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기 혈안에 여론 질타 이어져… 소비자 보호 금융감독 강화해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으로 불거진 금융권 탐욕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0개 증권사와 9개 시중은행을 조사하면서 방아쇠가 당겨졌고, 감사원이 지난 7월 23일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감사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절정에 이르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금융이 금융권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 소비자들과 서민들을, 그리고 예금주들을 위해 작동될 수 있도록 ‘금융 제자리 찾기’를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미국을 뒤흔든 ‘월가 점령시위(Occupy Wall Street)’가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감사원의 보고서에는 돈 벌기에 혈안이 된 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의 치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은행권에서 학력에 따라 신용등급을 차별했다는 내용 등이 전해지면서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
개인 신용평가에 학력차별 존재
감사원의 보고서를 보면 신한은행은 개인 신용을 평가할 때 학력 차별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이나 급여 외에 학력도 신용평가 요소의 하나로 삼은 것이다. 신한은행은 고졸 이하 대출자에게 13점을, 전문대를 나온 사람에게 38점을, 대학 졸업자에게 43점을, 석·박사에게 54점을 각각 부여했다. 고졸자의 신용평점이 석·박사의 4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학력 차별로 인해 대출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학력이 낮을수록 이자를 더 내는 경우도 있었다. 감사원이 신한은행의 학력 차별 요인을 없앤 뒤 다시 평가한 결과 2008~2011년 신용대출 거절건(4만4368건) 가운데 학력 요인 때문에 거절된 것이 1만4138건이었고, 같은 기간 신용대출 취급건(15만1648건) 가운데 7만3796건은 학력 요인으로 대출자가 17억원의 이자를 더 부담했다.
시중은행들은 또 기존의 가산금리를 임의로 인상하거나 새로운 가산금리 항목을 만드는 방식으로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을 늘려왔다. 대출금리는 지표금리(CD 91일물 등 조달금리)에 가산금리(업무비용, 위험비용, 목표이익률 등)를 더해 결정된다. ㄱ은행은 2009년 2월부터 500만원 이하 소액대출에 대해서 1%의 가산금리 항목을 신설했고, ㄴ은행은 2008년 1월부터 연체실적이 있는 대출자가 재약정을 할 때 벌칙금리를 신설했다. 본점의 가산금리 인상 이외에 지점에서도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점장 재량으로 가산금리를 부과한 사례도 적발됐다. ㄷ은행은 대출을 연장하면서 고객의 신용등급이 12등급에서 7등급으로 개선돼 가산금리가 떨어지자 다른 은행에서 대출이 많고 연체한 사실이 있다는 이유를 대면서 지점장 가산금리를 부과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은행이 2008년 10월부터 2011년 말까지 추가로 거둬들인 이자수익은 20조원에 달했다.
카드사들은 카드 발급을 늘리는 데 급급해 사망자에게도 카드를 발급한 사실이 밝혀졌다. 감사원이 2000년 1월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사망자에 대한 신용카드 발급 여부를 확인한 결과 지난 2월 현재 7만7147명(2.7%)이 아직 회원으로 관리되고 있고, 사망일 이후에 신규 또는 갱신, 대체발급된 고객이 1932명이었다. 심지어 사망자 가운데 2008년 이후 카드론 대출을 받은 자가 1391명이었고 대출액은 119억원에 달했다.
집단소송제·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금융당국의 수장들은 지난 7월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고개를 숙였다. 금융당국이 금융권의 부당한 영업행위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측면도 크기 때문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국민들이 바라는 수준에 닿지 못하는 부분, 저도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고,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국민들이 상당히 실망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후적으로 문제가 터진 다음에야 금융감독을 강화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융감독체계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기능을 분리하는 이른바 ‘쌍봉형(Twin Peaks)’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현재 금융당국은 금융 소비자 보호라는 관점이 부족해 금융회사의 재무적 구조, 건전성 등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며 “마음에 없으면 안 보이게 된다”고 꼬집었다. 미국은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구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산하에 독립기구 형태로 신설하기로 했고, 영국도 대표적인 통합감독기구였던 재정청을 건전성 감독기구와 행위 규제 및 소비자 보호기구로 분리하는 감독체계 개편을 연내에 마무리하기로 했다.
또 금융 소비자들이 금융기관을 상대로 피해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집단소송제는 일부 피해자가 불공정거래 등과 관련한 법정 싸움에서 승소하면 동일한 사안으로 같은 피해를 본 나머지 피해자는 별도 소송 없이 보상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이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액을 부과하는 제도다. 시장지상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미국에서도 대기업에 대한 사후적 시장규율 장치인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일반화돼 있다.
현재 집단소송제는 증권분야에만 도입돼 있고, 기업 담합 등 공정거래 분야에선 도입되지 않았다. 최근 집단소송제 확대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대기업의 담합이 요즘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데다, 과징금 등 행정적인 제재가 소비자의 실질적 혜택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정위의 제재 이후 민사적인 구제를 활성화해 실제로 피해자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7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피해자 구제와 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집단소송제를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