 상품이나 은행의 전세금 안심대출, 주택도시기금의 버팀목전세자금대출 같은 보완책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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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집값 움직임이 심상찮다. 올해 들어 7개월 내리 떨어졌다. 왜 그랬을까. 지난 수년간 급등했던 대구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낀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선대인경제연구소의 수도권(서울·경기·인천)과 지방 5대도시(대전·대구·부산·광주·울산) 분석을 봐도 걱정스런 대목을 볼 수 있다.
이 연구소는 대구 1374세대를 분석한 결과, 부채가구 비율이 56.7%(779가구)로 높고 이들의 근저당설정액은 2억1900만원이다. 특히 비거주 부채가구의 근저당설정액이 2억3300만원으로 전체 부채가구 평균을 웃돌았다. 선대인 소장은 “이는 투기성 투자의 단면을 보여준다”며 “분양권 전매 제한까지 풀어줘서 지방 원정을 간 투기세력이 보증금을 끼고, 대출을 일으켜 대구 아파트를 사들인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근저당설정액 구간별로 보면 2억~3억원 미만이 149가구(19.1%)로 가장 많고, 3억~4억원 미만과 1억5000만~2억원 미만이 119가구씩(15.3%)이다. 4억~5억원 미만도 40가구(5.1%)다.
대구의 부동산 담보대출 열기는 부산을 앞지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부산도 부채가구 비율이 54.3%로 더 많았으나 평균 근저당설정액은 2억900만원으로 대구보다는 낮았다. 또 부산의 부채가구 중 비거주 가구의 평균 근저당설정액은 1억9400만원으로 대구(2억3300만원) 아래다.
2010년 말~2015년 말 5년 동안 지역별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을 부동산114가 조사해보니 대구가 65.92%로 광주(47.33%)를 제치고 최고였다. 전세가도 대구는 이 기간에 91.04%나 올라 2위인 경기(67.46%)를 크게 앞섰다. 과열 징후가 있었다는 뜻이다.
최근 냉각기가 가격 조정인지, 급락의 전조인지는 더 지켜봐야 안다. KB국민은행 집계를 보면, 전국 주택 가격은 올해 들어 7월까지 0.52% 상승한 반면 대구는 2.1% 하락했다. 서울과 6대 광역시 중 올해 집값이 떨어진 곳은 대구뿐이다. 지역 종합경제지표인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지난해 대구는 44조5000억원으로 전국 1422조원의 3.1%를 차지하며 전국 11위다. 대구의 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267만8000원으로 제주(245만5000원)에 이어 전국 16개 시·도에서 두 번째로 낮은데도 집값만 최근 급등세였다.
또 울산은 부채가구의 평균 근저당설정액이 3억3800만원으로 지방 5대도시는 물론 서울(3억2600만원)보다 많아 눈길을 끈다. 울산보다 큰 곳은 강남(4억1000만원)뿐이다. 울산의 경우 부채가구 비율은 52.2%로 다른 지방과 비슷하지만 집주인이 거주하는 부채가구의 근저당설정액이 강남(4억1400만원)과 엇비슷한 4억800만원이었다. 선 소장은 “울산은 소득이 높은 도시이기 때문에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사는 데 익숙하다”며 “최근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의 실적이 좋지 않은 등 지역경제가 나빠질 경우 담보대출이 부실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세가 하락 현상은 세입자에겐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깡통주택이 늘면 피해는 서민에게 갈 수 있다. 박동수 서울세입자협회 대표는 “저금리와 노후불안에 조금만 여유자금이 있으면 부동산 투자를 안 하는 게 이상할 정도가 됐다”며 “저금리로 머니게임이 벌어지면서 집값이 오르고, 분양권 전매로 다시 실수요자 부담이 커지는 등 결국 피해는 여력이 없는 젊은 세대에게 돌아가는 구조”라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저출산·저성장 시대에 집값이 오를 수 없는데도 떠받치려는 부동산정책의 총체적 실패로, 젊은 세대에 대한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며 “야당이 집주인들 표를 의식하고 전·월세 임대료 규제를 안하는 건 상황을 잘못 짚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장지동 위례 아이파크 견본주택 옆에 일명 '떴다방'이 2013년 예비 청약자들을 대상으로 분양권 전매를 권유하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8월 초 수도권의 한 신도시 내 부동산중개업소. 서둘러 퇴근한 직장인 김모씨(40)는 한창 건설 중인 ㄱ아파트(84㎡형) 분양권 계약서를 쓰러 왔다. 몇 개월째 ‘살까, 말까’ 고민하며 전세로 돌아섰다가 다시 매매를 결심했다. 사인하는 펜 끝에 힘을 주기까지 김씨의 머리를 아프게 한 건 분양권에 얹어줄 일명 ‘P’, 즉 프리미엄 가치였다. 분양가 3억6000만원대에 프리미엄이 4400만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중개사가 막판에 황당한 제안을 했다. “공식 계약서에는 프리미엄을 500만원만 적자”고 했다. “분양권을 가진 사람이 세금을 최대한 적게 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른바 다운계약서 요구다. 억울한 이씨는 그럼 프리미엄을 100만원이라도 더 깎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럼 팔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는 이 집 말고도 분양권을 몇 개 가진 전매꾼이었다. 지불한 P가 적정한 것인지는 고스란히 그의 고민거리가 됐다.
