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대표단 국내에서 실사 마쳐… “달라졌지만 아직 부족하다”
“한국이 확실히 이전과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예비불법조업국으로 지정했던 유럽연합(EU)이 한국을 보는 시각은 이렇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전한 내용이 그렇고, 한국 정부가 판단하는 분위기도 그렇다.
EU 대표단은 6월 9일부터 11일까지 2박3일간 서울과 부산을 다녀갔다. 이번 방한은 오는 11월 한국을 불법조업국으로 최종 지정할지, 아니면 예비불법조업국에서 해제해줄지를 결정하기 위한 최종 점검의 성격이 짙다. 한국 정부는 단단히 준비했다. 해양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한국의 입장과 그간 성과를 설명했다”고 말했다. EU 대표단이 방한한 2박3일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한국 정부는 EU 대표단의 일정만 공개했을 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점검을 받는 입장에서 점검 내용을 세세하게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2박3일간의 일정을 짚어봤다.

지난 10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세자르 데벤 EU 수산총국 수석 자문관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불법조업감시센터 제일 먼저 찾아
EU 대표단은 6월 8일 입국했다. 수석대표는 시저 데번 수산총국 수석자문관이었다. 이들은 9일 부산 기장군 동해어업관리단 내 원양어선 불법조업감시센터(FMC)부터 들렀다. 불법조업감시센터는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 원양어선의 불법조업 여부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곳으로, EU가 요구했던 주요 시설이다. 이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해외에서 조업 중인 원양어선 344척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
각 어선에 설치된 위치추적장치(VMS)에서 위치정보를 인공위성을 통해 센터로 보내온다. 어선의 위치와 이동경로는 1시간 단위로 조회가 가능하다. EU는 지난해 한국 내 조업감시센터를 만들고 원양어선에는 위치추적장치를 설치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미뤘다.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해 예산을 확보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였다. 또 원양업계를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EU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를 빌미로 한국 정부가 불법조업에 대한 근절의지가 없다고 보고 예비불법조업국으로 지정하는 근거로 썼다. 한국 정부는 부랴부랴 국회와 업계를 설득했다. 올 7월 완공예정이던 조업감시센터를 조기 완공하고 지난 3월 개통시켰다.
EU 대표단은 조업감시센테에서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 직접 시연을 해본 것으로 알려졌다. 한-EU 양측의 신뢰를 확인할 첫단추였다. 업계 관계자는 “EU 측에서 ‘엑설런트’하다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도 정부지만 업계도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EU의 추가적인 요구도 있었다. 단순히 조업위치 분석뿐 아니라 조업실적, 조업량 등을 여러 방법을 통해 교차확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그린피스 사무실에서 그린피스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어업국 탈출을 위한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U 대표단은 이어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을 방문했다. EU에 수출하는 수산물에 어획증명서를 발급해주는 곳이다. 어획증명서가 조업감시센터와 연계돼 운영되는 것을 확인한 EU 대표단은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대해서도 합격점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EU 대표단은 10일 서울로 이동, 해수부와 이틀에 걸쳐 양자회담을 가졌다. 한국 측 대표는 문해남 해양정책실장이었다. 한국의 불법조업 감시체계가 약하다는 EU 측 지적에 대해 한국 측은 그간 구축한 감시체계를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한국은 책임있는 조업국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EU는 지난해 11월 한국을 예비불법조업국으로 지정하면서 지적했던 문제를 재확인했다. 양측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한국 정부와 EU 대표단이 샅바싸움을 시작하던 9일, 장외에서는 그린피스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린피스는 서울 마포구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원양수산정책을 전면 개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원양산업발전법 내 8개 항목을 강화해줄 것을 요구했다. 첫째는 한국 국적자가 자본을 댄 합작어업까지 원양산업발전법을 적용하고 불법어업에 대한 책임은 실질적 소유주가 지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이어 불법어업 행위를 적발할 때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해주고, 과태료 인상과 어업허가 취소, 어구와 선박 몰수 등 징벌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또 어선위치추적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해당 선박을 즉각 항구로 귀항조치시키고, 불법어업에 대한 조사 결과를 현행 5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며, 원양어선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해 11월 EU가 한국을 예비불법조업국으로 지정하면서 지적했던 문제점들이었다. 박지현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현행 원양산업발전법은 허점이 많아 불법조업국의 오명을 씻기 어렵다”며 “실제적으로 불법어업을 근절하고 국제 수산자원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법령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린피스 “원양수산정책 전면 개혁을”
한국 정부도 원양산업발전법의 재개정 필요성을 인정한 상태다. 하지만 일부 조항에 대해선 난색을 보이고 있다. 불법조업에 대한 과태료 강화가 대표적인 예다. 현 원양산업발전법에는 불법어업이 적발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산물 가액 3배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EU는 과태료를 올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구는 경제적인 징벌을 더 중시한다. 스페인의 한 원양어선의 경우 아프리카 연안의 조업금지구역에 들어갔다가 100만 달러의 벌금을 물은 뒤 또다시 침범했다가 100만 달러를 추가로 문 적이 있다는 것이다.
불법조업으로 얻는 이익을 감안하면 200만 달러의 벌금이 결코 큰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 측의 입장은 다르다. ‘3년 이하 징역’이 한국에서는 더 큰 억지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또 원양어업에 대한 과태료를 그렇게 올리면 연근해 불법조업에 대해서도 과태료를 비슷하게 올려야 한다는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 조업구역을 침범하는 중국 어선들에 대한 과태료는 또 어떻게 매기느냐도 골치다. 한 관계자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벌금액이 다른 데다 국내 연근해어업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며 “다만 위반사항이 자주 일어나서 현재 조항의 억지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개선하겠다는 뜻을 EU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EU 측은 이번 실사에서 한국 측의 발빠른 대응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앞으로도 한국 정부가 불법어업 근절에 적극적으로 나설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사는 “지난해 왜 지금처럼 하지 않았느냐. 그랬다면 예비불법조업국으로도 지정 안됐을 것”이라는 의견도 전했다는 후문이다.
EU 수산총국이 한국의 예비불법조업국 문제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이달 말이다. 그런 다음 EU 이사회에 올려 11월쯤 최종 추인을 받는다. 보고서 결론은 세 가지다. 한국을 예비불법조업국에서 해제하느냐, 그대로 두느냐, 혹은 불법조업국으로 지정하느냐다. 결론이 이달 말 작성되는 보고서에 담기면 이사회에서 뒤집힐 가능성은 없다.
EU는 2박3일간의 한국 방문에서 무얼 느꼈을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