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트럭’ ‘천송이코트’ 이은 필요 이상의 과잉규제 논란 3탄
야구장에서 ‘맥주보이’로부터 생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와인 판매자는 고객이 직접 매장에 와서 산 와인을 고객집으로 부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집에서 치맥(치킨 주문할 때 생맥주도 같이 시키는 것) 배달은 여전히 안 된다.
때아닌 생맥주 규제 논란이 벌어졌다. ‘푸드트럭’ ‘천송이코트’에 이은 생활 속 규제 논란 3탄이었다. ‘규제완화’가 제일 목표인 박근혜 정부라 담당 부처인 국세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혼쭐이 났다.
4월 21일 국세청은 세종시 국세청 본청과 서울청에서 티타임 형식의 기자간담회를 불시에 열었다. 야구장에서 생맥주를 파는 ‘맥주보이’와 와인 택배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특정 사안에 대해 국세청 본청과 서울청이 동시에 기자간담회를 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국세청 서대원 법인납세국장은 “야구장 ‘맥주보이’가 야구장 내에서 생맥주는 파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며 “소비자가 매장에서 와인을 직접 결제해서 사는 경우 판매자가 택배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허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3월 28일 인천 월미도 문화의거리에서 중국 화장품·건강보조식품 유통기업인 ‘아오란그룹’의 임직원들이 치킨과 맥주를 곁들인 ‘치맥 파티’를 열고 있다. ‘치맥 파티’에서는 야외에서 생맥주를 판매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생맥주가 아닌 캔맥주가 사용됐다. / 정지윤 기자
현행법상 술은 식당이면 식당, 주점이면 주점에서만 판매할 수 있다. 국세청은 이를 근거로 매장 외 야구장은 영업장을 벗어난다고 봤다. 식약처도 술을 들고 왔다갔다 하면 병이나 술통에 이물질이 들어가 위생에 좋지 못하다고 봤다. 하지만 논란이 되자 입장을 바꿨다. 야구장 매점은 영업장을 야구장 전체로 봤고, 이동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맥주의 이동판매에 따른 오염 가능성도 작다고 봤다.
야구장 ‘맥주보이’와 와인택배는 허용
논란의 시작은 이랬다. 지난해 국회의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야구장 내 맥주와 음식 판매에 철저한 위생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건강을 생각하는 만큼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 맥주를 들고 다니며 판매하는 맥주보이를 이용한 영업이 곧바로 도마에 올랐다. ‘불량식품 근절’이 국정과제인 상황에서 관련부처인 국세청과 식약처는 국회 지적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이달 초 국세청과 식약처는 맥주보이가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4월 11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다. 식품위생법상 명문 규정은 없지만, 식품안전 관리를 위해서는 불특정 장소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판매하는 행위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식약처의 판단이었다. 국세청도 ‘주세법’을 검토해본 결과 야구장 내 이동식 판매가 금지사항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던 선례에 비춰 맥주보이 허용이 어렵다고 답했다. KBO는 “적법한 범위 내에서 주류를 판매하고, 이동식 판매가 이뤄지는 잠실·사직·수원·대구 구장에 판매 중지 요청을 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프로야구팬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셌다. KBO 사무국은 지난해부터 야구장 내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세이프 캠페인’을 실시해 왔다. 주류, 캔·병·1ℓ 초과 페트 음료는 반입이 안 됐다. 더구나 여름철에는 시원한 생맥주가 아니면 마시기 어렵기 때문에 맥주보이 금지는 사실상 음주 금지조치와 같았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맥주는 물론이고 핫도그나 도시락도 이동판매를 할 수 있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발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우리보다 프로야구 문화가 50년, 100년 앞선 미·일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을 한국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인천 ‘치맥 파티’에 방문했던 4500명의 유커들이 생맥주가 아닌 캔맥주를 마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잉규제’ 여론은 더 커졌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가 마신 맥주는 캔맥주가 아닌 생맥주였다. 유흥음식업자의 주류판매 대상을 해당 업소 내에서 직접 마시는 고객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일반 축제 현장은 식품접객업소가 없어 원천적으로 무허가 상태라는 게 국세청의 판단이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와인행사. 고객이 와인 소매점에서 산 와인을 택배로 부쳐주는 서비스는 앞으로 합법이 된다. / 연합뉴스
국세청 내부서도 “허용하자” 의견 많아
비난 여론에 깜짝 놀란 국세청과 식약처는 다시 머리를 맞댔고, 이날 맥주보이를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KBO는 4월 21일 정부의 입장을 구두로 확인한 뒤 10개 구단에 생맥주 이동판매가 가능하다는 업무연락을 다시 보냈다. KBO는 식약처에 입장이 달라진 걸 확인하는 공문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논란이 벌어진 지 10일 만이었다.
와인 판매업자가 고객이 산 와인을 택배로 부쳐주는 서비스도 지금까지는 ‘불법’이었다. 주세법상 주류는 구매자가 판매점에 직접 가서 결제하고, 물건을 자신이 가져가야 하는 ‘대면판매’만 허용된다. 인터넷이나 전화를 이용해 주류를 집으로 부쳐주는 ‘통신판매’는 안 된다. 국세청은 고객이 산 와인을 고객의 집으로 부쳐주는 것도 ‘통신판매’로 해석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11월 기획점검에 나섰다. 4월 초 대면판매 규정을 어긴 소매점 65곳을 적발해 과태료 2억6800만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맥주보이 건을 계기로 이에 대해서도 ‘통신판매를 과도하게 넓게 해석했다’는 비판 여론이 쏟아졌다. 주류에 대해 대면판매만 허용하는 것은 청소년 등이 술을 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고객이 직접 매장에 가서 술을 샀다면 청소년이 아니라는 게 증명됐다는 게 비판 여론의 핵심이었다. 국세청도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일리가 있다”며 물러섰다. 다만 논란의 여지도 있다. 왜 와인만 허용을 해주느냐는 것이다. 소주나 사케(일본 정종), 고량주 등은 이런 식의 택배서비스를 여전히 이용할 수 없다.
치맥 배달에 대해서도 국세청 내부에서는 “허용하자”는 의견이 많다. 술 판매량이 많지 않아 탈세나 유통질서를 어지럽힐 우려가 크지 않은 데다 이참에 양성화해 국민건강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불법이다 보니 밀봉되지 않은 페트병에 생맥주를 담아 치킨과 함께 배달하는 형태가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어 오히려 더 비위생적이다. 하지만 이를 허용할 경우 청소년 건강에 대한 우려가 있는 데다 담배와 달리 술 판매를 부추기는 꼴이 된다는 것이 정부의 부담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여성가족부나 보건복지부 등 관련부처와 협의가 필요한데, 그 협의가 언제 끝날 것인지는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맥주보이와 와인택배 사건은 필요 이상의 과잉규제를 만드는 관료주의의 문제를 잘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가 있으면 거기에 맞는 적절한 규제를 하면 되는데, 과다하게 규제를 덧씌운 뒤 논란이 되면 슬그머니 풀어주는 형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에게 술을 팔지 않기 위해 인증을 하려면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용카드의 경우 성인밖에 발행이 안 되기 때문에 치맥 배달 시 신용카드 결재만 허용하게 한다든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공인인증서로 성인임을 인증하게 하면 청소년 주류 판매에 대한 문제점은 쉽게 해결된다. 홍기용 한국세무학회장은 “규제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되 현명하게 하자는 것”이라며 “민간의 경제활동을 돕는다는 기본 원칙하에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의견을 각계에서 모으면 좋은 해결책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