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학문’ 수학에 바치는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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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다룰 줄 모르는 인간은 온전한 인간이 아니다. 기껏해야 그는 신발신기, 목욕하기, 집안 정리하기나 배운 괜찮은 유인원일 뿐이다.” SF의 거장 로버트 하인라인의 말이다. 미·적분이나 수열, 함수를 떠올리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에게 수학은 혐오의 과목에 불과한데 수학을 모르면 유인원일 뿐이라니. 발끈하는 사람들 많겠다. 그러나 수학은 인간의 삶 속에, 자연 속에 오묘하게 녹아 있다. “만물의 원리는 수(數)다”라고 설파한 피타고라스의 말에 공감하든 안 하든 우리 삶이 수와 얽혀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고도의 수학적 활동을 하며 산다. 한정된 예산으로 집을 장만하고 자동차를 구입하고 금융상품 등에 가입할 때를 떠올려 보라.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을 총 동원해 추론하고 최적, 최상의 선택을 하기 위해 애쓴다. 무엇이든 눈에 보이기만 하면 셈을 하고 크기를 가늠하고 득실을 따진다. 예술 작품에는 수학적 이미지들이 들어 있고, 각종 게임에는 수학적 통계가 내재되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인 파생상품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금융상품에는 수학적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자연계는 어떤가. 해바라기씨 안에 조화로운 수학적 배열이 존재하며, 조개껍질이나 꽃잎 구조에 기하학적 황금비율이 숨겨져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8월 13일 개막하는 세계수학자대회를 기념해 발행한 ‘피타고라스의 정리’ ‘오일러의 정리’ ‘파스칼의 삼각형’ 공식을 형상화한 3종 우표. | 우정사업본부 제공

우정사업본부가 8월 13일 개막하는 세계수학자대회를 기념해 발행한 ‘피타고라스의 정리’ ‘오일러의 정리’ ‘파스칼의 삼각형’ 공식을 형상화한 3종 우표. | 우정사업본부 제공

인류 문명을 이끈 수학 천재들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극적인가. 1637년 피에르 드 페르마에 의해 처음으로 추측된 ‘페르마의 정리’는 영국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에 의해 증명되기까지 358년 걸렸다. 그동안 좌절한 수학 천재들이 얼마겠는가. 지금도 ‘리만 가설’ 등 범인들로서는 알 길이 없는 난제들을 풀기 위해 수많은 수학자들이 미로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검은 고양이를 찾아 어두운 방을 더듬거리는 맹인처럼.’

어둠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인간 지성, 지구촌 천재 수학자들이 서울에 집합한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수학계 올림픽’ 세계수학자대회(ICM)가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다. 세계 120여개국 5000여명의 수학자들이 모여 지난 4년간의 성과를 평가하고 세기 안에 풀릴 가능성이 있는 난제도 발표한다. 한국이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처음이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중국·인도에 이어 네 번째다. 개막 행사 때 발표되는 필즈상 수상자에 세계 언론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필즈상은 40세 미만의 젊은 수학자들에게 주는 수학계의 노벨상이다. 미래의 수학 발전에 크게 공헌할 수학자에게 금메달이 수여되기를 바라는 필즈의 뜻에 따라 나이에 제한을 두었다.

‘제왕의 학문’인 수학 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외 수학계가 들떠 있다. 우정사업본부도 이를 축하하기 위해 우표를 발행했다. 우표와 수학이 무슨 관계냐고 의아해할지 모르겠지만 수학과 관련된 우표는 수백 종이 넘는다. 피타고라스, 아르키메데스, 뉴턴, 아인슈타인, 가우스, 아벨, 앨런 튜링 등 수많은 천재 수학자들이 우표 속에서 부활하고 인류의 역사를 바꾼 공식들을 되새겼다. 우본이 이번에 발행한 3종의 기념우표도 수학의 대표적 이론을 형상화했다. 

첫 번째 우표는 아무리 수학에 진저리치는 사람이라도 기억하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직사각형의 빗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는 나머지 두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 두 개의 넓이의 합과 같다)이다. 두 번째는 스위스 수학자 오일러가 ‘독일의 쾨니히스베르크시 프레겔 강의 다리 7개를 하나도 겹치지 않고 건너기’에서 힌트를 얻은 ‘한붓그리기에 관한 오일러의 정리’다. 세 번째 우표는 파스칼이 열세 살 때 발견했다는 ‘파스칼의 삼각형’(서로 다른 물건 중에서 순서 없이 그 일부를 뽑는 방법의 가짓수를 삼각형의 기하학적 형태로 배열한 것)을 디자인했다. 총 100만2000장을 발행해 판매에 나섰다.

인도 속담에 ‘공작의 머리 깃처럼 수학은 모든 지식의 머리에 얹혀 있다’는 말이 있다. 모든 학문의 뿌리이자 사유와 철학의 학문인 수학이 한국에선 입시도구로 전락하고 기술과 계산 차원으로 격하된 지 오래되었다. 이번 세계수학자대회를 계기로 수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바뀌고 한국 수학의 위상이 한 단계 도약하기를 바란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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