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수산물 기피, 해수부의 자업자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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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숙 장관 “전혀 이상 없다” 강조해도 소비 20%가량 다시 줄어

“내가 보기에 전혀 이상없다. 과학적인 면에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9월 3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산물은 안전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9월 1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했던 “(수산물 대책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별문제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수입금지 등 늑장 대처로 불신 자초
윤 장관의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수산물 기피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수산물 소비는 추석 전후로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20%가량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해수부측의 얘기다. 서해에서 주로 나는 꽃게, 서남해의 전어는 소비가 늘었지만 참치 등 원양어종이나 오징어, 명태 등 동해 어종은 여전히 꺼리는 분위기다. 수산물 기피현상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불투명한 처리가 근본 원인이지만 해수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로 나뉜 수산물 수입 검역체계의 문제, 해수부의 안일한 대응도 한몫 했다.

9월 6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당정협 의회는 수입 수산물 안전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 박민규 기자

9월 6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당정협 의회는 수입 수산물 안전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 박민규 기자

10월 3일 후쿠시마 제1원전 방사능 오염수 저장탱크에서 누출사고가 또 발생했다. 기준치의 2만배 정도 되는 방사능 물질 430ℓ가량이 차단벽을 넘어 바다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도쿄전력도 이 같은 사실을 시인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오염수는 원전 0.3㎢ 항만 내에서 완전히 차단돼 있다”고 한 말이 거짓이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현장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수입되는 수산물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하는 게 전부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은 수입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이 법적 기준치 이하(세슘 허용 기준 100㏃(베크렐)/㎏ 이하)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가 일본 후쿠시마현 인근 8개 수산물의 전면 수입금지를 결정한 것은 9월 6일이었다. 또 8개 현 이외 지역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조금이라고 검출되면 스트론튬 및 플루토늄 등 기타 핵종에 대한 비오염 검사증명서를 추가로 요구하기로 했다. 

수산물은 부패하기가 쉬워 6주가량 걸리는 비오염 검사증명서를 추가로 요구하게 되면 사실상 국내 반입이 어렵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일본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소비자들의 요구를 애써 무시해 왔다.

한국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일본측의 ‘한국 무시’가 단초를 제공했다. 한국 정부는 8월 24일 방사능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큰 해양 오염수의 관리 여부와 수산물의 오염 여부, 주민들의 암 발생 가능성 등 24가지 항목에 걸친 질의서를 일본측에 보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답변은 황당했다.

외교부가 민주당 노웅래 의원에게 제출한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답변서를 보면, 일본은 우리측 질의에 대해 별도 자료제출 없이 홈페이지 주소만을 알려주는 ‘한 줄’ 답변으로 일관했다. 경제산업성, 후생노동성, 원자력규제위원회 홈페이지 주소였고, 클릭해 들어가봐도 별 내용이 없었다. 게다가 ‘2011년 발표된 자료를 참조하라’처럼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의 자료를 던져주기도 했다.

일본의 무성의한 답변에 해수부는 격앙됐다. 윤진숙 장관은 9월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이 알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전혀 통보도 안 하지, 바다로 다 흘려보내지, 황당하다”며 “저렇게 비도덕적인 애들(일본)을 외교로 커버해줄 필요가 없다 싶어 빨리 (후쿠시마 인근 8개현 수산물 수입중단 조치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산물에 대한 우려는 잦아들지 않았다. 이미 상당량의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이 국내에 반입돼 식탁에 올려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 불신이 더 커졌다. 식약처가 민주당 임내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13년 8월 30일까지 후쿠시마 인근 5개현에서 수입된 수산물은 총 403건, 7982톤에 달했다. 

수입 어종은 활백합, 냉장대구, 냉장명태, 냉동고등어, 마른 전복살 등 다양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출 판로가 막히자 우회 수입된 정황도 제기됐다. 후쿠시마현 북쪽에 맞닿은 미야기현에서 수입된 수산물은 2011년 2건, 11톤이었으나 2012년 47건, 1844톤으로 167배 급증했다. 수입금지가 되기 직전인 올 8월 말까지도 47건, 617톤이 수입됐다.

수입된 일본 수산물은 아이들 식탁 위에 올라갔을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가 민주당 김춘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올 8월 말까지 전국 초·중·고교에서 급식으로 사용된 일본산 수산물은 4327㎏이었다. 2011년에는 전국 238개 학교, 2012년에는 224개 학교가 일본산 수산물을 급식용으로 사용했다. 올해도 154개 학교가 일본산 수산물을 급식으로 사용했다. 품목별로는 가다랑어포(가쓰오부시)가 가장 많이 사용됐고 꽁치, 명태, 연어살, 갈치, 염연수어 등도 급식 재료로 쓰였다.

식약처와 이원화·‘기준치 이하’ 연연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가 지연된 데는 식약처와 해수부로 이원화된 행정체계의 영향이 컸다. 올해 부처 개편을 하면서 수입 수산물에 대한 검역권은 식약처로 넘어갔다. 식약처는 수입기준을 내세워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을 계속 허용했다.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공포감이 확산되고, 국내 수산물 소비까지 줄어들자 해수부는 발을 동동 굴렀지만 식약처의 입장은 완고했다. 윤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식약처가 (일본 수산물 조사에서) 이상이 없는데 어떻게 (수입금지를) 하느냐는 입장이었다”며 “이러다 우리 어민 다 죽겠다 싶어 우리가 상당히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수부가 수입금지에 적극적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국내 수산물의 주요 수출국은 일본이다. 해수부는 우리 수산물의 대일 수출이 위축되는 것을 우려했다. 후쿠시마현 인근의 8개현 수산물 수입은 금지됐지만 홋카이도와 도쿄도를 포함시키지 않은 데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방사능 물질이 검출된 수입 일본 수산물 중 3분의 2가 이 두 도시에서 생산됐지만 두 도시는 수입금지 조치 대상이 아니다. 방사능이 검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방사능 물질이 1㎏당 100베크렐 미만이어서 ‘과학적 기준’으로 보면 별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수역에 대한 방사능 오염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해수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9월 12일 제주 남단 먼바다 6곳의 8월 방사능 농도를 분석 발표했지만 정작 동해, 남해, 서해 연안은 발표에서 제외했다. 해양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원체 많은 실험이 몰려 10월쯤이나 발표가 가능할 것”이라며 “해류가 제주 남단 6곳을 지나 연안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이 지점이 안전하면 연안도 큰 문제가 없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식품 방사능 물질에 대해 ‘기준치 이하’를 고수해서는 대국민 불안감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많다. 후쿠시마 인근에 기준치 1000배가 넘는 방사능 물질이 계속 배출되는 상황에서 일본 수산물이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기준치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 역시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로 끌고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기준치인 1㎏당 100베크렐의 세슘이 든 생선을 연간 10㎏ 먹어도 피폭량은 미미하다는 주장은 모든 음식에 다른 방사능은 없고 세슘만 존재한다는 가정하에서 계산된 것”이라며 “세슘은 핵사고로 방출되는 200가지 핵물질 중의 하나로 ‘기준치 이내라서 안전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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