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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세 딸 ‘정중동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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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2선에서 광고업·호텔업계 삼성 딸들과 경쟁 가속

현대가의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 재계 안팎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맏딸인 그가 이끌고 있는 광고회사 이노션이 ‘광고업계 부동의 1위’ 제일기획을 제쳤다는 일부 분석이 나오면서다. 여기엔 아버지의 후원으로 펄펄 나는 삼성가 딸들과 달리 엄격한 가풍 속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현대가 딸들에 대한 호기심도 한몫 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미국 앨라배마 공장 현지 준공식 행사에 참석한 정성이 이노션 고문의 모습. 삼성가와 달리 현대가 딸들은 언론 노출이 드문 편이다. |경향신문

지난 2005년 미국 앨라배마 공장 현지 준공식 행사에 참석한 정성이 이노션 고문의 모습. 삼성가와 달리 현대가 딸들은 언론 노출이 드문 편이다. |경향신문

현대가의 세 딸은 이미 계열사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동생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처럼 경영 일선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일정 지분을 바탕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게다가 남편이 계열사 대표를 맡고 있어 현대가의 그룹 분할 밑그림도 그려진다. 국내 재계 서열 2위, 세계 자동차기업 5위(2010년 판매량 기준) 현대·기아차그룹 딸들의 ‘정중동(靜中動)’ 경영을 들여다보았다.

제일기획 잡는 맏딸 정성이
최근 광고업계에선 한바탕 해프닝이 있었다. 광고업계 1위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 제일기획과 이노션이 서로 다른 순위 평가기준을 내놓으며 신경전을 펼친 것. 이 일은 그동안 부동의 1위를 지켜온 제일기획이 ‘세계적 추세’를 내세우며 매출 관련 자료를 갑자기 ‘취급액’에서 ‘수익’으로 변경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업계 2위에서 1위 자리를 노려온 이노션은 기존 관행에 따라 취급액을 기준으로 현황 자료를 제출했다. 두 업체간 순위를 매기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지난해 해외광고 물량을 크게 늘린 이노션이 업계 1위로 치고 올라온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결국 제일기획이 이노션보다 약 2000억원 많은 취급액을 발표하면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제일기획이 향후 취급액에서 밀릴 것으로 예상하고 평가기준을 바꾸려는 포석” “이노션에 대한 제일기획의 경계심이 드러난 것”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지난해 광고 취급액은 제일기획 2조9199억원, 이노션 2조6985억원으로, 격차는 2009년(4771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제일기획은 전년보다 32.6%, 이노션은 56.4% 각각 성장했다.

이 ‘숫자 싸움’이 광고업계 안팎으로 화제가 된 것은 두 기업의 배경에 삼성가와 현대가의 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서현 제일기획 부사장과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제주에서 호텔사업 경쟁을 펼쳤던 두 그룹의 딸들이 광고업에서 다시 불꽃을 튀기고 있는 것으로, 삼성가에 비해 노출이 안 된 현대가 딸들의 경영활동이 수면 위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부인 이정화 여사(작고)와의 사이에서 1남3녀를 뒀다. 장녀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 그리고 정윤이 현대해비치호텔&리조트 전무, 막내인 정의선 현대차 부사장이다. 경영 일선에서 활발하게 뛰고 있는 정 부회장과 달리 현대가의 딸들은 가풍을 따라 ‘그림자 내조’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양새다. 각각 해당 회사의 고문, 전무라는 직함을 갖고 있지만 활동이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대외활동 또한 활발한 편이 아니어서 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 모터쇼나 11월 당진에서 있은 현대제철 제2고로 완공식 등 그룹의 큰 행사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경제]현대기아차 세 딸 ‘정중동 존재감’

그나마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사람이 바로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의 인하우스(그룹내 계열사) 광고회사인 이노션은 정몽구 회장(20%)과 정성이 고문(40%),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40%) 등 세 사람이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현재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재계에선 정성이 고문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05년 설립된 이래 대표이사 및 임원이 변경됐지만 실질적 오너인 정성이 고문의 위치는 확고부동하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 고문은 이화여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선두훈씨(현 대전 선병원 이사장)와 결혼했다. 전업주부로 내조에 전념하던 그녀는 2005년 현대차그룹의 광고대행사를 차리며 경영에 나섰다. 정 고문은 현대·기아차의 신차 발표회는 물론이고 해외 모터쇼마다 빠짐없이 다니면서 마케팅과 광고를 챙기고 있다. 보수적인 현대가의 분위기를 고려해 튀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이노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것. 그룹 관계자는 “대그룹 회장의 딸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수수한 스타일”이라며 “정 고문이 이노션의 글로벌 광고기업 밑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호텔업에서도 삼성가 딸들과 ‘맞짱’
이노션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다. 2005년 설립된 이후 매년 50~60% 성장 행진을 벌이며 설립 3년 만인 2008년부터 국내 2위 광고회사 자리를 굳혔고, 현대자동차가 국내외에서 약진한 2009년엔 전년 대비 105% 성장하기도 했다. 2009년 11월에는 삼성전자의 TV광고를 제일기획이 아닌 이노션이 대행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안정적이고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현대차와 기아차의 취급 비중이 높기 때문이지만 CJ, KT, 스카이(휴대폰), KB국민카드, 캐논, 대교, 동아오츠카, 삼양식품, 엔프라니 등의 광고를 대행하며 외연을 넓히고 있다는 게 이노션 측의 설명이다.

