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상품도 재무조건에 맞게… 금리보다 상환계획부터 따져야

대출받으면서 적금을 들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사진은 개인회생 신청자로 붐비는 서울중앙지법 창구.
“높은 대출이자 내면서 왜 적금은 따로 가입했죠?”
재무상담을 하면서 자주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잘 몰라서 그런 경우도 있고, 은행 직원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한 경우도 있다. 남편은 높은 마이너스 대출 이자를 부담하는데 아내는 그보다 훨씬 이자율이 낮은 적금에 가입한 경우도 있다. 어이없는 일 같지만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보는 일이다.
서울 근교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주영씨(가명·42) 사례를 보자. 김씨는 사업자금으로 은행에서 3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본인 명의로 2000만 원을 연이자율 12%로, 부인 명의로 1000만 원을 연이자율 11%로 받았는데, 둘 다 3년만기 일시상환 방식이다. 월 이자는 모두 29만 원 가량이다.
특이한 것은 대출과 동시에 가입한 적금을 담보로 한 대출방식이다. 월 불입액이 80만 원인데, 연이자율은 4.2%다. 세금우대상품이라 이자소득에 대한 세율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10.5%다. 결국 세율을 감안한 이자율은 3.8% 정도 되는 셈이다. 상담 시점까지 적립된 금액은 1900만 원이다.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대출이자는 11% 이상인데, 대출금을 갚기 위한 적금 이자율은 3.8%다. 더 큰 문제는, 대출이자는 3년 내내 원금 3000만 원에 대해 11% 이자율이 적용되는데(월 29만 원) 적금은 적립된 금액에 대해 이자가 적용된다는 것이다(첫달 2533원 둘째달 5066원). 은행에 내는 대출금 이자는 월 29만 원씩 3년간 합 1044만 원인데, 적금에 대한 이자는 세금을 빼면 168만 원 정도다. 무려 876만 원이나 차이가 난다.
보통 상환방법에 따라 총 납입이자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2000만 원을 대출 받아 연이자율 10%로 5년간 상환한다고 가정해보자. 만기일시상환으로 하면 총 이자가 약 1000만 원이다. 반면 원리금균등상환으로 하면 약 550만 원, 원금균등상환은 약 508만 원이다.
대출받으면서 적금 드는 건 가장 손해 보는 방식 은행에 내는 이자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만기일시상환으로 하면 원금을 갚을 길이 막막한 것이 더 큰 문제다. 결국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은행에서는 대출을 해주면서 적금을 권장하지만 이것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고객 입장에서는 가장 손해보는 방식이다.
물론 원리금균등이나 원금균등상환은 만기일시상환에 비해 월 납입액이 많다. 만기일시상환이 약 17만 원인데, 원리금균등상환일 때는 약 42만 원이다. 원금균등상환일 때는 첫달 50만 원에서 점차 줄어 마지막 달에는 34만 원을 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출상품을 선택할 때 금리를 우선시 할 게 아니라, 대출상환 계획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전체 지출계획을 고려해 감당할 수 있는 원리금 상환금액을 설정하고, 그 다음 대출기간과 대출금액을 정하게 되면 원금도 갚아나가고 납입이자도 덜 내게 되는 이점이 있다. 이것이 바로 재무설계다. 이런 설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급하게 대출을 받게 되고,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금 해약해서 대출금 갚는 게 낫지 않을까요?” 위 원리를 설명하며 김씨에게 말했보았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은행에서 안 해줄 거라는 거였다. 그러나 그것은 김씨가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은행을 찾아가 적금을 해약해 1900만 원을 상환했다. 나머지 원금 1100만 원은 2년간 원금균등상환으로 갚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그동안 거래실적을 내세우며 이자율을 7%로 낮춰 월 52만 원 정도씩 내는 조건이다.
대출이 없는 가정일수록 저축률 높고 자산구조도 선진적 재무구조가 약한 일반 가계에서 대출에 대한 부담은 결코 작지 않다. 10여 년 전 대기업에 다녔던 박상구씨(가명·43) 사례가 단적인 예다. 박씨는 사업실패로 진 빚이 6000만 원 정도 됐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 대기업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괜찮은 급여였지만, 매달 원리금을 갚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입사 3년차에 IMF 사태가 터져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이자는 오르고, 급여는 삭감된 것이다.
박씨가 이렇게 빚 상환에 허덕이고 있을 때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료들은 회사 근처 소형아파트를 하나씩 사서 입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박씨의 빚은 크게 줄어들지도 않았다. 박씨는 “거의 이자만 내다 만 꼴”이라고 토로했다.
포도에셋이 재무상담을 받은 소득 200만~700만 원 범위의 2700여 가구의 부채상환 부담을 조사해 보니, 부채가 1000만 원 이상인 가구(A그룹)의 저축률은 부채가 전혀 없는 가구(B그룹)의 50%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A그룹의 월소득은 402만 원으로 B그룹의 월소득 358만 원보다 10% 이상 많았다. 그런데 A그룹이 자산은 더 많지만,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은 오히려 B그룹이 20% 이상 더 많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월 저축을 비교해 보면 A그룹은 월평균 45만7000원으로 소득대비 11.4%에 지나지 않는 데 반해 B그룹은 74만2000원으로 소득대비 20.7%나 된다. A그룹의 소득대비 부채상환액 비중이 12.6%인 점을 감안하면, A그룹은 부채상환액 정도의 저축 손실을 보고 있다고 해석된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자산 가운데서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A그룹은 14.6%밖에 되지 않는데 B그룹은 37%가 넘는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자산에서 부동산자산보다 금융자산 비중이 높아지는 점을 생각해 보면 부채가 없는 가계의 재무구조가 훨씬 건전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출이자율보다 상환방법과 기간을 먼저 설계해야 이처럼 대출은 가정재무에 아주 불리한 요소다. 무리한 대출보다는 가계 금융자산을 늘리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또한 어쩔 수 없이 대출상품을 선택할 때도 자신의 재무여력을 먼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상환방식과 상환기간 등을 설계해야 불필요한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다.
“부자가 되려거든 은행을 떠나라”는 말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은행이 수익성만 추구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기도 하지만, 금융기관과 상품이 복잡해졌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에게 도움되는 금융기관과 상품을 적극적으로 찾아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합리적인 대출상환 방법과 계획은 특별한 방법도 아니고 남 모르는 고급 정보도 아니다. 잘 모른다고 내버려두지 말고, 문제점을 찾아보고 그 해결방법을 찾으려고만 하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가정재무에서 새는 돈을 잡는 첫걸음이다.
이광구<포도에셋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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