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사업자 주식 보유 금지 조항 위반… 방통위도 그 기간 동안 아무런 조치 없이 지나쳐

롯데홈쇼핑의 방송 장면. <경향신문>
롯데그룹이 정권과 유착설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홈쇼핑(대표이사 신헌)이 2년여 동안 방송법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홈쇼핑채널을 관리·감독하는 방송통신위회(이하 방통위)가 이 기간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방통위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2006년 12월부터 2008년 9월까지 1년 9개월 동안 지상파멀티미디어방송(DMB)사업자인 유원미디어 주식 4.6%를 보유했다. 현행 방송법(제8조 3항)에 따르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한 기업집단 중 자산총액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대기업)와 그 계열회사는 지상파방송사업을 겸영하거나 그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재계 4위의 대기업인 롯데가 지상파DMB사업자의 지분을 소유했다면 바로 이 조항을 위반한 것이다. 또 방송법(제18조)에 따르면 ‘방송사업자가 방송법 제8조를 위반했을 경우 방통위가 허가·승인 또는 등록을 최소하거나 6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그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의 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방통위는 이와 관련해 외부 로펌에 법률자문을 구해놓은 상태다.
롯데·방통위 측 “위법 사실 몰랐다”
방통위 관계자는 “최근 지상파DMB사업자에 대한 재허가 심사 과정에서 이를 발견하게 됐다”면서 “외부기관에 법률자문을 요청해 10월 말쯤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홈쇼핑은 2006년 12월 롯데 지주회사 격인 롯데쇼핑이 홈쇼핑사업자인 우리홈쇼핑을 인수하면서 출범했다. 당시 우리홈쇼핑은 지상파DMB사업자인 유원미디어에 출자해 주식 33만4000주(4.6%, 16억7000만 원 규모)를 보유한 상태였다. 롯데쇼핑이 우리홈쇼핑을 인수함에 따라 롯데홈쇼핑은 유원미디어 주식을 그대로 계승했다. 그러나 롯데의 우리홈쇼핑 대주주 변경 승인 과정에서 롯데홈쇼핑과 방송위(방통위의 전신)는 이러한 사실을 간과했다. 이에 따라 롯데홈쇼핑은 2년여 동안 위법 상태에서 영업을 했으며, 방통위는 지난 9월까지 시정명령 등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과연 롯데와 방통위는 이 같은 방송법 위반사항을 몰랐을까. 롯데와 방통위 측은 이를 몰랐던 것은 단순히 실수라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말도 많았던 롯데의 우리홈쇼핑 인수 과정에서 이같이 중대한 사항에 대해 법률적 검토를 하지 않았을 리 없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롯데홈쇼핑 홍보팀 관계자는 “굉장히 황당한 일이지만 당시 롯데쇼핑은 위법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서 “롯데쇼핑이 유통에는 노하우가 있지만 방송에 처음 진출하다 보니까 이러한 사실을 체크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유원미디어 주식은 투자 목적의 자산이지 엄밀하게 말하면 롯데홈쇼핑의 지분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방송법 위반 사실이 밝혀지자 롯데홈쇼핑은 유원미디어 주식 전부를 지난 10월 1일 서울산업대학교 학과 발전 기금으로 기부했다. 롯데 측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산학협력 차원에서 장학금 형식으로 기부했다”고 말했다.
유원미디어 주식을 서울산업대에 기증한 데는 최성진 매체공학과 교수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위 자문위원을 지낸 최성진 교수는 “GS홈쇼핑이 매년 5000만 원씩 기부한 데 이어 롯데도 주식을 기부했다”면서 “서울산업대 출신 방송기술 엔지니어들이 홈쇼핑방송에 많이 진출해 있다”고 말했다.

롯데홈쇼핑은 10월 1일 서울산업대학교에 유원미디어 지분을 전부 기부했다.
방통위는 이 문제에 대해 최근 지상파DMB사업자 재허가 심사 과정에서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롯데홈쇼핑에 유원미디어 주식의 처리를 요구, 롯데는 대학에 기부하는 절차를 밟았다. 지상파DMB를 담당하는 방통위 뉴미디어과 관계자는 “유원미디어 재허가 서류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위법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면서 “롯데홈쇼핑이 최근 지분을 정리했지만 향후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외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상태”라고 말했다. 2006년 12월 롯데의 우리홈쇼핑 인수 당시 방통위가 이런 사실을 지적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 관계자는 “당시에는 롯데가 우리홈쇼핑을 인수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집중적으로 심사했지, 우리홈쇼핑의 지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송업계 관계자들은 롯데홈쇼핑과 방통위가 이 같은 중대한 방송법 위반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을 리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거 홈쇼핑사업자 심사위원을 맡았던 김민기 숭실대 교수는 “방통위 사무처에는 이와 관련한 업무를 수없이 많이 해온 우수한 직원들이 있다”면서 “당시 사무처 직원들이 이 같은 중대한 하자를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방통위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방송사업자에 대한 지분 문제는 대주주뿐 아니라 주요 주주에 대해서도 샅샅이 스크린된다”면서 “일차적으로 관련 서류를 꼼꼼히 챙기고 하자가 있으면 즉시 보고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방송사업자들은 매년 주주현황 및 주주지분변동 상황을 보고함에 따라 방통위가 이를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다는 것이 방송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문제 불거지자 주식 대학교에 기부
그러나 당시 롯데쇼핑이 우리홈쇼핑 최대주주 변경 승인 과정에서 참여했던 복수의 방송위원들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이 우리홈쇼핑을 인수할 경우 유원미디어 지분을 처리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올라오지 않았다. 이에 따라 롯데홈쇼핑의 유원미디어 주식 처분과 관련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김민기 교수는 롯데 측에 대해서도 “아마도 롯데홈쇼핑은 이 사실을 알았어도 벌써 알았을 것이고, 알았으면 벌써 지분 정리절차를 밟았어야 했을 것”이라면서 “유원미디어가 적자 상태가 이어지고 있으니 여태껏 덮어뒀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롯데홈쇼핑과 방통위가 이와 관련해 이 사실을 단순히 간과했는지, 고의로 묵인했는지에 대한 사실이 향후에라도 명확히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인 롯데쇼핑이 2006년 12월 중소기업 육성지원 명분으로 설립된 우리홈쇼핑을 인수하면서 시민사회, 정치권, 방송계 등을 중심으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특히 우리홈쇼핑 인수를 승인한 방송통신위 의결과정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