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가구수 대폭 줄고 시범지구 사업추진도 낙관하기 어려워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행복주택 정책이 대폭 손질된다. 우선 목표했던 20만 가구 공급에서 14만 가구 공급으로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그나마 이는 행복주택의 개념을 확대해서 봤을 때이고, 당초 주장했던 ‘철도 유휴부지 등 국·공유지’로 한정하면 3만8000 가구까지 줄어들게 됐다.
정부는 12월 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4·1, 8·28대책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행복주택이란 직장과 주거지역이 가까운 곳에 젊은층이 사는 저렴한 임대주택”이라고 재규정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정부나 공공기관이 일반 사유지에 세워진 건물을 사들이거나 땅을 임대해 주택을 재건축한 뒤 젊은층에게 저렴하게 공급하면 모두 행복주택으로 인정된다.
행복주택은 철도 유휴부지 등 땅값이 싼 국·공유지에 임대주택을 지어 시세의 반값에 공급하겠다는 것이 원의미였다. 첫 삽도 뜨기 전에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셈이다.

4일 서승환 국토부 장관이 서울 양천구 목동 행복주택 시범지구를 찾았다. 이날 서 장관은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 서성일 기자
‘신세대 우선’ 정책은 애초부터 자충수
또 정부는 시범지구로 지정한 서울 수도권 지역 5곳(서울 목동, 잠실, 송파, 공릉, 경기 안산)에 대한 지구지정도 미뤘다. 해당지역 주민들이 워낙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연내 지구지정도 자신할 수 없다.
지구지정이 이뤄진 곳은 오류지구(1500가구)와 가좌지구(1500가구) 등 2곳이다. 그나마 오류지구에서는 국토부가 편의시설 축소방침을 밝히자 주민들 사이에 급격한 반대기류가 형성되고 있어 사업 추진을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 임대주택 공약이던 행복주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국토부와 부동산업계, 정치권의 말을 종합하면 행복주택은 애초에 주거복지 차원에서 출발한 정책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대선을 석 달 앞둔 2012년 9월, 젊은층 표심을 잡기 위해 발표된 공약이었다. 행복주택 입주대상으로 대학생,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등에게 60%를 우선 배정하기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장애인·노령자 등 사회취약계층과 일반서민들에게 각각 20%씩 배정됐다. 당시 새누리당 관계자는 “행복주택은 도심 내 역세권 등에 들어설 텐데 아무래도 젊은층 수요가 많지 않겠느냐”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층들의 집값 부담을 덜어줘 사회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게 행복주택의 취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심 이용 필요성으로 보자면 기존 서민들의 수요가 더 많다는 지적이 많았다. 임대주택은 주로 부모님을 모시고 있거나 자녀가 많은 저소득 가구주에게 제공됐다. 하지만 막상 입주하고 보면 임대주택이 도심 외각에 위치해 이동에 불편이 크다는 불만이 많았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가 있거나 아이들이 많은 가정일수록 도심에 위치시키는 것이 맞다는 얘기다.
‘젊은층 우선’ 구상의 이면에는 임대주택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도심에 대규모 임대주택을 지을 경우 주거환경이 나빠질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활력 있는 세입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신세대 우선’ 정책은 임대주택의 주요 정책목표 중 하나이던 ‘소셜믹스’를 스스로 붕괴시키는 자충수가 됐다.
![[경제]행복주택의 ‘불행한 결말’](https://img.khan.co.kr/newsmaker/1055/20131217_1055_A55a.jpg)
노무현 정부 이후 임대주택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함께 어울려 살도록 하는 ‘소셜믹스’를 염두에 두고 추진됐다. 저소득층만 한데 모아놓을 경우 슬럼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고, 사회계층간 불화가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행복주택은 신혼부부·대학생 등 ‘질좋은 서민’은 도심으로 끌어들이지만 생활이 팍팍한 서민가구는 도심 외각으로 밀어내는 효과가 발생했다.
국토부는 줄곧 “젊은층이 유입되면 동네가 더 활기차질 것”이라며 행복주택 예정지 주민들에게 주거환경이 나빠질 이유는 없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이는 “저소득층들도 함께 살도록 다소간의 불편을 이해하자”며 주민을 설득할 도덕적 명분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과가 됐다.
임대료도 ‘반값 약속’보다 더 상승할 듯
행복주택의 과도한 설계도 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통상 임대주택은 낮은 임대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고비용 건축물이나 편의시설 건축은 꺼린다. 하지만 초기 공개된 행복주택은 달랐다. 철도 선로 위에는 대규모 데크를 씌우고 도서관, 공원, 체육시설, 고령자시설, 보육시설 등을 짓기로 했다.
심지어 행복주택에 따라서는 북카페나 회의시설을 만들겠다는 구상도 있었다. 정부는 의욕적으로 ‘행복주택은 기존 임대주택과 다르다’며 차별화에 나섰지만, 이는 주민들의 기대심리를 크게 부풀려버린 결과가 됐다. 정부가 최근 구로구청에 “당초 계획보다 데크를 덧씌우는 면적을 줄이고 편의시설 등을 축소하겠다”고 밝히자 주민 여론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처음 약속과 다르다는 것이다.
![[경제]행복주택의 ‘불행한 결말’](https://img.khan.co.kr/newsmaker/1055/20131217_1055_A55b.jpg)
행복주택에 대한 무리한 약속은 가뜩이나 빈약한 정부의 돈주머니에 부담을 키웠다. 기획재정부는 행복주택 3.3㎡당 500만~600만원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수공법을 적용해 건설비가 많이 드는 상황에서 3.3㎡당 500만~600만원으로 주민편의·복지시설을 짓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민주당 박수현 의원의 분석으로는 3.3㎡당 1670만원이 드는 것으로 추정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편의시설들은 임대료로 충당할 것이기 때문에 전체 공사비에서 편의시설은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도서관, 공원, 고령자시설 등 공공 복지시설이 많아 큰 폭의 임대료 수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편의시설을 짓는 데 들어간 비용은 입주자 임대료에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토부는 행복주택의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70~80%가량은 받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애초 약속은 반값 임대료였다. 최초 구상 때보다 임대료를 더 받기로 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지역 임대 시세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속내는 딴 데 있다. 늘어난 공사비로 인한 부담을 일부 전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선로 위에 데크를 씌우고 건물을 짓는 작업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 때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작업시간이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3시간에 불과하다”며 “유수지 위라 특수공법을 이용해 건물을 올려야 하고, 작업공기가 늘어나면서 건설비는 생각보다 많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사업 진행이 어려워진 근본 원인으로 ‘불신’을 꼽는 시각도 있다. 국토부는 지난 5월 1차 시범지구 8곳을 발표하면서 지자체나 주민들과 상의하지 않았다. 미리 정보가 새나가면 집값이 뛰는 등 우려가 있다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발계획의 경우는 법적으로도 사전 공개를 하지 않는다”며 “행복주택 예고지를 미리 공개했을 때 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지역주민들은 현장 방문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구지정을 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신정호 목동 행복주택반대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5월 발표 전까지 국토부 직원들은 현장 방문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구글 위성지도를 보면 목동예정지는 단순 빈 땅이지만 이곳은 유수지인 데다 인구밀집도가 높아 서울시도 과거 개발하려다 포기했던 곳으로,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는 이런 사정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도심에 대학생과 신혼부부 등 일부 계층에 한정해 임대주택을 제공하겠는 것을 본격적인 주거복지 정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며 “공약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이다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