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정·책
종부세·양도세 감면하면 ‘강남부자 정권’ 비판에 직면할 듯

대선 직후 이명박 당선자가 규제를 풀어줄 것이라는 기대로 서울 강남 등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진은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부근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청와대 사진기자단>
“매물이요? 거의 없어요. BBK 수사가 발표되고 나서는 하루에 500만 원씩 오르더니 이젠 매물마저 다 거둬갔어요. 그날 보신 물건도 한 2000만 원은 올려줘야 말이라도 꺼낼 수 있어요. 어느 때보다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기대가 커졌잖아요.”(서울 강남구 개포 주공단지 앞 ㄱ중개업소)
대통령 선거 이튿날인 12월 20일 오전, 대선 하루 전인 18일 방문했을 때와는 상황이 또 달라졌다고 전하는 ㄱ중개업소 김모 사장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친시장정책을 표방한 이명박 후보가 당선하자 용적률 인상 등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강남 재건축 시장이 다시 술렁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사장에 따르면 그나마 나와 있던 매물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주민들이 부녀회와 반상회를 중심으로 대책회의도 준비하는 눈치다.
강남지역 다시 투기바람 조짐
송파 잠실 주공5단지 등 인근 주요 재건축 단지들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된 시점부터 급매물이 팔리거나 회수되고, 매도자들이 호가를 2000만~3000만 원까지 높이고 있다. 게다가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시 1000만~2000만 원 정도 매도가가 상승했다는 것이 중개업소 사장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닥터아파트 등 부동산 포털에 따르면 대선을 계기로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112㎡은 2000만 원이 뛴 12억2000만 원, 개포 주공 단지 42.98㎡의 경우도 1000만~2000만 원이 오른 7억8000만 원에 호가가 형성됐다.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강남 지역에 다시 ‘투기바람’ 조짐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새 대통령에 당선함에 따라 부동산 정책 변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 당선자가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인위적인 규제정책을 써온 참여정부와는 달리 도심 용적률을 높여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고 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세금 인하를 주요 부동산 공약으로 내건 만큼 그 혜택이 특정 계층에만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참여정부와 부동산정책에서 대립각을 세웠던 이 당선자의 부동산 정책은 크게 ▲장기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종합부동산세 감면 ▲도심재개발·재건축을 통한 공급 확대 ▲신혼부부를 위한 청약저축 ▲민간공동주택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우선 거주 목적의 장기보유 1가구1주택자에 대해선 종부세와 양도세를 감면해준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에 맞춰 한나라당도 종부세 상한선을 현행 종부세 합계의 300%에서 종부세 150%로 하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종부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종부세 대상을 현행 공시가격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올리더라도 집 부자의 부담은 그만큼 준다.
하지만 종부세 등 감면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은 강남을 위시한 일부 계층으로, ‘강남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으나, 현재의 보유세 중 어떤 조세를 강화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도심재개발 공약도 신도시를 공동화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당선자가 내건 “주택공급 확대로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의 내용은 강남 등 재건축 규제 완화 및 뉴타운사업 등 재개발을 통해 연간 50만 가구씩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도시 과밀지역에 용적률과 층수 규제를 풀어 집을 더 많이 짓는 게 효율적”이라며 “신도시 건설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풀린 보상금이 주변 땅값을 부추기는 등 부작용이 많다”는 게 이 당선자의 생각이다.
이에 따라 인천 검단, 화성 동탄2지구, 송파 등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수도권 신도시 추진은 다소 주춤할 가능성도 있다. 그 때문에 “수도권 신도시 건설과 도심 재개발 사업을 동시에 추진한다면 재원도 재원이지만 선호도가 떨어지는 수도권 외곽 신도시는 공동화할 수 있다” “용적률 완화는 사업자의 이익 증가로 사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나, 이는 도시환경의 악화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또 용적률 완화나 세제 완화 조치로 단기적으로 수혜대상이 되는 재건축 대상 주택이나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이에 대한 대책을 전혀 제시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정책 일관성·신뢰성 흐려선 안돼”
젊은 층의 내집 마련을 돕기 위해 내놓은 ‘신혼부부 청약저축’ 신설도 역차별 논란이 예상된다. 매년 공급되는 50만 가구 중 12만 가구를 무주택 신혼부부에게 우선 공급하겠다는 게 이 당선자의 공약이다. 신혼부부가 한 달에 5만~10만 원씩 납입해 첫 아이를 낳으면 1년 이내에 전용 80㎡ 이하 주택을 분양(임대)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공약은 이미 선거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약 40%가 무주택인 상황에서 자녀를 낳지 않은 신혼부부는 대상에서 빠지는 데다 결혼 10년차 안팎의 기혼부부 중에도 무주택자가 많아 이들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분양가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의 운명도 관심거리다. 이미 건설업계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분양가상한제가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실수요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조동근 명지대 사회과학대 교수는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정책 방향은 기업 활력 부상→일자리 창출→경제 부흥의 선순환 구조”라며 “부동산 역시 시장경제 원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과거 시장 기능에 대한 불신이 각종 규제를 만들어왔지만 이 규제가 결국 부동산 거래 중지와 시장 침체를 불러왔다”며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줄이고 국가는 중소형과 임대형 등 공공부문 역할을 견지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또 “선심성 국토균형개발보다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어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는 도심지역 건물의 용적률을 높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변창흠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참여정부 기간 만든 각종 부동산 규제는 여야 합의로 탄생한 것으로, 이 당선자가 주는 ‘시그널’에 의해 부동산 시장이 들썩인다면 문제”라며 “부동산 시장은 투기수요 억제와 실수요자 중심의 공급을 원칙으로 주택가격 안정화에 힘써야 하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일관성이나 신뢰성을 흐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건축 규제 완화와 분양가상한제 폐지에 대해 변 교수는 “부동산 업계가 거래가 저조한 이유를 규제 때문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외국에 비해 부동산 거래가 많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주택과 토지는 시장의 일반 상품이 아니라는 것.
업계에서도 전반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되, 시장 충격을 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실행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 1가구 1주택자에 대해서는 종부세나 양도세 등 세금 규제 완화가 필요하지만, 이미 주택가격이 워낙 올라 시장 과잉인 서울 수도권 활성화를 위한 이 같은 대책이 당장 절박한 것인지는 의문이다”라는 박원갑 스피드뱅크 소장의 지적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