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곡물가격의 급등과 대응 방향
해외 농업개발·수입국 다변화 등 안정적 수급대책 시급
<주간경향>·국회입법조사처 공동기획
세계 곡물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2010년 상반기까지 안정세를 보이던 밀·옥수수·대두 등의 국제가격이 2010년 7월부터 상승하기 시작하여 7개월 넘게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곡물가격의 강세는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의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FAO가 발표한 2010년 12월 식품가격지수는 11월보다 4% 상승한 214.7(2002~04년 평균 100)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지금까지 최고였던 2008년 6월의 213.5를 넘어선 것이다.
이처럼 최근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세를 나타내자 세계 각국은 2007~2008년에 발생한 ‘식량위기’가 재발하고,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식량자급률이 매우 낮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관련 제품가격이 들썩여,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경제가 더욱 힘들어지고, 정부의 물가잡기에도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 농무부(USD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월 28일 기준 대두 가격은 톤당 514달러, 밀은 톤당 335달러, 옥수수는 톤당 254달러였다. 이와 같은 가격 수준은 2007~2008년 세계 ‘식량위기’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2007~2008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등한 국제 곡물가격(쌀은 2008~2009년)은 그 후 등락을 거듭하다 2010년에 들어서서 높은 수준이지만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했다. 그런데 7월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해 7개월간 밀은 무려 90%, 그리고 옥수수는 85%, 대두는 47%나 각각 치솟았다.
곡물대국들 생산량 크게 줄어
이와 같은 곡물가격 상승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1년 1월 미국 농무부가 발표한 ‘국제 곡물수급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2010~11년 1월 곡물생산량은 2009~10년의 22.3억톤보다 약 2%가량 줄어든 21.8억톤으로 예측됐다. 또 세계 곡물 기말재고율도 2009~10년 22.4%에서 2010~11년에는 19.2%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중장기 곡물수급을 예측한 FAO·OECD도 ‘2010~2019 농업전망 보고서’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밀과 사료용 곡물의 실질가격은 1997~2006년의 평균가격보다 16~40% 더 오를 것”으로 예측하면서 식량자급도가 낮은 국가들의 식량안보 위협이 계속 증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최근 곡물 가격이 급등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등 주요 곡물 생산국에서 기상이변으로 곡물생산이 크게 줄어들어 공급이 불안해졌다는 점이다. 곡물가격 급등의 기폭제는 러시아였다. 세계 3대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는 2010년 여름 최악의 폭염과 가뭄을 맞이했고, 이로 인해 곡물 수확량이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 것이 예상됐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자국 내 곡물가격 안정을 위해 8월 15일 밀, 보리, 옥수수, 밀가루 등의 수출 중단조치를 취했다. 러시아의 이러한 조치는 즉각 국제 곡물시장에 영향을 미쳐 곡물가격이 급등했다. 러시아 정부는 당초 곡물 수출을 2010년 12월말까지 금지한다고 발표했는데, 지난 10월에 수출 금지조치를 2011년 6월 30일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해 세계 식량수급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러시아 인접 국가로 세계 보리 수출량 1위이자 밀 수출량 6위 국가인 우크라이나 정부도 폭염과 가뭄으로 인한 국내 곡물생산의 악화와 곡물가격 안정을 이유로, 2010년 말까지 곡물 수출을 2009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고 2010년 8월 17일 발표했다. 2010년 하반기에는 ‘라니냐’의 영향 등으로 남반구에서도 기상이변이 대규모로 나타나, 곡물생산에 큰 타격을 주었다. 미국과 더불어 세계 3대 곡물생산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는 가뭄으로 대두와 옥수수 재배가 큰 타격을 받았다. 브라질은 세계 대두 생산량의 약 26%를, 수출량은 전 세계의 약 32%를 차지하고 있고, 아르헨티나는 옥수수 수출량이 전 세계의 18.8%를 차지하는 세계 제2위의 옥수수 수출국이므로, 이들 국가의 흉작은 국제 곡물 수급과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 주요 밀 수출국인 호주에서는 2010년 6~9월 서부 지방의 심각한 가뭄으로 밀 등의 생육에 큰 피해가 발생하였고, 12월에는 동부지방의 대홍수로 역시 밀 생산에 큰 차질을 초래하여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우리나라는 곡물수입 세계 5위권
우리나라의 밀·옥수수·두류의 자급률은 2009년 현재 각각 0.5%, 1.0%, 8.4%에 불과하고, 이로 인해 2009년에는 전년 대비 120만톤 증가한 1500만톤의 양곡이 수입됐다. 이는 세계 곡물수입국 5위권의 규모이다. 따라서 국제 곡물가격 급등은 국내 식량수급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상승분이 국내 관련 상품 가격에 그대로 전가되어 경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국제 곡물가격 급등으로 2011년 상반기 배합사료 가격은 2010년 6월 시세보다 11.5%, 제분부문 가격은 31.3%, 유지 및 식용유 가격은 6.6%의 물가 상승 요인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배합사료 가격의 급등은 구제역 및 조류 인플루엔자(AI)의 만연과 고유가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축산경영의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또 제분과 식용유 가격 급등은 라면, 자장면, 빵, 과자 등 각종 식료품 가격을 줄줄이 인상시켜 서민가계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고, 애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도 매우 커지게 된다.
따라서 불안정성이 증대되는 국제 곡물수급 상황 하에서 국내 및 국외로부터 필요한 곡물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식량자급률 제고, 해외 농업개발, 수입국 다변화, 적극적인 선물시장 활용 등 다양한 대책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 곡물 확보는 최대한 국내 생산을 확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부차적으로 안정적인 수입 확보와 비축으로 보완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인 우리나라는 곡물가격 변동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국제 곡물수급에 있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로 인해 곡물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크며, 안정세를 유지한다고 해도 이전보다는 높은 수준이 향후 일정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점 등을 인식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식량안보대책을 수립하여,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국제 곡물수급 안정을 위한 국제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불확실성의 증대로 인해 곡물가격이 요동치면 빈곤국가의 기아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며, 지구촌 곳곳에서 식량폭동이 일어나는 등 국제정세가 불안해질 수 있다. 따라서 국제 곡물시장의 투명성 강화, 곡물 수출국의 무분별한 수출 금지조치 견제, 국제 곡물비축체제 구축, 가격 급변에 대한 대비책 마련 등을 위한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 금년 프랑스에서 열릴 G20 회의에서 프랑스 정부는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려고 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도 이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하여 선도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배민식 입법조사관(농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