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내부선 “경영활동 차질없어”… 외부선 “최고위 결정자 없어 한계”
“(이건희) 회장님이 건재했을 때도 삼성그룹은 계열사별로 책임경영을 해왔다. 회장님이 지난 5월 쓰러진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계열사에 주요 정책 결정을 맡기고 (이재용) 부회장님이 직접 챙겨야 할 사항만 직접 들여다보는 정도다. 그룹의 일상적인 경영활동은 전혀 차질없이 이뤄지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5개월 넘게 입원 중인 상황에서 ‘시스템의 삼성’을 수차례 거론했다. 이 회장이 건강 문제로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있지만 그룹의 경영활동은 아무런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이 지난 7월 4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 경제통상협력 포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회장이 그러했듯이 이 부회장도 그룹 경영을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과 계열사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기고 중요한 의사 결정이 필요할 때만 직접 챙긴다. 이 회장 입원 후 가동되고 있는 위기관리시스템이 특별히 없다는 뜻이다.
‘시스템의 삼성’이란 말은 삼성그룹 차원을 넘어 재계와 학계에서도 널리 인정받는 용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그룹마다 경영 특성이 있다. 특히 삼성은 총수가 오래 전부터 하는 일이 없었다”면서 “총수 부재 자체가 경영에 차질을 주지 않을 정도라면 시스템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부재로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이 바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그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 입원 이후 회장 대행 역할을 하면서 나름 독자적인 행보를 해 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 7월 두 차례나 미국 출장길에 올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삼성과 애플은 지난 8월 6일 미국 외 모든 지역에서 특허소송을 철회하기로 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전자를 상대로 한 애플의 디자인특허 침해 소송이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비록 미국 지역은 포함이 안 됐지만 그 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허 관련 소송을 상호 취하하기로 두 회사가 합의한 것은 이재용 부회장이 능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 지휘로 사업재편 속도
이 부회장은 지난 7월 시진핑 중국 주석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삼성그룹을 대표해 신라호텔에 설치된 삼성전자 홍보전시관을 안내하는 등 활동범위를 넓혀나갔다.
그룹 계열사간 사업 재편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문을 인수한 것을 시발점으로 지속적으로 사업을 재편해 왔다. 올 들어서도 삼성SDI-제일모직 합병 발표(3월), 삼성종합화학-삼성석유화학 합병 발표(4월), 삼성SDS 연내상장 발표(5월), 삼성에버랜드 내년 1분기 상장 발표(6월) 등 한 달이 멀다하고 사업 재편이 꼬리를 물었다. 9월 초에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이 발표됐다.
그룹 쪽에서는 이런 일련의 사업 재편작업을 경영권 승계의 정지작업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사업부문별 고효율화 구상, 즉 경영능력 측면에서 봐 달라고 주문한다.
이것만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문제는 삼성전자 실적이다. 올 들어 발표된 두 차례 분기 실적 모두 크게 뒷걸음질을 쳤다. 2분기 들어서는 더 심각한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2분기 매출은 52조3500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57조4600억원에 비해 8.9% 감소했다. 1분기에 비해서는 2.5% 줄었다. 영업이익도 7조1900억원으로 같은 기간 9조5300억원보다 15.3% 쪼그라들었다. 분기 영업이익이 8조원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12년 2분기 이후 처음이다.
실적 하락으로 삼성전자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해 12월 2일 150만3000원으로 최고점을 찍었으나 이후 크게 떨어져 지난 9월 3일에는 118만원까지 떨어졌다.
상황이 개선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현대증권·신한금융투자·KDB대우증권 등은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을 5조원대로 전망하고 있을 만큼 실적 악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경쟁자 애플은 아이폰6와 애플워치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는데 삼성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으니 불안감이 감도는 것도 사실이다.
이 회장의 회복이 늦어지면서 삼성전자가 대내외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 실적 하락, 주가 곤두박질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과 이 회장 부재를 연관시키는 시각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 실적 부진은 회사 자체적으로 이미 예견을 한 것으로 이 회장 부재와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다는 것이다.
장상환 경상대 경영학과 교수는 “어떤 산업에서도 후발주자의 추격은 있는 것이고 스마트폰도 예외는 아니다”라면서 “IT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엄청난 영업이익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룹 외부에서 보는 몇몇 시각은 삼성의 설명과는 조금 다르다. 이건희 회장이라는 최고 의사결정자가 일시적이나마 사라진 상태에서의 삼성그룹을 위기로 보는 시각이 그렇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마트폰 이후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사실상 이 부회장 체제에서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 부회장은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한 적이 있는 것으로 봐서 경영능력이 검증이 안 된 상태라고 봐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라면서 “이건희 회장이라는 의사결정의 절대적인 축이 사라진 상황에서 삼성이 반도체와 휴대전화에서 일궈냈던 것처럼 차세대 먹거리를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삼성그룹이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자동차용전지, 태양전지 등은 이미 제조업 시장에서 경쟁사들이 훑고 지나간 업종들”이라면서 “삼성이 인텔이나 애플처럼 원천기술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미래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이 회장의 일시적 부재가 가져올 삼성그룹의 위기를 더 심각하게 진단했다.
정 대표는 “이 부회장이 자기 생각대로 경영을 주도해 나가려면 이 회장이 건강을 되찾고 경영에 복귀해 하루 빨리 교통정리를 해주는 길밖에 없다”면서 “이 회장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권한을 앞으로 이재용이 행사한다’는 그 한마디가 지금으로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그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는 이 회장의 경영 복귀가 늦어질 경우 삼성가의 승계문제 자체도 암초에 부딪힐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계열사간 지배구조 개선 같은 문제는 패밀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인데, 이 회장의 와병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룹의 불확실성만 더욱 커질 것”이라면서 “삼성그룹의 3세 승계 향배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도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최병태 선임기자 cbta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