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예술가 사외이사’ 사랑, 왜?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최근 농심이 소설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등 ‘예술가 사외이사’가 속속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농심은 지난 3월 18일 주주총회를 통해 김주성 소설가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1959년생인 김씨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재학 시절인 19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해후> <불울음> <어느 똥개의 여름> <꽃피는 개봉역> 등의 작품을 썼지만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

서울 대방동의 농심 본사 사옥

서울 대방동의 농심 본사 사옥

김씨는 지난 1996년 농심의 ‘30주년 사사(社史)’를 편찬하면서 농심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40주년 사사’ 편찬 등에도 참여했다. 신춘호 회장 등 최대주주와의 특별한 관계는 없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 농심 관계자는 “김씨는 농심뿐 아니라 삼성 등 대기업의 사사를 많이 집필하면서 기업의 철학과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TV’로 유명한 회사인 나우콤은 지난 2월 18일 주주총회에서 성악가인 김동규 강남대 석좌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나우콤 관계자는 “회사의 주된 사업이 인터넷 분야라서 다양한 인맥과 넓은 시야를 가진 분이 사외이사로 선임됐다”며 “주주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고 밝혔다. 인터넷과 문화콘텐츠 사업에 주력하는 회사의 특성상 문화예술계 유명인사를 통해 기업 홍보 등 다양한 효과를 노렸다는 평가를 애써 피하지 않는 눈치다.

‘거수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금까지 대다수 회사들의 사외이사는 관계·정계·학계·법조계 유력인사. 그러나 재계 안팎에서는 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오면서 독특한 이력의 사외이사를 신규로 선임하는 기업이 늘 것으로 보고 있다. 크라운제과 역시 김정락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그러나 이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사외이사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도외시한 비전문가 발탁”이라는 지적이다. 사외이사 본연의 임무는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통해 주주 전체의 이익을 보호하고 기업 경영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전문성과 독립성이 떨어질 경우 무조건 경영진 의견에 동조하는 ‘거수기’ 역할에 그칠 수 있다는 목소리다.

현재 농심의 이사회는 사내이사 6명, 감사 1명, 사외이사 2명. 이 때문에 “사외이사가 2명뿐인데 그 중 한 명을 비전문가로 선임하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농심의 지난해 3분기까지 16건의 이사회 의결사항에 대해 사외이사 2명은 모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농심 관계자는 “경영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라며 “김씨와 인연을 맺으면서 문화경영, 조직문화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네슬레와 같은 글로벌 식품회사로의 도약을 위해선 지금의 기업문화를 넘어설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사내이사 3명, 감사 1명, 사외이사 1명으로 이사회를 꾸리고 있는 나우콤도 같은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사외이사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기업의 기대는 다른 것 같다”며 “신임 사외이사가 기업에 새로운 문화를 접목시켜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선웅 좋은기업지배연구소 소장은 “그동안 교수, 변호사, 관료에 국한됐던 사외이사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좋으나 그가 과연 주주의 이익과 주장을 대변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며 “하지만 사외이사를 마치 로비스트나 홍보대사로 여기는 기업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도 사외이사에 대한 기업의 인식이 ‘어차피 뽑아야 하는 것, 구색이나 맞추자’는 안일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김 소장은 특히 “한국에서 기업의 사사는 지배주주 가족사와 다름없는데, 돈을 받고 사사를 쓴 사람이 어떻게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Why 경제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