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책임 여파로 조직축소 불가피… 부가 아닌 처로 격하 걱정할 처지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가 부(部)가 아닌 처(處)로 격하될까. 부는 장관급, 처는 차관급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의 책임을 물어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가 ‘조직 축소’에 직면하게 됐다. 안행부는 세 조각난다. 해수부는 조직의 3분의 1이 떨어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신설되는 국가안전처와 행정혁신처는 장관급 수장이 올 가능성이 크다. 안행부와 해수부가 조직이 축소된 상태에서 위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안행부는 행정자치 업무만 집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안전관리본부는 국가안전처로, 창조정부전략실과 인사실은 행정혁신처로 이관될 것으로 보인다. 행정혁신처는 공무원 인사 업무와 행정혁신 업무, 공직자윤리 업무 등을 가져갈 것으로 전망된다. 행정혁신 업무에는 정부 3.0과 같이 현 정부 핵심 과제도 포함돼 있다. 이렇게 되면 안행부는 현행 6개실 중 3개실만 남게 된다.

5월 14일 국회에 출석한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안행부, 현행 6개실 중 3개실은 이관
안행부는 과거 총무처와 내무부가 합친 조직이다. 공무원 인사권을 확보하면서 거대 조직이 됐다. 기획재정부와 함께 ‘양대 부처’로 불릴 정도였다. 경찰 기능과 의전 기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세종시로도 이전하지 않았다. ‘외치’는 외교부, ‘내치’는 안행부(당시는 행정자치부)라면서 서울에 남았다. 중앙부처가 이전한 뒤 정부세종청사의 관리는 안행부가 했다. 그러다 보니 현실감각이 떨어졌다. 세종청사에 입주한 경제부처는 안행부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입주 초기 기반시설이 부족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안행부가 이를 즉시 반영해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청사 관리나 운용하는 곳곳에서 허점이 생겨 마찰이 컸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안행부는 더욱 힘을 얻었다. 새 정부가 안전을 테마로 내세우면서 ‘행정안전부’라는 부처 명칭을 ‘안전행정부’로 바꿨고, 국가재난관리 업무까지 사실상 가져왔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였다. 세월호 침몰 직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안전 업무와 해양 업무에 익숙지 않았던 안행부는 뒤죽박죽 브리핑을 계속했고 ‘골든타임만 놓쳤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나면서 현장 대책은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에 맡기고 뒤로 물러섰다. 이런 와중에 안행부 국장은 진도 현지에서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했다가 빈축을 샀다.
현 구상대로라면 안행부의 인원은 지금의 7분의 1까지 줄어들 수 있다. 현재 본부 인력은 1227명이지만 주요 조직들을 떼주고 나면 440여명으로 줄어든다. 제1차관 산하의 기획조정실이 105명, 제2차관 산하의 지방행정실이 201명, 지방재정세제실이 135명이다. 처급 조직이 되면 서울에 잔류하기가 어렵다. 타 부처처럼 세종시로 이전할 가능성이 크다.
해양수산부의 운명은 더 비극적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부처 통폐합으로 사라졌다가 천신만고 끝에 부활했지만 1년 만에 수산청으로 몰락하게 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박 대통령은 해수부에 대해 “해양산업 육성과 수산업 보호·진흥 역할을 하라”고 주문했다. 산하조직이던 해경은 폐지되고 전국 17개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국가안전처로 이관된다. VTS가 국가안전처로 간다는 의미는 항만관제를 해수부가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해상교통을 관리하는 해수부의 고유기능이 통째로 사라진다. 또 해양안전을 총괄하던 해사안전국은 국 전체가 국가안전처로 넘어갈 수 있다. 해상안전 기능은 지방해양항만청도 상당 부분 수행하고 있어 지방조직 축소도 불가피해 보인다. 현행 3실3국밖에 되지 않던 해수부로서는 상당한 타격이다.
해수부는 1996년 해운항만청과 수산청이 통합돼 신설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에서 출발했던 부서였던 까닭에 역대 해수부 장관은 정치인들이 꿰찼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DJP연합 과정에서 자민련 출신의 충청권 인사들이 장관 자리를 독식하기도 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해양수산부를 찢어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에 붙였다. 겉으로는 ‘작은 정부’를 내세웠지만 이면에는 ‘참여정부 지우기’ 의도도 강했다. 당시 사라진 정부조직이 해수부와 함께 기획예산처였는데 참여정부에서 ‘잘나갔던 부서’라는 공통점이 있다.

4월 2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찾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왼쪽)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말을 듣고 있다. | 강윤중 기자
해수부는 고유기능 통째로 사라져
해수부의 부활도 정치적 산물이었다. 박근혜 후보의 부산지역과 해양수산분야 대선공약이었다. 박 후보는 막판까지 해수부 부활에 대해 확답을 피했다. 그러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해수부 부활을 앞세우며 부산 민심을 파고들자 공세적으로 입장을 바꿨다. 박근혜 정부는 해수부를 부활시켰지만 통폐합 당시 수준으로 환원하는 데 그쳤다. 해양수산 출신 관료들은 조선이나 해양플랜트 등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떼어와 조직을 키우고 싶어했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이미 한 차례 폐지가 된 적이 있는 만큼 해수부가 갖고 있는 부처 통폐합의 트라우마는 크다. 기회만 되면 조직을 키우려고 한 것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부처 크기가 원래 작다 보니 매번 흔들린다는 것이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강한 장관이 오기를 바랐다. ‘외풍’을 막아주고 부처의 기반을 강화시켜 달라는 주문이었다. 만약 이런 상태로 해수부가 처로 격하되면 다음 정권에서도 생존을 자신할 수가 없게 된다. 안행부야 찢어지더라도 직원들이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나 행정혁신처로 옮겨가 자리잡으면 그만이지만 해수부는 국토교통부나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흡수된다는 점에서 해수부 직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더 커 보인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5월 20일 “해경 해체와 해수부 축소는 단순히 기관 책임을 묻는 문책이라기보다 발전적 해체와 기능 재분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경이 해체되어도 내용적으로는 해경기능 자체가 위축되는 것이 아니며, 국가안전처라는 안전 전담 조직 하에서 구조·구난·경비를 중심으로 역량을 전문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운항선박의 안전을 제고하기 위해 VTS 업무를 국가안전처로 일원화하고, 해수부는 해양산업 육성과 수산업 보호 및 진흥이라는 고유기능에 전념토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립싱크’를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 6·4 지방선거를 앞둔 공심(公心) 달래기용이라는 얘기가 세종관가에서도 나온다. 청와대가 ‘국가개조론’의 대표 사례로 국가안전처 설립을 내세웠던 만큼 향후 조직개편은 큰 폭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다. 그래야만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