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금융지주 개혁 핵심은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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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의 독단 견제 못하는 거수기로 전락하고 자기권력화도 문제

“현재의 금융회사 지배구조는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정말 통렬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3월 22일 열린 취임식에서 던진 메시지다. 신 위원장이 취임할 당시는 주주총회 안건 분석기관인 ‘ISS 보고서 사태’로 인해 KB금융지주 경영진과 이사회가 갈등을 빚은 뒤였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통렬한 고민’이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4월 19일 신 위원장의 주재로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1차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개최했다. 태스크포스는 1차 회의에서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 현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주요 지배구조 쟁점 중 태스크포스에서 논의할 주제를 선정했다. 태스크포스는 4~5월 중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하고 6월 이후 이 개선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태스크포스에는 박경서 고려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박창섭(SC금융지주), 박영석(서강대), 양일수(삼일회계법인), 구본성(한국금융연구원), 송옥렬(서울대), 김선웅(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 민간위원과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등 감독당국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4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박병권 KB국민은행지부 노조위원장(왼쪽)과 이경 KB국민카드지부 노조위원장이 KB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박병권 KB국민은행지부 노조위원장(왼쪽)과 이경 KB국민카드지부 노조위원장이 KB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금융지주회사의 권한과 책임 불일치, 최고경영자 승계계획의 부재 등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이 나오고 있지만, 현재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대주주의 전횡 방지를 위해 도입된 지 15년이 된 사외이사 제도다. 신 위원장은 1차 회의에서 “사외이사 제도가 경영진의 독단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여전한 반면, 한편으로는 사외이사가 스스로 권력기구화하는 새로운 문제점도 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가 독립성을 상실한 채 거수기에 그치거나 사외이사들이 사외이사를 뽑는 등의 구조 때문에 자기권력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3년간 부결시킨 안건은 단 1건
사외이사가 거수기 관행으로 인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개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금융지주회사 사외이사들이 최근 3년간 400여건의 안건을 처리하면서 부결시킨 안건은 단 1건에 불과하다. 하나금융지주 이사회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최근 3년 동안 106개의 안건을 상정해 모두 가결했다. 사외이사들이 던진 반대표는 ‘0표’였다. 우리금융지주도 같은 기간 안건 107개를 처리할 때 사외이사들은 반대표를 한 번도 던지지 않았다. 이 기간 98건의 안건을 가결한 신한금융지주는 2010년 10월 ‘신한사태’ 특별위원회 설치 안건을 올릴 당시 반대표가 4표 나왔지만, 찬성이 과반수여서 안건은 통과됐다. 4대 금융지주 이사회가 최근 3년간 부결시킨 유일한 안건은 KB금융이 지난해 추진한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 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자 “사외이사의 경영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소액주주 등 비지배주주들이 독립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경제개혁연구소는 4월 9일 ‘소액주주들의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임 시스템 구축(박 대통령 대선 공약)을 위한 실천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임을 위해선 정보공개(공시) 강화, 사외이사 독립성 요건 강화, 사외이사 선임방법의 개선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우선 소액주주들이 사외이사 후보에 대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사외이사 후보에 대한 공시(최대주주·경영진과의 관계, 과거 경력 등)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사외이사 후보자에 대한 공시를 보면 간단한 경력, 현직, 최종학력 등만을 기재하고 있다. 이처럼 형식적인 공시제도로는 소액주주들이 사외이사 후보자에 대한 독립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또 현행 법률보다 강화한 사외이사 자격요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사외이사 자격요건 강화를 위해 계열사 임직원의 냉각기간을 5년으로 연장, 거래·계약관계 등이 있는 법인의 전·현직 임직원의 냉각기간 5년으로 연장, 사외이사 재직기간을 총 9년까지로 제한, 전략적 제휴관계 법인 임원의 사외이사 선임 금지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마지막으로 사외이사 선임방법을 개선해야 하며 이를 위해 집중투표제 의무화, 소액주주 대표들도 참여하는 사외이사추천위원회의 구성 등을 제안했다.

사외이사 자격요건 현행보다 강화해야
거수기 역할만 하는 사외이사도 문제지만 자기권력화해 경영진과 파워게임을 벌이는 경우도 문제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사외이사 제도는 두 가지 편향만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ISS 보고서를 둘러싸고 KB금융 경영진과 권력투쟁을 벌인 KB금융 이사회가 자기권력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KB국민은행 노동조합은 최근 발표한 ‘KB금융 지배구조 개선방안 검토 보고서’에서 “사외이사의 임기 만료 시 사외이사들이 스스로를 재임 적격으로 투표해 재임되는 경우가 많다”며 ‘사외이사 총수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수(소수점 이하 반올림)의 사외이사를 매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로 선임해야 한다’는 조항을 정관에 넣자고 밝혔다. 신 위원장도 “사외이사의 독립성 논의는 경영진으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여타 사외이사로부터의 독립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국민연금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연금은 4대 금융지주의 지분을 각각 5.0~8.58% 보유한 주요 주주다. 국회 입법조사처 김효연 입법조사관은 최근 작성한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 개선과 입법정책적 검토과제’라는 페이퍼에서 기관투자가의 주주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 조사관은 “소액주주들의 집중투표권 행사는 이들이 선임한 사외이사의 이사회 진입이 가능한 정도로서 경영진을 견제하기에는 미약할 수 있다. 반면 일정 규모 이상의 기관투자가들에게 의결권 행사를 의무화하는 방안은 매우 효과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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