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시간제 일자리

근로기준법 15·40시간 ‘악용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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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법의 맹점 파고들어 비용 절감… 노동자는 낮은 임금에 근로조건 악화

홈플러스의 점오 계약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기업이 이윤 창출을 위해서는 법의 맹점까지 파고든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방안도 기업들이 악용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교묘하게 이용해 이윤 창출을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가 사측에는 이익이지만, 노동자에게는 불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들도 잇따르고 있다.

시간제 노동자 중 25%가 초단시간 계약
모 프랜차이즈 커피숍 회사는 단시간 근로계약을 맺을 때 대부분 주 15시간 미만(월 60시간 미만)으로 계약을 맺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시간제 노동자는 보통 하루에 2~3시간 근무를 하게 된다. 기업이 이렇게 초단시간 계약을 맺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13년 1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시간제 일자리 박람회’ 행사장 내에 마련된 놀이방을 찾아 여성 구직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2013년 1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시간제 일자리 박람회’ 행사장 내에 마련된 놀이방을 찾아 여성 구직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근로기준법 제18조 ‘단시간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보면 ‘1주 동안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제55조와 제60조를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을 풀이하면 주당 15시간 미만 일을 하는 단시간 노동자에겐 휴일과 연차 유급휴가를 주지 않아도 된다. 15시간 미만 계약자는 사회보험 가입 대상에서도 배제된다.

민주노무법인 남우근 공인노무사는 “초단시간 노동자는 오히려 더 두터운 보호가 필요하다. 하지만 근무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법적용에서 배제하면서 시간제 일자리 사이에서도 양극화가 생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1주 15시간 미만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는 44만명으로 전체 시간제 노동자 중 25.1%에 달한다.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는 주당 40시간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곳은 홈플러스뿐만이 아니다. 롯데마트도 홈플러스와 비슷하게 7시간 계약이 대부분이다. 이마트는 비정규직원을 정규직화하면서 8시간 계약을 위주로 하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7시간 근무가 많은 것은 40~50대 여성분들은 몸이 약하기 때문”이라며 “일이 너무 고되면 안 되니까 7시간 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홈플러스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루 근무시간이 8시간이냐 아니냐에 따라 받는 혜택이 많이 달라진다. 근로기준법을 잘 이용한 회사는 이익이지만 노동자는 낮은 임금에 악화된 근로조건에서 일을 해야만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은 “대형마트의 경우 고객이 밀려드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사측은 8시간 노동계약을 맺는 것보다 바쁜 시간에만 노동력을 투입해 일을 시키는 것이 더 이득”이라며 “기업이 시간제 일자리를 적극 이용해 성과주의 경영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7년 7월 시행된 비정규직법 덕분에 통계상 비정규직은 줄어들고 있지만, 시간제 일자리는 늘어나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는 가만히 놔둬도 늘어나고 있는데, 박근혜 정권 들어 정부가 나서서 확대하겠다고 외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할 것이 아니라,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시간제 일자리의 취약성은 여러 수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3월 기준 시간제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175만명이다. 임금노동자 중 9.9%를 차지하고 있다. 2001년 시간제 노동자는 87만명이었다. 12년 만에 두 배가 늘어난 것이다. 비정규직 고용형태 중 시간제 일자리의 확대가 가장 빠르다.

사회보험 가입률을 보면 전체 임금노동자의 경우 60~70%로 추산된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 사회보험 가입률은 뚝 떨어져서 13~16%에 머물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퇴직금, 시간외수당, 유급휴가 등을 적용받는 시간제 노동자는 10% 내외다.

임금노동자 중 10%가 시간제 노동자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임금에서도 많은 차이가 난다. 2013년 현재 시간제 일자리 시급 평균은 7533원이다. 전체 임금노동자 임금을 시급으로 계산하면 1만1612원이다. 시간제 일자리 시급이 전체 임금노동자 대비 64.9%에 불과하고, 정규직과 대비를 하면 51.7%로 더 떨어진다.

[특집| 시간제 일자리]근로기준법 15·40시간 ‘악용의 비밀’

남우근 공인노무사는 “시간제 일자리라는 단어는 마치 시간 선택권이 노동자에게 있는 것처럼 미화하고, 노동시간을 쪼개는 것을 당연시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지금까지 통상 근로시간으로 여겨진 8시간을 무너뜨리게 된다. 기업은 이제 8시간 일자리보다는 초단시간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도 시간제 일자리는 증가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과 대책들도 많아지고 있다. 통상 노동자와 균등대우를 보장하고, 시간제로 일을 하다 전일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하는 식이다. 한국은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나 법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남우근 노무사는 “8시간 일하는 사람에게 100을 준다 해서 4시간 계약자에게 50을 주는 것은 차별이다. 단시간 계약자는 오히려 더 두텁게 보호를 해야 한다”면서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를 위해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최저임금도 높여야 한다. 전일제와 상호 전환도 가능해져야 하고, 사내복지에서도 차별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 노무사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게 필요하다. 양질은 정부에서 만들어줘야 하는데, 정작 정부는 일자리 숫자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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