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상승률 정부발표와 큰 차이
'지난해 소비자물가는 2.9% 정도 상승한 데 비해 가계소득은 5.8% 상승했다?’ 정부(통계청)가 발표한 물가지수 및 소득지수가 ‘묘하다’. 발표대로라면 2008년 4.7% 상승했던 소비자물가지수는 2.9% 상승에 머물며 안정세를 나타냈고, 2년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던 실질가계소득은 지난해 2.8%로 대폭 상승한 셈. 이명박 정부 들어 물가 상승과 소득 하락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국민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지수”라는 반응이다.
시장 온도와 너무도 동떨어진 정부 발표
최근 정부 발표에 따르면 2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해 2월에 비해 4.5%, 올해 1월에 비해서는 0.8%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소비자물가 조사 대상 품목 489개 가운데 두자릿수 상승률을 보인 품목은 71개, 하락한 품목은 87개로 오히려 하락한 품목이 많았다. 이 때문에 품목별로 배추는 95%, 고등어 45%, 돼지고기는 35%나 올랐지만 전체적으로는 4%대를 유지했다는 설명. 정부가 특별 관리하는 52개 생필품, 이른바 ‘MB물가’는 5.2%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론은 ‘물가지표 따로 체감 따로’라는 분위기다. 정부가 발표한 지수가 시장에서의 체감온도와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는 반응이다. 특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발표는 정부가 발표한 소비자물가지수에 의문을 품게 한다. 경실련 발표 자료를 보면 2008년 3월부터 지난 2월까지 3년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는 11.75% 증가했고, MB물가지수는 거의 2배인 20.42%나 폭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52개 품목 중 연평균 10% 이상 오른 품목은 10개였다. 배추가 114.2% 급등한 것을 비롯해 마늘(89.8%), 양파(74.8%), 돼지고기(62.1%), 우유(31.4%) 등이 3년 새 30% 이상 올랐다. 빵(28.4%), 사과(28.2%), 두부(26.1%), 화장지(22.9%) 등은 3년 동안 15% 이상 올랐고, 휘발유(12.9%), 자장면(12.4%) 등은 10% 이상 올랐다.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지수와 체감지수의 괴리는 지난 2월분만이 아니다.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보면 소비자물가는 2003년 3.5%, 2004년 3.6%로 3%대 상승률을 보이다가 2005년 2.8%, 2006년 2.2%, 2007년 2.5%로 다소 안정세에 들어섰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 4.7%로 급상승했다. 이후 2009년 2.8%로 진정국면에 들어섰고, 지난해 역시 2.9%로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다. 특히 노무현 정부 초반 3년과 이명박 정부 초반 3년의 소비자물가 평균 상승률을 보면 3.3%와 3.46%로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탓에 못 살겠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적어도 정부 발표 지수상에선 ‘나빠진 게 없는’ 상황이다.
실질가계소득에서도 의문점은 마찬가지다. 2인 이상 가구의 연평균 실질가계소득을 보면 노무현 정부 시절 2.3%(2004년), 0.9%(2005년), 2.8%(2006년), 2.5%(2007년)를 유지하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0.2%(2008년), -1.3%(2009년)로 악화됐지만 지난해 2.8%로 다시 플러스로 돌아섰다.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2.9% 상승했지만 가계소득이 5.8% 늘면서 실질소득도 높아졌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지만 이 역시 시장의 체감온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조사 품목에 따라 물가지수 달라져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 상승률이 정부 발표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조사 품목의 범위와 생필품 지수 탓이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집중적으로 관리하겠다”고 공언한 52개의 ‘주요 생활필수품(MB물가 품목)’에 포함된 품목들이 소비자 체감 물가와 연관이 크다는 것이다. 신창목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소비자물가지수는 경제 전반의 평균적 물가수준 측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생필품 비중은 10%가 채 안된다”며 “이 때문에 소비자물가지수와 장바구니 물가는 개념상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지난 2월 물가 기준을 ‘전체 물가 조사대상 품목’이 아닌 이 ‘MB물가 품목’으로 좁히면 정부가 발표한 공식 소비자물가지수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이 기간 중 52개 MB물가 품목 가운데 값이 떨어진 품목은 라면·쇠고기·식용유·소주·이동통신요금 등 8개에 불과하다. 하락 폭도 최대 4% 정도다.
