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유치’ 발언 나오자 부산은 “무슨 소리냐”… 인천도 가세하며 유치논쟁 치열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부모들은 저마다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솔로몬의 판결 얘기가 아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약속한 ‘해양수산부’를 둘러싼 논란이다.
김경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이 해양수산부 호남 유치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해양수산부가 인수위 최대 논란거리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해수부 부활을 주도했던 부산·경남은 발칵 뒤집혔고, 인천도 반발하고 나섰다. 국토해양부의 해양수산부 출신 직원들은 은근히 경기 과천을 선호하고 있지만 논란에 휘말릴까봐 숨을 죽이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시끄러울 바에야 국토부가 그대로 갖고 있는 게 어떻겠느냐며 물밑 로비가 한창이다.

지난 2일 정부 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권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해양수산부 부활에 반대입장을 피력했다. | 연합뉴스
김경재 부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8일 MBC <손석희 시선집중>에 나와 “(해수부 호남 유치를 위해) 개인적으로 문서를 준비하고 있고, 인수위에 제출해 공론에 부칠 것”이라며 “부활하는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가는 것으로 돼 있는데 목포로 가져갔으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 당선인이 부산에서 그 공약을 발표했는데 전남으로 가는 게 불가능에 가깝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해 “호남 총리를 뽑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피부에 닿는 정책으로 호남 민심을 어루만지는 게 낫지 않으냐”며 반박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그 의견을 얘기했더니 광주 쪽 현지에서는 대단한 환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 무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무안의 (전남도청) 건물이 높고 좋은데 3분의 1 정도는 비어 있다고 들었다”면서 “그 건물을 해수부가 쓴다면 새로 건물을 세울 필요가 없고 광주의 역동적인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밀고 당기며 논란을 갖고 토론해야 한다”면서 “그러면 당선인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부가 전남으로 가면 박 당선인의 공이라는 얘기다.
박근혜 당선인 “부산에 해수부” 암시
해양수산부 부활과 동북아 해양수도 건설은 박근혜 당선인이 내건 부산 7개 공약 중 첫 번째다. 때문에 박 당선인이 ‘해수부를 부산에 설립하겠다’는 명시적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부산지역에서는 해수부가 지방에 설치될 경우 부산에 설치될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다.
실제 박 당선자의 유세 당시 발언도 그랬다. 12월 9일 부산 대연동 부경대에서 열린 ‘국민행복을 위한 부산시민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나 ‘부산에 해양수산부를 두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보다 앞선 11월 30일 부산 충무동 로타리 유세에서도 “해양수산부를 부활해 부산을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선 10일도 안돼 인수위에 참여하는 고위 관계자로부터 ‘전남 유치’ 발언이 나오자 부산지역 여론은 들끓었다. ‘해수부 부활 국민운동본부’ 측은 “해수부 폐지 저지운동과 해수부 부활을 위한 활동의 진원지가 부산이었다. 해수부를 목포에 유치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해양수산인들은 ‘해양수도포럼’을 구성해 부산 유치활동을 구체화하고 부산 설치 논리 개발에 주력하기로 했다.
새누리당 부산시당도 긴급히 진화에 나섰다. 이헌승 대변인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라며 “정치인 한 명의 개인 의견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도 “인수위나 박 당선인 차원에서 얘기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시킨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하지만 해양수산업계의 생각은 다르다. 김 부위원장이 아무 생각 없이 ‘우선 지르고 봤을’ 개연성은 적다는 것이다. 박 당선인이 호남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던 만큼 사전에 모종의 이야기가 오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 당선인은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구 신한국당·한나라당 포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호남에서 첫 두 자릿수 득표에 성공했다. 그런 만큼 호남에 눈에 띄는 ‘보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 관계자는 “해수부를 지방에 둔다는 것은 결국 지역 표심을 고려하겠다는 것인데, 전통적으로 지지세가 강한 부산보다는 다른 지역을 택할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며 “호남으로 간다면 정치적 파급효과가 상당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의 성동격서(聲東擊西)가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인사나 정책에서 다른 것을 얻기 위해 해수부 문제를 괜히 건드려보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당장 호남 총리만 하더라도 타 지역 인사들의 견제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왼쪽)이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 서 있는 인물은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다. | 강윤중 기자
두자릿수 득표에 대한 호남지역 보답?
해수부 지역 설치 논란이 거세지자 인천도 끼어들었다. 민주통합당 인천시당은 지난 3일 논평을 내고 “해수부 부활을 크게 환영하지만, 부산 이전설에 대해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분야 업무가 부산에 집중돼 인천항과 부산항, 광양항 등 3대 항만을 축으로 하는 트라이 포트 발전전략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인천시당 측은 “상대적으로 정부 관련 부처와 거리가 떨어진 인천항의 홀대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내 알력도 상당하다. 이미 부처 내부에서는 함구령을 내린 상태다. 대선 직후부터 개인 차원의 해수부 부활안이 돌자 권도엽 국토부 장관이 격노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권 장관은 1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해수부 부활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조직은 변화를 가져오면 코스트(비용)가 굉장히 크다”며 “5년마다 자꾸 바꾸면 업무 몰입도가 떨어지고 로스(손실)가 생긴다”고 말했다. 통합 성공사례로는 화물연대 집단운송 거부나 부산북항 개발 등을 들었다. 국토부가 통합관리했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잘 해결됐다는 것이다. 권 장관은 “정부조직은 그냥 뗐다 붙였다 하면 되는 레고블록 쌓기와 다른 유기체”라며 “사람에게 이식수술을 하는 것처럼 성공하더라도 시간과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물밑 분위기는 다르다. 박 당선인이 해수부 부활을 약속한 만큼 대세를 거스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구 해수부 출신과 교통부 출신 인사들은 해수부 부활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건설부 출신들이 요직을 독점한다는 불만이 있는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자리싸움’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상당수 인사들은 물류와 교통을 떼어내 신설 해양수산부와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농림수산식품부의 수산 출신 인사들은 이런 의견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해양수산부가 생길 경우 수산부분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산해양부’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새 부서 위치에 대해서는 과천청사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법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생긴 신설부처는 세종시에 위치할 필요가 없다. 서울에 남는 금융위원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지역간 논란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해수부가 수도권에 남기는 힘들어 보인다. 어디로 위치하나 난타당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특정지역으로 옮겨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관료들도 수도권이 아닐 바에는 세종시를 선호하고 있어 지방 이전이 쉽지 않아 보인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인수위에서 결정하겠지만 부산뿐 아니라 인천, 목포, 순천 등이 모두 아우성인 상황에서 세종시 외 다른 곳에 설치하기는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