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결함으로 납품 지연… 항행안전 대책 ‘구멍’ 우려

항공안전본부가 구매키로 한 세스나사의 비행점검용 항공기(아래 사진)의 납품이 계약 기간을 훨씬 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챌린저 CL-601-3R 비행검사용 항공기도 14년 전 제작된 것이어서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월간항공 제공>
항공안전본부가 구매 계약한 비행점검용 항공기의 납품이 기술적 취약성 때문에 8개월째 미뤄지면서 비상시 항공사고 위험에 대한 우려와 함께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업체에 대한 계약 파기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월 현재까지도 납품 기일 불투명
비행점검용 항공기란 비상시 항공기의 안전한 착륙을 위해 평소 공항의 무선·등화·통신 시설을 점검하는 비행기로, 항공안전본부 산하기관인 항행표준관리센터가 관리·운영하고 있다. 항공안전본부는 현재 1대의 비행점검용 항공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항공기의 정비 또는 갑작스런 고장을 대비해 추가 구입을 결정하고 2005년 8월 구매 절차를 시작해 미국의 세스나사와 2008년 7월까지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은 바 있다.
3월 초, 인천공항 관계자들은 아찔한 순간을 겪었다. 인천공항의 활주로 3개 중 안산 시화호에서 인천 앞바다를 통해 착륙하려던 항공기가 하마터면 서해에 떨어질 뻔했기 때문이다. 자동항법장치로 착륙 중이던 항공기의 계기판은 활주로 끝에 도착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상 항공기는 활주로 착륙 2마일(약 3200m) 전에서 비행하고 있었다. 전파신호 오류를 발견한 조종사가 급히 수동으로 전환한 후에 정상적으로 접근해서 착륙했지만 조종사나 관제탑 모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조종사는 도착 후 항공안전장애보고서를 제출했으며, 관제탑으로부터 후속 항공기도 유사한 사례가 있어 점검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나마 안개가 걷힌 오후 시간이라 조종사의 시력에 의존해 수동 착륙이 가능했지만 만약 오전이나 안개가 많이 낀 날이었으면 영종도 앞바다에 추락했을 뻔한, 상상하기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한 항공 관계자는 “긴 운항을 하는 조종사들은 몸이 피곤하기도 하고, 수동 착륙 시 진동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이 제기돼 자동 착륙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경우도 조종사가 전적으로 자동 착륙에 의존했다면 큰 일 날 뻔했다”고 전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문제는 비행장에 있는 계기착륙시스템에서 발생한다는 게 항공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해에도 6월 시카고오헤어국제공항과 7월 샌프란시스코국제공항에서 전파신호가 불량이 나면서 착륙하려던 항공기가 재접근을 통해 다시 정상 착륙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공항의 경우 무선·등화·통신 신호를 이용해 항공기를 유도하고 있다. 때문에 이 전파신호에 오차가 있으면 항공기 착륙에 위험 요소가 나타나거나 심한 경우 항공기들끼리 충돌할 수도 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흔히 항공기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때가 이착륙하는 5~10분 사이로 알려져 있다”며 “계기 착륙 시스템이 송신하는 신호에 단 1m의 오차가 발생해도 항공기와 승객들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항공기 사고 발생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를 계기 착륙 시설이 책임지고 있다는 것으로, 평소 이런 부분을 점검하는 것이 바로 비행점검용 항공기의 역할이다. 현재 항공안전본부는 1995년 제작된 캐나다 봄바디어사의 챌린저 CL-601-3R 비행검사용 항공기 1대를 운영하고 있다.

인천공항 제3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하고 있다. 3월 초엔 계기 착륙 시스템의 전파 오류로 항공기가 바다에 착륙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 발생하기도 했다. <김정근 기자>
문제는 이 비행점검용 항공기가 고장나거나 장기간 정비에 들어갈 경우 대체할 항공기가 없다는 것. 게다가 인천, 김포, 제주, 부산 등 전국 민간공항의 325개 시설을 한 대의 비행검사기로 운용하고 있어 늘 비행검사 일정에 쫓기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항공안전본부는 비행점검용 항공기 1대를 추가 확충하기로 하고, 구매 절차를 2005년 8월 조달청에 의뢰했다.
조달청은 공개 입찰을 통해 세스나 560 엔코 기종을 구입하기로 세스나사와 계약했다. 새로 들여올 세스나 560은 제트엔진을 탑재한 기종으로 외형상 크기는 현재 챌린저 검사기와 비슷하지만 탑재된 항공전자장비는 더 첨단이다. 당초 항공안전본부 측은 세스나 560기를 도입하면 현재 민간공항에 대해서만 실시하고 있는 비행검사를 군기지로도 확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8년 7월까지 납품하기로 한 세스나 항공기는 8개월이 지난 3월 현재까지도 납품 기일이 불투명한 상태다. 비행점검용 항공기를 실질적으로 관리 운영하는 항행표준관리센터는 “구매규격서의 여러 요건 중 일부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납품이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세스나 항공기와 점검용 장비의 시스템이 일치하지 않아 도입이 1년 가까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안전본부는 ‘손 놓고 불구경’
이를 두고 항공업계에서는 국가기관의 안전 불감증과 공무원 사회의 무사안일주의가 빚어낸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만일 비행점검용 항공기를 정비하거나 항공기 고장 시 계기 착륙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면 비행 사고의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지금까지도 별 문제 없이 지나왔다”는 인식이 계약 위반에도 불구하고 손 놓고 불구경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구매 계약을 대행한 조달청은 “우리는 업체를 선정하고 계약을 하는 것이 주업무로, 수요 기관에 장비를 검사하는 기능이 있다”며 “항공안전본부에서 검사 장비에 문제가 있어 불합격 판정을 놓았고 납품업체의 후속 조치를 주시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항공안전본부의 담당자는 “계약 시 요구했던 조건에 부합하지 못해 납품이 미뤄지고 있다”며 “이행계약서를 요구하는 등 후속작업은 하고 있지만 계약 파기 등은 조달청이 계약자기 때문에 그곳 소관”이라고 밝혔다. 계약 기간을 지키지 못했을 때 지불하는 지체상금에 대해서도 “지체상금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인천공항을 개항하며 ‘동북아 허브공항’을 표방한 제스처에 비하면 비행안전점검엔 불합격이라는 비판도 있다. 전국 민간공항의 모든 계기 착륙 시설을 단 1대의 항공기, 그것도 제작된 지 14년이 지난 구형 기종이 점검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현재 일본의 경우 최신 장비를 갖춘 8대의 항공기를 운용하고 있고, 중국 역시 8대의 비행검사기를 운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 등 우리나라보다 검사할 시설이 훨씬 적은 국가에서도 최소 3대 이상의 비행검사기를 운용하고 있을 정도로 항행안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게 항공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때문에 지금이라도 납품 기일을 지키지 못한 업체와 계약을 파기하고 다시 구매 공고를 내어 새로운 항공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누구 하나 책임지지도, 또 지우지도 않겠다는 분위기 속에서 14년 전 구형 기종에 치명적 결함이라도 발생하면 우리 영공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