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수직증축으로 리모델링 숨통 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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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안전진단·사업성 따지면 실제 나서는 조합은 많지 않을 듯

“리모델링 하니마니 하는 얘기는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천장이 무너져내린 집도 있고, 난방이 잘 안 되는 가구도 있어 손을 보긴 봐야 하는데…. 한 가구당 2억원 정도 들어야 한다니 여유는 없고….”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만난 한 아파트 주민은 리모델링 때 수직증축을 3층까지 허용한다는 소식에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원체 오랫동안 리모델링 얘기가 나온 지역이라 관심은 있지만 여전히 리모델링이 가계에 도움이 될지, 되지 않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리모델링 규제를 화끈하게 풀어줬다. 위로 최대 3층까지 더 높일 수 있도록 했고, 가구수도 기존 가구수의 15%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마련했다. 수직증축을 기다려왔던 업계나 재건축이 필요한 아파트 주민들로서는 적극 환영했다. 리모델링협회 관계자는 “우리가 4~5년 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으로, 매우 환영한다”며 “사업비에 대한 부담으로 그동안 리모델링이 지지부진했는데,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현석동의 쌍용밤섬예가 아파트의 모습. 원래 10층이었는데 2개층을 늘려 12층으로 수직증축했다. | 서성일 기자

서울 마포구 현석동의 쌍용밤섬예가 아파트의 모습. 원래 10층이었는데 2개층을 늘려 12층으로 수직증축했다. | 서성일 기자

수직증축 리모델링이란 아파트를 리모델링 할 때 기존 아파트 위로 2~3개층을 더 올려 짓는 것을 말한다. 기존 건물 뼈대는 그대로 두되 추가적으로 기초보강을 더한 다음에 그 위로 건물을 더 짓는다. 통상 아파트 리모델링 때는 발코니 확장 등 수평으로도 늘리고,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해 천장을 두껍게 한다. 또 땅을 파 지하주차장도 만든다. 1980년대와 1990년 초기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지하주차장이 없는 데다 가구수가 늘어나는 만큼 주차장 확보는 필수적이다. 아파트 리모델링은 지은 지 15년 이상이면 가능하다. 기존 건물을 완전히 허물고 짓는 재건축은 통상 지은 지 40년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아파트에서 많이 한다. 또 재건축과 달리 소형 평수의 아파트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하는 강제조항이 없고, 용적률도 거의 적용받지 않는다.

수직증축 ‘불허’ 입장에서 ‘허용’으로 선회
문제는 안전성이다. 아무래도 기존의 철골을 그대로 두고 아파트 내·외부를 뜯어 만들다 보니 신축보다는 튼튼하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가 그동안 수평증축이나 별동증축만 허용하고, 수직증축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직증축 불허’ 입장이 완고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2011년 국회에서 수직증축 허용법안이 나왔을 때도 강력히 반대해 입법을 막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한 달 만에 ‘수직증축 허용’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간 새로운 기술이 개발된 것도 아니고, 주택 담당자들이 바뀐 것도 아니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여건 변화는 없지만 지금은 리모델링 활성화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수직증축 문제에 접근했다는 얘기다.

수직증축을 3층까지 허용한 것은 학계나 업계가 요구한 최대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대한건축학회는 2011년 ‘리모델링 수직증축 검증 결과 발표회’에서 ‘기초 마이크로파일 보강+저층부 기둥 철판 보강+건물 기초 단면 보강’을 하면 ‘3층’까지 수직증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가장 높게 올린 수직증축은 2층이다. 쌍용건설은 마포 호수아파트를 수직증축 리모델링 하면서 기존보다 2층을 더 올렸다. 2012년 완공된 ‘‘밤섬쌍용예가클래식’이다. 1층을 없애고 필로티(기둥만 있고 빈 공간으로 남겨둔 건축형식. 주차장이나 보행로 등으로 이용한다)로 만들면 수직증축을 허용했는데 ‘몇 층’이냐는 법적 기준이 없었다. 통상 1개층을 올리지만 밤섬쌍용클래식은 2층을 올려 사회적 논란이 됐다. 쌍용건설측은 “리모델링한 아파트가 무너지거나 잘못되면 그 건설사는 망한다”며 “아무리 조합이 원해도 안전성에 문제가 있으면 건설사가 거부한다. 절대 무리하게 증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쌍용건설측은 모 아파트의 경우 리모델링 사업수주를 거부했다.

[경제]수직증축으로 리모델링 숨통 틀까

문제는 분양시장이 죽고 재건축까지 지지부진하면서 시장환경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돈이 안 된다며 외면하던 건설업계가 리모델링 수주에 눈독을 들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끝낸 곳은 4곳이지만 이 중 3곳을 쌍용건설이 했다. 한 곳이 두산건설이다.

하지만 지금 건축 중인 리모델링 공사는 대형건설사들이 도맡고 있다. 삼성건설이 2건, 현대산업개발 1건, 대우건설 1건 등이다. 이런 상태에서 ‘보수적인 수주’보다는 ‘과당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1990년대 초반 지어진 신도시 1기 아파트의 경우 부실시공 얘기가 많았는데 실제로 안전진단을 해보면 상태가 좋지 못할 수 있다”며 “깐깐한 안전진단이 이뤄져야 하는데 물량 부족에 허덕이는 업계가 그럴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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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입장에서는 사업비 분담금 부담도 크다. 1998년 완공된 아파트가 올해로 15년이 된다. 완공 후 15년 이상이 된 아파트는 전국 400만가구이고 이 중 150만가구 정도가 리모델링 대상이 될 것으로 국토부는 관측하고 있다. 대부분은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강남개발과 1990년 초반 일제히 지은 1기 신도시에 몰려 있다. 일산, 분당, 평촌, 산본 등이다. 정부가 리모델링으로 늘어나는 가구수를 기존의 10%에서 15%로 5%포인트 늘려준 것은 늘어난 가구를 일반분양해 팔아 사업비로 쓰라는 얘기다. 평촌의 전용면적 58㎡의 아파트를 71㎡로 늘리는 리모델링을 할 때 기존에는 가구당 9700만원의 부담금을 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가구당 8600만원을 내면 된다. 12.8%인 1100만원이 절감된다.

강남권 노후 아파트 말고는 ‘관망세’ 전망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동산 침체기에 리모델링을 유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도 많다. 1억원가량의 분담금을 빼고서라도 2년 정도 공사 완공까지 전·월세 살이를 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금융비용은 1억5000만~2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기존 집을 팔고 그만한 돈을 보태면 넓은 평수로 이사갈 수 있는데 굳이 리모델링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압구정·도곡동 등 강남권 노후 아파트는 입지가 좋고 수요가 많아 재건축보다 상대적으로 절차가 간편한 리모델링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부동산써브 조은상 팀장은 “최근 주택경기가 좋지 못한 상황에서 추가로 만든 가구를 일반분양한다고 해서 신축 아파트의 일반분양보다 결과가 좋다고 보장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합수 KB은행 부동산 팀장도 “리모델링을 결정하려면 사는 게 불편해야 하는데 그런 아파트는 지은 지 25년 이상 되는 아파트들”이라며 “안전진단을 통과한 뒤에도 따져봐야 할 것들이 많아 실제로 리모델링에 나서는 조합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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