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비리’에 곪고 ‘횡령’에 중독, 강원랜드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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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개장 징계·사법처리 직원 160여 명… 손배소 청구액만 500억대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 카지노의 주차장에 평일임에도 낮에 꽉 들어찬 차량들이 진입로에까지 줄줄이 주차돼 있다. <김기남 기자>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 카지노의 주차장에 평일임에도 낮에 꽉 들어찬 차량들이 진입로에까지 줄줄이 주차돼 있다. <김기남 기자>

강원랜드는 비리를 펼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로 개장한지 10여 년이 된 강원랜드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만신창이로 곪아가고 있다. 강원랜드의 성적표는 화려하다. 지난해 매출은 1조원을 넘어섰고 영업이익은 4700억원에 이른다. 공기업뿐만 아니라 웬만한 대기업과 비교해도 매출 대비 순익 비율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급성장 매출에 취한 것일까. 강원랜드의 내부경영관리는 형편없다 못해 관리라는 게 있나 싶을 정도이다.

근무기강 해이, 도덕불감증 여전
강원랜드는 지난 2000년 개장 이후 지난해 말까지 금품수수와 폭행, 회사기금 횡령 등으로 징계를 받거나 사법 처리된 직원 수가 무려 160여 명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직원이 지금까지 회사 돈을 횡령하거나 회사 자금을 가로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액수는 누적액수로 따지면 엄청난 액수로 공기업으로서 존재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지난달에는 환전팀의 여직원인 최 모씨(30)가 무려 80억원이라는 거액을 횡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여직원은 2007년 4월부터 9개월 동안 거의 매일 현금을 출납하면서 100만원권 수표 뭉치를 자신의 속옷 안에 넣어 퇴근했지만 80여 억원이 증발했는 데도 내부감사에서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정도면 내부 모니터링시스템이 기능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계속되는 직원 비리사건에 강원랜드 최영 사장은 지난 11월10일 직원들의 부정비리 사건 근절을 위해 ‘내부부정 사건과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최 사장은 이날 강원랜드 고한 사옥 접견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최근 수사를 통해 밝혀진 환전 직원의 거액 절취사건에 크게 반성한다”면서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강원랜드 임직원 모두는 신뢰받는 공기업이 되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사고만 터지면 불끄기에 급급한 미봉책에 불과한 조처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부 직원들의 자성의 목소리로는 부족하다는 얘기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강원랜드의 비리는 집중조명을 받았다. 무소속 송훈석 의원이 공개한 ‘강원랜드 감사관실에서 실시한 자체감사 내역 및 조치결과’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자금팀, 환전팀, 레저경영관리실, 시설관리팀, 인재육성팀 등 내부 부서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 9건의 불법 내용을 적발했다. 또 카지노 게임부정행위, 카지노 영업매뉴얼 위반, 하이원 스키장 리프트 할인권 부정사용 등 총 20건의 비위 사실을 적발해 징계하기도 했다. 지난해 이후 내부 직원 가운데 절도와 배임수재 등 비위 혐의로 구속 기소된 직원도 4명에 이른다. 강원랜드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근무기강에 대해 송 의원은 “일반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지경”이라면서 “강원랜드를 관리하는 상급기관에서 철저한 관리 감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인사관리도 엉망인 것으로 나타났다. 송 의원이 요구해 강원랜드가 제출한 ‘2008년 이후 강원랜드 직원 징계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근무소홀 및 부당업무 등으로 징계 받은 직원 총 71명 가운데 24명이 입사지원서와 경력증명서를 위·변조하고도 버젓이 근무했음이 드러났다. 또한 이들 가운데에는 허위경력을 제출해 호봉을 높게 부여받았다가 뒤늦게 적발돼 징계 받은 사례도 있다. 결국 부적격자들을 채용해 근원적으로 비리가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 밝혀진 것이다.

“불법변칙영업” 소송 잇단 패소
내부 직원들의 근무기강 해이, 도덕적 불감증의 대가를 강원랜드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 강원랜드를 상대로 한 소송금액이 창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카지노에서 거액을 탕진한 카지노 이용자들의 잇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거액을 탕진한 일부 이용자들은 카지노 출입 고객의 한도금액 초과베팅 및 사기적 유인행위 등을 주장하거나 카지노 영업 준칙 및 출입제한규정 위반 등으로 불법행위 책임이 있다며 막대한 규모의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과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을 연이어 제기하고 있다. 지난 8월 말 현재 강원랜드를 상대로 한 카지노 출입 및 이용자들의 소송 제기 건수는 총 23건,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관련 금액이 무려 538억 5100만원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강원랜드가 거액의 소송사건에서 잇따라 패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원랜드 측의 문제가 많다는 증거이다. 손해배상청구 금액이 가장 많은 사건은 지난 2006년 11월 말 정 모씨가 카지노 출입 고객의 한도금액 초과베팅 허용 및 사기적 유인행위 등을 주장하며 손실금 중 일부 지급을 청구한 사건으로, 소송 금액이 208억4100만원에 이른다. 이 사건은 1심에서 강원랜드가 28억41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이 내려졌으며, 2심이 진행중이다. 이 밖에도 지난해 6월 김 모씨가 카지노영업준칙 및 출입제한규정 위반으로 인한 불법행위 책임을 이유로 208억11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건 역시 1심에서 강원랜드가 패소해 15억5100만원의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또 2007년 11월에는 이 모씨가 제기한 75억원의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으로 이 사건도 1심에서 1억700만원의 원고 일부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이들 세 사건은 모두 법무법인 화우와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소송 대리인을 맡고 있으며, 특히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23건 가운데 9건을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최고 실력의 로펌들이 강원랜드의 변호를 맡고 있지만 역부족인 모양새이다. 카지노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강원랜드가 소송사건에서 잇따라 패소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변칙불법 영업을 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일부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돈벌이에만 급급해 하지 않고 진정 국민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공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내부 직원 단속도 중요하지만 투명한 경영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빈털터리에 신세 한탄만’ 강원랜드 탐방기

강원랜드 카지노 내부 전경.

