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 인사들 공천서 속속 고배… ‘경제민주화’ 슬로건에 입지 좁아져
19대 총선 후보등록 마감 결과 경제분야 인물들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량감 있거나 상징적인 인물 영입은 없었다. 17대 대선 직후 치러졌던 18대 총선에서는 경제계 출신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경제계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여야 양당이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성장’ 어젠다가 사라지며 경제계 출신 인사들이 등원할 여지가 줄었던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또 새누리당은 MB정권과 거리 두기를, 야권은 MB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경제관료들은 특히 설 자리가 많이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관료(테크노크라트), 학계·재계 인사가 경제계 인사로 분류된다. 여야에 최종 공천된 경제계 인사는 30명 내외에 그쳤다. 그나마 상대 후보가 쟁쟁해 살아돌아올 수 있는 인사들은 10여명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강남을 공천

20일 김종훈 새누리당 서울 강남을 국회의원 후보가 강남구민회관에서 지역 노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새누리당은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인 김종훈 후보를 전면에 배치했다. 여야가 공천한 경제계 인사 중에는 가장 ‘거물급’에 속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주역인 김 후보는 이곳저곳에서 공천설이 나오다 최종적으로 서울 강남을에 공천됐다. 당초 강남을은 이영조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가 공천됐다. 하지만 제주 4·3사건과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폄훼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공천 취소됐다. 김 후보는 ‘안전한’ 강남 공천을 해줄 것을 당에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강북 출마에 대해 “어디 저 컴컴한 데, 그런 데서 하라는 건 또다른 측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할 정도로 비강남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컸다.
그의 요구에 당은 손사래를 쳤다.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취지가 훼손될 수 있는 데다 한·미 FTA가 부각될 경우 농촌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후보의 맞상대는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다. 새누리당의 강세지역이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맞아 격전지가 됐다.
깜짝 인사는 전 기획재정부 2차관인 류성걸 후보다. 류 후보는 대구 동구갑에 전략공천됐다. 불출마를 선언한 주성영 의원 지역구다. 류 후보는 새누리당에 비공개 공천 신청을 했다. 민주당은 임대윤 전 동구청장을 내세웠다. 대구가 새누리당의 난공불락 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류 후보 당선 가능성이 높다.
국토해양부 2차관 출신의 김희국 후보는 대구 중·남구에 공천됐다. 김 후보는 2009년 4대강 살리기 기획단 단장으로 임명된 이후 사업을 진두지휘해 왔다. 당초 그는 경북 군위·의성·청송을 공천지로 신청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당은 대구에 자리를 마련해줬다. 이 때문에 미리 터를 닦아 왔던 지역 출마자들은 상당한 반발을 했다. 무난하게 당선될 것이라 전망이 우세하다.
스토리로 보자면 심학봉 후보가 가장 눈길을 끈다. 심 후보는 지식경제부 출신으로 경제자유구역 기획단장을 지냈다. 그는 경북 구미갑 경선에서 중진인 김성조 의원을 누르고 공천권을 따냈다. 통상 장·차관에서 물러난 뒤 정치권에 뛰어드는 것과 달리 경선까지 거쳐 승리했다는 데서 관료사회의 기대가 크다. 하지만 김성조 의원이 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결정하면서 또 한 차례 벽에 부딪쳤다.
부산 영도구 경선에서 승리한 이재균 전 국토해양부 장관도 주목된다. 이 전 장관은 당초 조직과 인지도에서 밀린다는 우려에도 국민경선을 통해 공천권을 따냈다. 부산지역 해양수산단체로부터 큰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에서는 한진중공업 사태 때 주도적 역할을 한 민병렬 통합진보당 후보가 나선다. 하지만 진보신당과는 합의가 무산된 것이 약점이다.
울산 북구에서는 박대동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이 재도전에 나선다. 지난 2009년 재·보선에 나갔다 당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에게 패했다. 이번 맞상대는 야권연대로 경선을 통과한 통합진보당 김창현 전 민노당 사무총장이다. 현대자동차 공장이 위치한 울산 북구는 진보성향의 유권자가 많아 승부를 쉽게 점치기 어려워 보인다.
경제학과 교수 중에서는 서울 서초을 공천을 받은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가 눈에 띈다. 강 교수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제철학을 돕는 브레인으로 알려져 있다. 박 위원장의 연설문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서초을 현역인 고승덕 의원은 공천에 승복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임지아 변호사를 내세웠다.
성동갑에는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공천받았다. 진수희 의원이 탈락했다. 진 의원은 한때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는 등 강력 반발했다. 김 교수는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의 손위동서다. 민주당에서 최재천 전 의원이 출마했다.
경기 분당갑에는 이종훈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공천을 받았다. 이 후보는 박근혜 위원장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교육·노동분야 발기인으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선이 될 경우 박근혜호의 노동경제분야를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 새누리당에 비해 인물 적어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물군이 적다. 전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인 이정환 후보는 부산 남갑에 도전장을 던졌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는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당시 이명박 정부의 괘씸죄에 걸려 고초를 겪었다. 경쟁자는 3선에 도전하는 김정훈 의원이다. 상대가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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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에 출마하는 재정부 사무관 출신의 김관영 후보는 강봉균 의원을 꺾고 공천권을 따내 화제가 됐다. 강 의원은 재정경제부 장관 출신의 3선 의원이다. 김 후보는 행시 36회로 강 의원이 장관일 때 사무관이었다. 재정부 재직 시절 사법고시에 합격해 법무법인으로 나갔다.
기업인 중에서는 전북 전주 완산을 공천을 받은 이상직 후보가 눈에 띈다. 그는 저가항공사인 이스타항공 회장으로 현대증권 펀드매니저 출신이다. 텃밭 전주에 공천돼 당선 가능성이 높다.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인 이계안 전 의원은 서울 동작을에서 정몽준 의원과 맞대결을 벌인다. 경제계 인사 간 맞대결 중에서는 가장 무게감 있는 대결이라는 평가다. 접전을 벌이고 있어 아직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다.
여야 기업인이 맞붙은 지역구도 있다. 충북 보은·옥천·영동군이다. 새누리당은 박덕흠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장을, 민주당은 이재한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을 내세웠다.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선정된 홍종학 가천대 교수는 민주당의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인사로 손꼽힌다. 홍 교수는 비례 4번을 받아 등원이 확실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공천을 받은 인물 면면을 볼 때 그리 중량감 있는 인사가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현 정부 관료들은 여야로부터 큰 대접을 못받았고, 경제계에서도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상징적 인물을 찾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