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결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10월 21일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내려진 직후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공약사항으로 추진한 만큼 대통령의 결정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날밤 열린우리당의 긴급 의원총회는 예상보다 일찍 마쳤다. 2시간이 넘어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이종걸 원내 수석부대표가 국회 기자회견실에서 브리핑을 했다. 이 부대표는 마치 헌법재판소의 결정문 낭독처럼 의총에서 제시된 의견을 하나씩 설명했다. 율사 출신답지 않게 법적인 설명은 깔끔하지 않았다. 9시 저녁뉴스를 앞둔 한 방송기자가 설명을 끊고 결론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답 역시 명료하지 못했다. 다시 긴 설명을 이어가던 이 부대표가 "제가 말하는 것이 어렵습니까"라고 묻자, 한 여기자는 "헌재 결정문보다 어려운데요"라고 말했다. 이 부대표의 긴 설명은 열린우리당의 어정쩡한 입장을 대변해주는 셈이었다.
결론없이 끝난 열린우리당 의총은 청와대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진 '9월의 여당'으로 돌아가 있었다. 당시 여당에서 국보법 폐지를 두고 개정과 폐지로 논란을 거듭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9월 5일 방송된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국보법은 박물관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겠는가"라고 언급했다. 이후 국보법은 폐지 쪽으로 급물살을 탔다. 여권의 방향타는 여전히 청와대에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여권 방향타는 여전히 청와대에
10월 21일 의원총회의 참석 의원들이 전하는 상황에 의하면 당이 여러 의견을 내놓았지만 노 대통령의 의견을 구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만 당은 노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여러 카드를 이날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밤 이종걸 원내부대표가 오랫동안 설명한 당내 의견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국민투표 방안, 다른 하나는 청와대와 국회를 제외한 행정기관 이전이었다. 국민투표 방안은 열린우리당 내 매파(강경파)의 의견이다. 헌법재판소가 수도 서울의 문제는 관습헌법에 해당하며 이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의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결정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커버스토리]국민투표? 행정기관선택 이전?](https://img.khan.co.kr/nm/ContentsObject/8/8431_1_a4_1.jpg)
이 시나리오를 따를 경우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부의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여권은 이미 헌재의 위헌소송 청구권자들이 수도 이전이 국가의 안위에 해당하는 만큼 국민투표의 조건이 된다는 주장을 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수도 이전에 대한 국민투표 여부에 대해 반대해온 여권으로서는 국민투표를 강행할 경우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헌재의 결정에 반할 수도 있어 헌법 개정 절차 없이 바로 국민투표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위헌으로 헌재에 제소될 가능성이 있다.
강경파는 국민투표 주장에 동조
열린우리당 내 비둘기파(온건파)는 비교적 현실적인 방법을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헌재가 위헌결정문에서 수도의 핵심개념을 '대통령과 국회의 소재지'라고 의미를 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를 제외한 행정기관이 신행정수도 후보지였던 공주-연기로 옮겨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관료-전문가 출신의 의원과 재선 이상의 중진의원이 비둘기파에 속한다.
이들 의원은 과천청사 또는 대전청사 이전 당시 아무런 논란없이 진행됐음을 예로 들며 공주-연기로의 행정기관 이전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여권은 당-정-청 협의를 통해 이 방안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행정기관의 범위이다. 여권 일부는 충청도에 '행정수도'가 아닌 '행정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부영 의장과 이종걸 원내부대표 등 여권 지도부의 발언에 이같은 의지가 묻어나고 있다. 하지만 외교통상부와 국방부-통일부-재경부 등 핵심부서가 충청도로 이전될 경우 여전히 헌재 결정과 배치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때에도 야당 쪽에서 헌재에 헌법소원소송을 낼 경우 헌재의 최종 결정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교육-사회 부처와 일부 과학기술 관련 부처만 옮기자고 주장하고 있다.
