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산 지역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천혜의 자연 해쳐

제주도의 한 골프장.
민족의 영산 한라산이 골프장에 포위당했다. 중산간(해발 200~600m)에 우후죽순 격으로 골프장이 들어선 결과 한라산과 저지대의 생태축이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골프장은 한라산 태고의 신비, 그 속살까지 뚫고 들어올 기세다. 2013년이면 제주도 내 골프장은 35곳에 이른다. 아무런 대책 없이 천연 원시림을 훼손하고 골프장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이들이 ‘골프관광객 유치를 통한 제주관광의 선도주자’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2013년이면 35곳
현재 운영 중인 제주도 내 골프장은 26곳. 3203만75㎡에 681홀이 들어서 있다. 제주도는 이에 더해 골프장 6곳을 개발승인한 상태다. 이들 골프장에서는 나무를 베어내고 토사를 깎아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를 밟고 있는 골프장도 2곳이다. 1개 골프장에 대해서는 개발사업시행 예정자가 지정돼 있다.
2007년 8월 예정자가 지정된 이 골프장이 2013년 문을 열면 제주도 내 골프장은 모두 35곳이 된다. 골프장 총면적은 894홀(회원 702홀, 대중 192홀) 4196만5564㎡에 이른다. 이는 ‘제주도 체육시설업 등의 등록 및 이용에 관한 조례‘에 따른 골프장 부지 상한선에 불과 264만㎡가 못 미치는 규모다. 제주도 체육시설업 조례는 임야 총면적의 5%(4460㎡)까지만 골프장이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앞으로 18홀 규모 골프장 2~3곳이 추가로 건설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감안하면 제주도는 ‘골프장 특별자치구’로 불릴 것 같다.
문제는 제주도가 상한선을 초과하더라도 골프장 추가 조성이 필요하다면 제주도의회와 협의해 허가를 더 해줄 수도 있다는 입장이란 점이다.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에 따라 골프장 총량제 개념이 사라진 만큼 조례를 개정해 골프장 부지 상한선만 높이면 그만이다. 실제 골프장 부지 상한선을 임야면적의 7%로 조정하자는 논의가 제기된 적도 있다.
제주도청 담당공무원 강성보씨는 “현재로서는 조례 개정 계획이 없다”며 “앞으로 추가 수요가 발생할 경우 도민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해 논의할 문제”라고 말했다.
관광객 끌어들이는 보물단지?
올 들어 4월 말까지 제주도 내 골프장 이용객은 42만35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6만3000여 명에 비해 17%가 늘어난 수치다. 전체 이용객 중 제주도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36%다. 반면 외국인 비율은 2%에 그쳤다. 골프장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이용객 증가는 고환율로 인해 해외로 나가려던 골프관광객이 제주로 유턴하는 반사적 이익의 측면이 크다.

제주도 지역에 개설되거나 개설 예정인 골프장 현황.
제주도는 골프산업이 활발한 민간투자를 주도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몫을 해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제주도는 올해 골프장 13곳이 부대시설을 확충하고 기본시설 공사에 나서면서 총 2485억 원의 민간투자금이 유입된다고 분석했다. 운영 중인 26개 골프장이 일반 직원 2500여 명, 도우미 1600여 명을 고용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지난해 골프 관광객이 144만여 명이니만큼 골프가 제주관광을 주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제주도는 올해 유럽피언투어챔피언십, KLPGA여자오픈, 도지사배 주니어대회 등 다양한 골프대회를 개최, 골프 관광객 유치에 긍정적 효과를 봤다고 분석했다.
반면 골프장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송재호 제주대 교수(관광개발)는 “현재 시점에서 제주도 내 골프장은 공급 과잉이 맞다”며 “골프 수요를 더 창출하지 않으면 경영상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송 교수는 “공항이라는 인프라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골프장 수요를 공급에 맞추는 것은 어렵다”며 “완벽한 가격 자율화 등 제주만의 특화한 골프장 모형이 나오지 않을 경우 골프장이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영근 제주발전연구원 연구원은 “2010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골프 인구가 증가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며 “현재도 공급 과잉으로 제살깎아먹기 식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주도 골프장 전체를 하나로 묶어 클러스터 식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부킹센터도 하나로 통일하는 등 통합 마케팅을 도입하고, 제주 골프브랜드를 재창조해야 살길이 나온다”고 진단했다.
제주지역 숙박업계는 골프텔과 같은 골프장 내 숙박시설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숙박시설 자체가 공급 과잉임에도 불구하고 호텔 134실, 콘도 699동이 골프장 내에 추가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환경 파괴의 주범
천연원시림 곶자왈은 제주의 허파로 불린다. 암석이 두껍게 쌓여 있어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그대로 지하로 유입된다. 마치 스펀지와 같은 지하수 함양의 보고다. 오염물질이 빗물을 통해 지하로 유입될 경우 바로 지하수 오염으로 연결되는 매우 취약한 지형 구조이기도 하다. 제주도 내 상당수 골프장을 이 곶자왈을 밀어내고 만들었다. 환경단체인 ‘곶자왈 사람들’ 김효철 사무국장은 “골프장으로 훼손된 곶자왈은 700만㎡ 정도로 추산된다”며 “1차적인 곶자왈 훼손도 문제지만 지하수 오염등 2차적 피해는 계량화할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세계자연유산 제주도에 골프장이 더는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골프장 환경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한 예로 제주도는 지난 2월 골프장의 농약 사용을 규제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설정, 실물량 기준 연간 40㎏/㏊를 한도로 제시했다. 이는 2007년 평균 농약 사용량 16.8㎏/㏊를 훨씬 초과한 수치다. 농약을 더 써도 된다는 허가장이나 다름없다.
이영웅 제주환경연합 사무국장은 “지하수 오염은 30년은 지나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며 “당장 위험이 없다고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골프장이나 대규모 리조트 같은 전통적 관광산업은 더는 경쟁력이 없다는 게 세계적 추세”라며 “최근 각광받고 있는 ‘올레걷기’와 같은 대안관광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한라산을 빙 둘러 골프장이 들어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만일 수십 년 후 경영난으로 골프장이 문을 닫을 경우 원 상태로 복원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강홍균 기자 khk5056@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