반면 MB물가 품목에 포함된 주요 먹을거리 가격은 대부분 올랐다. 상승률도 쌀(1.3%)과 멸치(6.9%), 콩나물(8.1%)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두자릿수였다. 배추는 작년 2월에 비해 94%가 올랐고, 파는 89.4%가 올랐다. 마늘(78.1%), 양파(54.7%), 무(50.8%), 고등어(44.6%), 돼지고기(35.1%) 등 한국인들의 식탁에 자주 오르내리는 품목은 거의 두자릿수의 급등세를 보였다.
게다가 값 비싼 스마트폰 보급이 늘면서 개인 통신비 지출이 늘었지만 지수 산출에서는 제외돼 지난 2월 이동전화 요금은 오히려 3.1% 내린 걸로 나타나는 등 조사항목에서의 한계가 있다도 지적이다. 주택 임대료가 지난달 2.7% 상승했다는 발표도 실제 계약이 이뤄진 가구만을 대상으로 지수를 산출함으로써 전체 부동산시장 동향과는 거리가 있다. 신 수석연구원은 “현재 물가지수 품목들이 지난 2005년 기준이어서 5년이 훌쩍 지난 현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은 서민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 가계 빚을 늘리고 저축률을 떨어뜨렸다. 3월 7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가계 저축률은 2.8%로 저축률 자료가 제시된 20개 회원국 평균저축률 6.1%에 크게 못 미쳤다. 이는 ‘소비왕국’으로 불리는 미국보다 낮다. 가계 저축률은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저축액의 비율을 말한다.
가계 저축률 하락은 ‘국내 투자재원 감소·소비 둔화→경제성장률 하락→일자리 감소’ 등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투자재원 마련을 위해 기업들이 해외 차입 확대에 나설 경우 경상수지 악화, 대외 충격에 약한 경제 체질 고착화 등의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물가상승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인식은 여론의 원성을 사고 있다. “성장률보다 물가에 치중해야 한다(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는 충고에도 늘 뒷북 대책만 내놓던 이 대통령은 최근 물가상승세에 대해 “불가항력”이라고 말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물가문제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소위 ‘비욘드 컨트롤(beyond control:통제범위를 벗어난)’이 되지 않는가 하는 부분도 있다”면서 중동 정정불안에 따른 유가 급등과 한파로 인한 농수산물 가격 상승을 언급한 이 대통령은 “기후가 따뜻해지고 4월이 돼서 봄 야채가 나오면 다소 물가가 안정기에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 “물가는 불가항력”에 속 터지는 국민들
이에 대해 정책 실패의 원인을 외부요인으로 호도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각종 에너지재 가격뿐 아니라 전셋값, 농축산물값 등 거의 모든 재화의 가격이 폭등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의영 군산대 경제학과 교수(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는 “물가 안정, 소득분배 등 다양한 목표를 지향해야 하는 경제정책이 성장 일변도로 쏠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물가관리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고환율, 저금리 정책에 있다”며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누리고 있는 반면, 수입물가도 함께 높아져 국내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나치게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이 크게 증가하면서 물가상승 압력을 강화시켜 왔다는 설명이다.
한편 지난 2월 말 국민일보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와 함께 진행한 여론조사(800명 대상)에서 MB의 남은 임기 2년 동안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과제에 대해 응답자의 79.4%가 “남은 기간 중 물가관리나 잘하라”고 답했다. 현 정부 들어 살림살이에 대해서 “나아졌다”는 응답은 8.4%에 불과하고 “나빠졌다”는 38.4%로 4배 넘게 나타났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