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와의 전쟁인가" 아니면 "언론보도의 과민증인가".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노무현 정부가 신청한 언론중재위 건수가 드러나면서 언론탄압 논란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지난 8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정부부처가 신청한 언론중재 건수는 247건이다. 이는 언론중재위가 발족한 1981년부터 2003년까지 국가기관이 신청한 496건의 절반에 해당한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집권 5년 동안 8건만이 언론중재위에 제소됐다. 김영삼 정부엔 27건이었다. 언론사 세무조사 등으로 정부와 언론의 긴장관계가 집권 5년 내내 이어졌던 김대중 정부에서도 중재신청 건수는 118건을 기록했을 뿐이다. 월평균 1.97건에 지나지 않는다.
올 전체 신청건수의 27% 차지
![[정치]언론중재위 최대단골은 정부](https://img.khan.co.kr/nm/ContentsObject/8/8141_1_a4_1.jpg)
언론중재제도는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이 거대한 언론의 전파력과 언론기관의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리적인 언론기업의 위세와 편견에 의해 부당히 침해되고 노출될 경우 개인 권익을 신속-적절히 보호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장치'다. 즉 언론중재제도의 취지는 국가기관보다는 국민 개개인이 언론기관에 의해 부당하고 편파적 보도를 당하지 않도록 구제하는 제도인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기관의 언론중재신청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국가기관이 국민 개개인 권익보호를 위한 장치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대통령 탄핵사태 때 중재신청 건수에 그대로 투영됐다. 탄핵 직전인 2월 중재신청 건수는 23건이었으나, 탄핵국면에 들어간 3월에 12건, 4월에 9건, 5월에 16건 등으로 다소 주춤했다. 탄핵국면이 마무리된 6월 말에는 무려 52건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정부가 비판 언론들을 상대로 언론중재 신청을 남발, 언론 길들이기용으로 활용하고 있어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비판하고 "이같은 폭증은 언론이 경제위기 타개와 관련된 각종 경제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데 대해 정부가 과민하게 반응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경주대 박기태 교수(언론학)는 "정부부문, 즉 행정기관 등의 중재신청이 급증하는 것은 직업 공무원의 면피성 신청, 정무직 공무원의 정치적 필요성, 그리고 전시성 신청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이다"고 말했다.
정부와 언론의 힘겨루기인가
그러나 언론중재의 실효성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중재신청사건을 언론중재위가 창립한 1981년부터 2003년까지 14년을 분석한 결과, 언론중재 효과가 나타난 합의율은 31.3%에 불과하다. 중재불성립(20.1%)이나 취하(43.0%), 각하(0.5%) 등의 비율이 60%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 언론중재위 관계자는 "개인에 비해 정부가 신청한 언론중재 합의율이 다소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합의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언론중재위 조정은 전혀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 언론사가 반론보도를 거부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언론사 입장에서는 명예훼손소송으로 인한 많은 재정부담 없이 사전단계에 효과적으로 피해자들의 불만을 처리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정치]언론중재위 최대단골은 정부](https://img.khan.co.kr/nm/ContentsObject/8/8141_2_a4_2.jpg)
언론중재위원 경력이 있는 한 변호사는 "실제 언론중재의 조정과정에서 참여해보면 정부와 언론기관의 불신이 매우 짙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중재조정이 의외로 쉽게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한 정부 기관과 언론사 간의 언론중재 과정도 그 한 예에 불과하다.
![[정치]언론중재위 최대단골은 정부](https://img.khan.co.kr/nm/ContentsObject/8/8141_3_a4_3.jpg)
신청인측 대리인:"그렇게 자신있다면 취재원을 밝히고 당장 사실을 확인, 우리 부처의 명예를 회복해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정정보도문을 게재해야 합니다."
피신청인측 대리인:"취재원을 밝히지 않은 것은 국가이익은 물론 고발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고려였습니다."
언론중재위원장:"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보도내용도 당장 사실을 확인할 수 없을 것 같고.... 중재위원장으로서 반론보도를 제안하는데 신청인측 입장은 어떻습니까?"
신청인측 대리인:"좋습니다."
피신청인측 대리인:"그렇게 하겠습니다."
중재위원장:"반론보도문 작성을 위해 잠시 정회하겠습니다."
이 중재 상황의 논쟁 핵심은 '정정보도문'이냐 '반론보도문'이냐는 것이다. 정정보도문과 반론보도문 모두 법이 정한 '반론권'에 해당한다. 정정보도문에는 "~이 잘못됐음으로 ~으로 고친다"는 내용이 포함되는 반면 반론보도문에는 "~으로 보도했으나 ○○기관이 ~이라고 주장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게 보통이다.
박기태 교수는 "국가기관이 신청한 대부분의 언론중재는 반론보도문이냐 정정보도문이냐를 놓고 다투는 게 보통이다"면서 "이 역시 언론중재 건수 폭증과 마찬가지로 정부와 언론이 힘겨루기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이나 독자 입장에서 그런 논쟁에 귀기울겠냐"고 반문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