이노션 관계자는 “정성이 고문이 회사의 주요 결정사항을 보고받고 있지만 이노션은 전문경영인 체제이기 때문에 회사의 주요 사항은 대표이사가 결정한다”며 “자동차라는 브랜드는 중장기적인 마케팅이 필요한 곳이고 대외비가 많은 곳이라 인하우스 광고회사의 장점이 크다”고 말했다.

현대가의 세 딸이 전무로 있는 제주 현대해비치호텔&리조트. 이들은 지난해 호텔신라의 이부진 사장과 불꽃 튀는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경향신문

현대가의 세 딸이 전무로 있는 제주 현대해비치호텔&리조트. 이들은 지난해 호텔신라의 이부진 사장과 불꽃 튀는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경향신문

정성이 고문은 동생인 정명이, 정윤이씨와 함께 현대해비치호텔&리조트 전무도 겸하고 있다. 이 호텔 대표이사를 지냈던 어머니 이정화 여사가 지난 2009년 10월 별세하면서 지분을 똑같이 물려받은 이후 세 딸의 호텔 경영 참여는 더욱 활발해졌다. 특히 둘째딸 정명이 고문과 셋째딸 정윤이 전무는 호텔에 필요한 집기와 장식물 등 필요한 것을 직접 사다 놓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구체적인 경영활동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매일 출퇴근하는 상근직도 아닌 데다 오너가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해당 기업에서조차 사진 DB가 없을 정도다.

현대가의 세 딸은 지난해 하반기엔 공격적인 경영으로 호텔신라의 이부진 사장과 뜨거운 경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부진 사장이 제주 신라호텔에 ‘프라이빗 비치’, ‘야간수영’ 등 고객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실시하자 이에 맞서 고급 스파 및 체질에 따른 유기농 식이요법인 ‘스파 아라’, 제주 전통의 마사지를 접목한 ‘브런치 스파’ 등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나선 것. 외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그룹의 본업인 자동차에 매진하고 있다면 딸들은 소프트한 분야에서 경영에 나선 모양새다.

사위를 보면 현대가 계열분리 보인다?
현재 재계에선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끌 것으로 보고 있다. 부회장이라는 공식적인 직함뿐만 아니라 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 등기이사로 올라 있는 등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에도 참여하기 때문이다. 현대가의 특성상 ‘외동아들’이라는 프리미엄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일각에선 현대·기아차그룹 역시 삼성그룹처럼 딸들의 지분이 형성될 것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 그룹의 광고분야,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이 그룹의 금융분야, 정윤이 현대해비치호텔&리조트 전무가 호텔&리조트분야를 책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전망은 현대가의 사위들 안에서도 그려진다. 정성이 고문의 남편은 의사로 대전 선병원의 이사장을 맡고 있지만, 정명이 고문의 남편과 정윤이 전무의 남편은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정명이 고문의 남편은 현대·기아차그룹 금융부문의 핵심인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을 맡고 있는 정태영 사장이다. 정 사장은 서울대와 MIT를 나와 1987년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한 이후 현대모비스를 거쳐 2001년부터 2년여간 기아차의 자재본부 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그가 재계의 ‘스타’로 떠오른 것은 2003년 현대카드 사장으로 이동한 후부터다. 사장 취임 후 파격적인 마케팅을 잇달아 선보이며 당시 바닥권이었던 현대카드를 4년 만에 상위권 업체로 올려놓는 경영수완을 보인 것. 최근 이들 부부는 현대커머셜 지분을 대거 사들여 현대·기아차그룹의 금융부문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윤이 전무의 남편은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에서 자동차 강판과 가전용 강관 등을 주로 생산하는 현대하이스코의 신성재 사장. 신 사장은 미국 유학 후 현대정공 샌프란시스코 지사 차장, 현대강관 국외영업담당 이사, 현대하이스코 기획담당 부사장 등을 거쳤다. 국외영업담당 이사 시절 1조원대에 머물던 연간 매출액을 2조3000억원으로 끌어올리며 사내에서 ‘전설’로 통하는 그는 최근 활발한 대외활동을 보이고 있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장녀인 정성이씨가 광고회사인 이노션의 지분 40%를 확보했고, 차녀 부부도 현대커머셜 지분 50%를 확보했다”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적 분할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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