강원랜드 카지노 내부 전경.

강원도의 폐광촌 한가운데 덩그러니 나 홀로 서 있는 강원랜드를 찾은 건 지난 11월26일 오후 2시 한낮이었다. 한낮에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착각이었다. 신분확인 절차를 거쳐 5000원짜리 입장권을 구매하고 카지노로 들어서자 슬롯머신 돌아가는 소리와 바카라·블랙잭 등 게임에 열중하는 수많은 사람으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연령대는 다양했다. 20대 초반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부터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 장바구니를 든 50대 아줌마까지 보였다. 영화에서처럼 정장 차림의 사람들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슬롯머신을 열심히 돌리는 한 아주머니에게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답변 대신 시큰둥한 표정. 객장 내부에 마련된 흡연실로 들어가 봤다.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담배를 피우고 난 뒤 한숨을 내쉬던 중년 남자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굳은 얼굴로 게임테이블로 돌아갔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남루한 옷차림의 수염이 덥수룩한 한 중년의 신사에게 자주 오냐고 묻자 “여기 출입한지 5년차이다. 돈도 많이 날렸지만 이제는 여기 오지 않으면 불안해져 습관적으로 오게 된다”고 말했다.
 
5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기자가 봉투 안에 넣어 들어간 카메라와 캠코더를 유심히 바라봤다. 내부 촬영이 안돼 흰 비닐봉투에 담았던 건데 그게 돈다발로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국내인에게 인기가 있다는 바카라 게임이 벌어지는 곳을 가봤다. 딜러 앞자리에 앉은 사람은 10여 명이지만 그 뒤에서 베팅하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25명 정도가 됐다. 이들 가운데에는 이른바 ‘병정’으로 불리는 대리게임 보조자가 절반 이상이다.

게임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칩’을 걸었다. 노란색 칩도 간간이 놓였다. 노란색 칩은 10만원에 해당한다. 베팅이 완료되자 딜러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뽑아 보이고 나서 베팅에 성공한 플레이어에게 배당했다. 딜러나 플레이어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객장 한쪽 구석에서 우두커니 다른 사람이 하는 게임만을 지켜보는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자주 오느냐고 묻자 마치 심심한데 잘됐다 라는 듯이 신세 한탄을 시작했다. 김종호씨(가명·45)는 자신이 ‘카지노 앵벌이’로 불린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수년 전만 해도 건실한 토목기사였다. 전국의 공사 현장을 다니면서 착실하게 일한 덕분에 돈도 꽤 모았다. 그러나 3년 전에 우연히 강원랜드 인근에 있는 공사 현장에 오게 되면서 김씨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고스톱도 잘 모르는 김씨는 공사 현장에 있던 3개월 동안 호기심으로 잠시 시간을 내 카지노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그동안 모은 돈에 빚까지 포함해 2억여 원을 날렸다. 김씨는 이후 상실감에 강원랜드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현재 강원랜드 주변인 사북·고한의 찜질방 등에 머물면서 고객들의 ‘병정’과 바카라·블랙잭 등 게임의 ‘자릿세’를 받아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객장 가운데의 무료음료를 먹을 수 있는 휴게실 근처로 발길을 옮겼다. 유난히 남루한 옷차림의 한 남자가 연방 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었다. 슬쩍 사정을 묻자 역시 신세 한탄이 이어졌다. 박승호씨(가명·50)는 이른바 ‘카지노 노숙자’이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 명예퇴직 당한 뒤 울적한 마음으로 강원랜드를 찾은 박씨는 가족에게 이젠 지방에서 공사장 일을 한다고 둘러대고 이곳에 눌러앉게 됐다고 한다. 카지노는 새벽 6시에 폐장했다가 오전 10시에 개장하기 때문에 박씨는 영업을 하지 않는 4시간 정도를 근처에서 배회하거나 목욕탕 등에서 새우잠을 청했다가 다시 게임장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카지노 게임장에는 망고주스·토마토주스를 비롯해 비타민 음료 등 10여 가지 음료를 마음껏 뽑아 마실 수 있어서 이것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있다. 객장을 나와 VIP 전용 영업장이 있다는 2층으로 향했다.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카지노 영업장 내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에 따르면 VIP 영업장에는 ‘특별한’ 고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연예인이나 정·관계 고위 간부와 그들의 부인 등 ‘평범하지 않은 인사’들이 모이는 것. 상상을 초월할 고액 베팅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 직원은 “VIP 영업장에서 오가는 금액은 여기(일반 영업장)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전했다. 1층 로비로 내려왔다. 여기에도 서성이는 사람이 많았다. 카지노 입구에 서있는 ‘게임은 YES, 도박은 NO’라는 팻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강원도 사북·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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