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 부자의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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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 부자 판도에 큰 변화가 일어나 관심을 끈다. 재벌닷컴에서 만 45세 미만의 상장사 주식부자 상위 100명을 살펴보니 19명이 ‘자수성가’ 부자였다. 전년의 10명보다 두 배에 가까운 9명이 증가한 것이었다.

김정주 엔엑스씨 회장.

김정주 엔엑스씨 회장.

자수성가 부자가 전체의 20%에 못미치니 여전히 재벌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수성가 부자가 계속 약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놀라운 것은 젊은 자수성가 부자 중에 이미 1조원이 넘어선 신흥 갑부가 전체 4명 가운데 2명이나 된다는 부분이다. 김정주 엔엑스씨 회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온라인 게임사업 하나로 1조원대 갑부가 됐다. 우리나라 기업인의 부를 보면 통틀어도 작년 말 기준으로 1조원 이상 주식갑부는 16명에 불과하다. 젊은 나이에 재벌에 못지 않은 부를 쌓은 인물들이 탄생한 것은 매우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 부자 판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새로운 부자가 탄생하기란 쉽지 않다. ‘부의 축적 시스템’이 갈수록 고착화되고,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이 부자가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와 같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 부자가 늘어나고 있는 점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늘어난다면 보통사람들도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수성가 부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까. 필자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아 보인다. 재벌의 반격이 거셀 것이기 때문이다. ‘부의 판도’는 경제를 지배하는 세력이 누구냐를 알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재벌의 부가 자수성가 부자에게 밀린다는 것은 경제 지배자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격하진 않더라도 조금씩 주류세력이 교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재벌로선 여간 위협적인 일이 아니다. 해방 이후 형성된 한국 부의 판도를 지배해온 전통 재벌이 밀려난다면 경제 전반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필자는 요즘 한국 사회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진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경제권력에서도 새로운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기득권 세력은 변화를 두려워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어떤 형태로든 끝없는 변화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다.

아직은 자수성가 부자의 힘은 재벌에게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그 변화는 엄청날지도 모르고, 또 그렇게 되리라 확신한다. 재벌이 무겁고 비대해진 몸을 뒤뚱거리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에 젊고 싱싱한 두뇌와 가벼운 몸을 가진 신흥 기업들은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2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애플과 같은 신흥 기업들이 전통 기업들을 밀어내고 경제 지배자로 등장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이런 조짐이 꿈틀대고 있다. 2012년에는 재계 판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chaebul@chaebul.com

‘재벌 이야기’는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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