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학창생활은 끼리끼리 문화였다. 공부 잘하느냐 못하냐, 힘이 세냐 않으냐에 따라 어울리는 집단이 달랐다. 집단은 권력을 낳았다. 이른바 ‘짱’이다. 그때는 세상의 모든 걱정을 안은 듯 참 심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 돌아보면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나 싶어 미소를 지을 때가 많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왕따로 인해 누가 죽거나 크게 다쳤을 경우다. 피해를 당한 학생도, 피해를 입힌 학생도 평생 안고 가야할 짐이 된다.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2011)은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은 통상 예쁜 이야기를 담지만 <돼지의 왕>은 아니다. 처절하도록 슬프고, 충격적인 현실이 그대로 담겨있다. 욕설이 난무하고, 폭력이 흔하다.
![[영화 속 경제]돼지의 왕 - 비겁이 정의를 몰아낸 ‘그레샴의 법칙’](https://img.khan.co.kr/newsmaker/981/20120626_981_A56a.jpg)
찌질한 두 남자, 정종석(목소리 양익준)과 황경민(목소리 오정세)이 있다. 이 두 남자가 만난다. 15년 만이다. 회사가 부도 난 경민은 아내를 살해하고 집을 나섰다. 자서전을 대필하는 작가인 종석은 아내를 때리고 나왔다. 중학교 시절에 이들은 패거리들로부터 맞고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피해자였다.
이들에게 영웅이 있었다. 김철(목소리 김혜나)이다. 철은 힘을 가지려면 ‘악’해져야 하고, 병신이 되지 않으려면 ‘괴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돈은 있는 사람들이 버는 것이고, 자신들은 그들의 먹이가 된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죽어서, 팔다리가 찢겨서야 가치가 생기는 돼지일 뿐이라고, 철은 절규한다.
학교폭력과 사회 편견에 맞선 철이는 학교 옥상으로 올라간다. “(폭력을 쓴)너희들이 어른들이 됐을 때 웃으면서 지금을 얘기할 수 없도록 하겠다”며 복수를 말한다. 철의 분노를 바라보는 두 남자, 그리고 김철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그래도 의리파가 있었다. 약한 아이들에게는 제 힘자랑을 하지 않는 애들이다. 하지만 <돼지의 왕>에서는 그런 아이들이 없다. 종석과 경민이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친구들은 외면한다. 두 아이들의 눈에 학우들은 “탐욕스런 돼지”로 보인다.
기대는 있었다. 경상도에서 전학온 박찬영이다. 찬영은 공부도 잘하면서 당당한 아이다. 하지만 그도 집단 폭력에는 며칠을 버텨내지 못한다. 찬영은 말한다. “무슨 수를 써도 글마들(그놈들)을 이길 방법은 없다.”
이른바 ‘악화(Bad money)가 양화(Good money)를 구축’한 현상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라 부른다. 자동차 회사들이 휘발유 엔진 시장을 지키기 위해 전기자동차 판매를 늦춘다든가, 소비자들이 불법 다운로드된 게임제품을 마구 이용하면서 정품 소프트웨어가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결과 자동차 소비자들은 더 깨끗한 자동차를 살 기회를 박탈당하고 개발자들이 더 좋은 게임을 만들지 못하게 된다.
16세기 영국의 재무관인 그레샴은 금이 많이 들어간 금화와 적게 들어간 금화가 같은 가치로 유통될 경우 금이 적게 들어간 금화만 유통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이 많이 들어간 금화는 사람들이 소유해버리고 금 함유가 낮은 통화만 시장에 내놓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렇게 형성된 질 낮은 시장을 ‘레몬시장’이라 부른다. 레몬시장이 발생하는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든다. 즉 자동차 회사는 값싼 환경친화적 엔진기술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구매자들은 이를 모른다. 휘발유 차량을 아무리 생산해내도 소비자들이 반발하지 못하고, 휘발유 자동차 시장은 그대로 유지된다.
종석과 경민이 당하는 폭력을 말리지 못하는 학우들만 남은 이 중학교도 비겁자만 남은 ‘레몬시장’이 됐다. 정의로운 친구가 없지는 않았지만 집단폭력에 못이겨 비겁자로 전락했다. 찬영처럼 말이다. 악화(비겁자)가 양화(정의로운 친구)를 몰아냈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