불법적인 분양권 전매가 활개치고 있다. 사실상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자, 이때다 싶어 미분양 단지부터 몇 채씩 사들였다가 되팔아 수천만~수억원씩 목돈을 챙기는 꾼들이 기승을 부린다. 분양가의 10% 계약금만 있으면 수천만원은 앉아서 번다. 다운계약서는 상식이다. 위례신도시의 경우 프리미엄만 1억원대에다 심지어 양도세까지 분양권을 사는 사람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고양 향동지구 같은 곳의 근처에서는 당첨 직후 바로 웃돈을 얹어주고 분양권을 사들이는 투기꾼이 득실댔다.
이런 상황은 통계로도 드러났다. 올해 상반기 주택 거래에서 분양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감정원의 집계 결과, 상반기 거래된 주택 73만1603건 중 분양권 거래량(전매·최초분양 검인 합계)은 총 20만6890건으로 전체의 28.3%였다. 이는 주택시장이 호황이던 2006년 분양권 거래 비중(20.1%)보다도 높다. 올해 상반기 대구 아파트 거래량 2만2783건 중 54.3%인 1만2373건이 분양권 거래로 분석됐다. 지난해 상반기 41%보다도 급증했다. 대구시가 지난해 전매 분양권 4169건 중 의심사례 2008건을 조사해 보니, 275건이 위장전입으로 확인됐다. 경기 84건, 서울 51건, 부산 36건 등 다른 지역 청약통장을 사들인 뒤 주소지를 옮겨 분양권을 산 일명 ‘점프통장’들이다.
분양권 거래 비중이 커진 이유는 1순위 자격 확대 등 청약제도 변경과 규제 완화 등으로 분양물량이 급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시장이 과열·혼탁해진 데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시절 규제 완화가 주요 원인으로 평가된다. 여기에다 저금리가 기름을 끼얹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8월 기준금리를 내리고 부동산 담보대출 규제를 풀어줬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지역별로 50~70%였으나 70%로,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서울 50%, 경기·인천 60%에서 일괄 60%로 풀어줬다. 2015년 7월까지 1년 한시적으로 예고했으나 내년 7월 말까지로 또 3년째 연장됐다.
이에 주택담보대출이 급증세다. 올해 들어 기존 아파트에는 담보대출 규제가 시행됐으나, 신규 아파트 중도금 집단대출은 규제하지 않아 뒷문을 열어줬다. 이는 곧 분양권 전매의 길을 터준 꼴이기도 하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도 거들었다.
저금리는 전세의 월세 전환을 부추기며 전세난을 키웠다. 빚내서 집을 사도록 유도했다. 담보대출 규제 완화, 분양가 상한제 폐지, 분양권 전매까지 맞물리며 부동산 광풍이 ‘기획’됐다. 그 열매는 여유자금을 갖고 아파트 사냥에 나선 이들과 양도소득세로 세수를 챙긴 정부가 따먹었다. 그러나 2년 뒤 전국 아파트와 오피스텔 60만가구 이상이 남아돌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특히 수도권 일부와 대구·경북권, 부산·울산·경남권이 요주의 지역으로 손꼽힌다. 김헌동 전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 본부장은 “분양권 전매문제 등은 선분양제의 한계를 악용한 폐해”라며 “후분양제도만 정착해도 부동산시장의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