행정기관의 이전 장소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공주-연기보다 교통-지리-경제적 요건이 훨씬 유리한 곳을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민주당 후보 경선 당시부터 행정수도 이전 정책을 건의한 배기찬 청와대 전 행정관은 "행정기관 일부의 이전을 위해 공주-연기의 넓은 땅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의총에 참석한 한 초선의원은 "헌재의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들이 쏟아져나왔지만 내부의 조용한 목소리가 당의 기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헌재의 결정에 반발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다른 국면전환을 노리는 것이 여당의 분위기이란 것이다.
청와대-국회 제외 행정기관만 이전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서 논의된 '국민투표안' '충청도 행정도시안', 이 두 가지 큰 흐름 속에서 한 카드를 의중에 두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행정관 출신으로 오랫동안 노 대통령을 보좌해온 백원우 의원은 헌재의 결정 바로 직후 "노 대통령의 원래 스타일로 보면 국민투표 쪽으로 강행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배수의 진을 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생각도 만만치 않다. 역시 노 대통령의 곁에서 오랫동안 정책을 입안해온 배기찬 전 청와대 행정관은 "국민투표는 위험부담이 많아 노 대통령이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배 전 행정관은 "고려시대에 개경을 수도로 하고 평양을 서경으로 한 양경(兩京)제처럼 서울이 주 수도이고 충청도에 행정도시를 두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10월 25일 이해찬 총리가 대독한 국회시정연설을 통해 "헌재 결정의 법적효력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을 것" 이라고 밝혔다. 헌재결정직후 "처음듣는 이론" 이라고 반론을 펼쳤지만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발언은 여전히 헌재의 결정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역설적 의미도 함께 담고있다.
노 대통령과 가까운 여권 중진의원들의 발언을 통해 노 대통령의 의중을 점쳐볼 수 있다. 문희상 의원은 청와대와 국회를 제외한 행정기관 이전쪽에 뜻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유인태 의원은 10월 21일 의원총회에서 "헌재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수도 이전은 리포트에서 출발?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행정수도 이전에 매달리게 됐을까. 행정수도 이전은 2002년 대선의 마지막 TV토론에서 핵심쟁점이 됐다. 2004년 6월 15일 국무회의에서는 "정부의 명운과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까지 했다.
행정수도 이전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2002년 5월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이후이다. 노 대통령이 민주당 정책위 전문위원들과 대선정책에 대해 논의하면서 행정수도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삼게 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현 이해찬 총리가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7월 29일 전남 목포에서 열린 광주-전남지역 혁신발전 5개년 계획 토론회에서 노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은 국민의 정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해찬 당시 민주당 기획위원장이 추진하다 그만둔 것을 되살렸다는 배경을 이야기했다. 2002년 대선에서 이 총리는 선대위 기획본부장으로 선거전략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아이디어는 노 대통령의 후보 경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말과 2002년 초 사이 경선캠프에서 배기찬 전 청와대 행정관이 당시 정책 분야를 맡고 있었다. 배 전 행정관은 노 대통령에게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이때 정책팀에서 일본 사례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추진 사례 등을 모아 4∼5쪽의 보고서를 올렸다. 지방분권을 위한 바람직한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노 대통령은 이때 "수도 이전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배 전 행정관은 "그 이후 노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가 될 때까지 행정수도 이전을 거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통령 후보가 된 이후 행정수도 이전이 본격적으로 거론됐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행정수도 이전을 처음으로 건의한 것은 백원우 의원인 것으로 보인다. 백 의원은 당시 고려대 정책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학교에서 백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했다고 한다. 이때 백 의원은 지방분권을 위해서는 행정수도 이전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노 대통령에게 제시했다고 한다. 백 의원은 "당시 노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과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학원의 리포트로 시작된 행정수도 이전 구상은 경선캠프의 정책 의견으로, 다시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참여정부의 핵심사업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다시 물밑으로 가라앉는 기구한 운명을 겪게 됐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