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송 사장 제외 임원 11명 사표 제출… 대대적 ‘공기업 물갈이’ 과정서 재신임 받아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은 강원랜드가 비리로 얼룩져 시련을 맞고 있다. 검찰은 최근 강원랜드의 열병합발전소 건립과 관련해 직원 비리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현재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중수부는 8월 28일 강원랜드열병합 발전 설비 공사 과정에서 공사비를 부풀리고 편의를 봐준 대가로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배임수재)로 강원랜드 전 시설관리팀장 김모(55)씨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전 시설관리팀장 김모씨가 허위 보고로 백억 원대의 예산을 부풀리는 과정에서 수십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과 이 돈이 정·관계로 흘러갔는지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2008년 8월13일 강원랜드제출 반기보고서 기준
조순 전 총리 아들로 LG맨 출신
이 가운데 최근 조기송 사장을 제외한 임원 11명이 일괄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은 이번 비리가 이미 해임된 시설관리팀장 선에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임원에게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임원진의 일괄 사표 제출은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이라기보다 향후 또 다른 낙하산 인사를 위한 자리 비우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임원 일괄 사표 제출에 대해 강원랜드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임원의 일괄 사표 제출은 최근 지방언론의 기사를 보고 알았다”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없다”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사표는 아직 수리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참여정부시절 문화부와 산자부, 정치권과 국정원 등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새 정부 들어 ‘알아서 물러나는’ 수순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강원랜드의 등기 임원 김형배 전무는 강원도의회 출신이고 레저게임산업연구소에서 일하는 이건모 상무는 국가정보원 출신이다. 이옥형 상무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을 거쳤다. 이밖에 임원들도 문화관광부, 산업자원부, 석탄합리화사업단, 전력산업구조개혁단에서 소위 낙하산을 탄 인사들이다. 특히 집행 임원 9명 가운데 2명(황석찬 상무, 오한동 호텔사업본부장)이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수길 현 감사위원장이자 사외이사는 전 상공자원부 무역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새 임원진 역시 새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 채워질 것은 자명한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사표를 제출한 11명의 임원 중 8명이 정부 부처나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고 민간 출신은 3명뿐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임원의 일괄 사표 제출과 달리 현 조기송 사장은 지난 6월 사표가 반려되며 유임이 결정됐다. 조 사장은 강원랜드의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 이윤호 장관,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과 함께 전통적인 LG맨 출신으로 조순 전 부총리의 아들이기도 하다. 지난 정권 때 임명된 조 사장은 새 정부가 대대적으로 공기업 임원을 물갈이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공기업 기관장이다. 새 정부에서 업무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고는 하나 조 사장의 재신임에는 그가 LG출신이라는 점과 서울대 경제학과 인맥, 부친의 영향과 무관하지는 않아보인다. 소관부처인 지식경제부 석탄자원과 염동관 과장은 “내년 3월까지가 임기인 조기송 사장이 새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지난 2월 사표를 제출했지만 재신임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창의혁신담당관실의 김성실 서기관은 “지식경제부의 산하 단체에는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이 있는데, 기타 공공기관의 인사에는 관여할 수없다”면서 “강원랜드는 기타 공공기관이니만큼 강원랜드 대표이사의 신임 여부는 강원랜드의 이사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강원랜드 주식 36%를 소유한 최대 주주인 광해방지사업단(옛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은 지식경제부 산하단체로 지식경제부의 영향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번 비리 사건이 재신임을 얻은 이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수백억 원 규모의 이번 비리사건은 조 사장의 임기 중에 일어난 일로 정부의 공기업 개혁까지 맞물리며 조 사장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는 필연적으로 경영부실을 초래한다. 강원랜드는 이미 지난 2월 경영부실과 관련해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감사원이 밝힌 감사 결과 처분 요구서에 따르면, 강원랜드는 허위 경력자를 확인 없이 채용하면서 무려 7억7000만 원의 급여를 과다하게 지급해 환수조치 명령을 받았다. 또한 정부 방침인 퇴직금단수제에 역행, 퇴직금 누진제를 적용해 방만하게 운영하다 적발되어 시정조치를 받았고, 2단계 사업을 추진하며 개발이 불가능한 부지도 포함시켜 기본 용역계약을 체결해 5억여 원의 예산을 낭비했다고 지적받은 바 있다.
문제는 공기업인 강원랜드는 2003년 9월 증권선물거래소에 상장된 상법상 주식회사라는 데 있다. 작년에 강원랜드의 기관 운영 감사를 실시했던 감사원 최일동 감사위원은 “강원랜드는 국내 유일한 카지노로 최근 3년간 평균 2700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실현했지만 최근 들어 2003년부터 시작한 부대사업인 스키장, 골프장, 테마파크 등의 사업 손실로 전체 영업이익률이 급감하고 있다”면서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선의의 투자자이니만큼 기관 운영의 건전성, 효율성 및 부대사업의 적정성을 점검하기 위해 집중감사했다”고 밝혔다.
방만한 경영으로 주가 곤두박질
수백억 원대 비리와 비자금 조성 혐의,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시장 신뢰의 급락 외에도 최근 정부의 ‘사행산업총량규제안’ 추진으로 인해 강원랜드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달 초 2만4000원을 웃돌던 주가는 지난 9월 2일 14.92% 급락한 1만5950원으로 마감하며 1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5월 말 34%에 육박했던 외국인 지분도 최근 29%대로 크게 낮아졌다. ‘매출총액제한방침’에 대해 안팎의 우려와 반발이 거세지자 사감위가 다행히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겠다고 밝히면서 우선 급한 불은 꺼졌지만 매출 총액이 제한되면 강원랜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강원랜드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검찰조사 외에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카지노를 비롯한 도박산업의 매출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자금세탁방지법 상의 시스템 구축 등으로 초비상이 걸린 상태”라면서 “여기에 더해 지난 9월 1일 발표된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따라 매출 1000억 원 이상이 세금으로 나가야 할 판”이라고 밝혔다. 창립 10년을 맞아 사업영역확장 등으로 야심찬 의욕을 보여왔지만 정권교체기마다 정치바람을 심하게 탔던 강원랜드가 이번엔 어떻게 슬기롭게 위기를 넘길지 궁금하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