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영등포 중앙당사 1층에는 최근까지 두 전 특보의 사무실이 있었다. 이강철 전 영입추진단장과 염동연 전 정무조정위원장이 함께 쓰는 방이었다. 두 사람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조직특보와 정무특보로 활동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이다. 조직과 정무라는 직책이 있었지만 사실상 '영남특보'와 '호남특보'로 불릴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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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단장은 총선을 치르고 2주일이 지난 4월 말까지 당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구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염 당선자는 강원 양양의 오색그린야드 호텔에서 열린 당선자 워크숍에 참석했다. 염 당선자는 워크숍 이틀째인 4월 27일 저녁식사를 마친 후 호텔 휴게실에서 당선자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김원기 상임고문, 문희상-김혁규 당선자와 함께 앉아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시니어그룹이 모인 셈이다. 김혁규 당선자와 함께 염 당선자는 초선이지만 3선에 해당하는 중진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선 이후 두 전 특보는 서로 운명이 엇갈렸다. 염 당선자는 당내 영향력 있는 '중진'으로 뛰어올랐지만 이 전 단장은 금배지를 달지 못한 채 청와대의 배려를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됐다. 이 전 단장은 최근 청와대 정무수석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친근한 '예스맨'과 무뚝뚝한 '노맨'
두 전 특보는 평소 서로 친구처럼 말을 편하게 하는 등 주위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관계임을 내비쳤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이후 암묵적으로는 경쟁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이 전 단장은 공직후보자자격심사위원회와 비례대표선정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후보 선정에 참여할 만큼 당내에서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지분을 갖고 있었다.
염 당선자 역시 '나라종금 뇌물수수'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당의 정무위원장직을 맡았다. 총선 후보 선정 과정에서 낙마한 인사들을 다독거리면서 공천 후유증을 줄이는 역할을 한 것이다.
두 전 특보와 가까운 한 인사는 "염 당선자는 사람을 잘 다스리고 조직관리에 능한 반면 이 전 단장은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성격으로 잔정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한 예로 '챠라'(치워라)라는 이 전 단장의 특징적인 말투를 언급했다. 이 전 단장은 옛날 재야운동 시절의 의리를 중시하며 선이 굵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염 당선자는 '예스맨'으로, 이 전 단장은 '노맨'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내 한 인사는 "염 당선자는 노 대통령과 사장-직원이라는 계약관계에 있지만 이 전 단장은 노 대통령과 동업자관계"라고 말했다.
염 당선자는 당내 인사들에게 "차기 대권을 창출하겠다"며 '킹메이커'로서의 의지를 내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이 전 단장은 평소 "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무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두 전 특보의 차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라종금, 장수천 등 측근비리 의혹으로 노 대통령의 측근들과 돈 문제가 얽혀 있는 염 당선자는 대통령의 측근들과 절친하다. 안희정씨와는 각별한 관계로 소문나 있다. 이광재 당선자와도 가까운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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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당선자와 이 전 단장은 총선 전 행보에서 서로 다른 성격을 드러냈다. 염 당선자는 거침없는 말투로 악역을 자처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염 당선자는 총선 출마를 주저하는 청와대 측근들에게 일격을 가했다. 특히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에게는 "왕수석을 더하고 싶으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염 당선자는 이 전 단장에게도 함께 나서길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전 단장은 끝내 침묵했다. 최근 염 당선자는 4월 20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명의 민주당 의원에게 열린우리당 입당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정 의장 '노풍'에 날아간 이강철
두 사람의 당내 역학관계는 당의 실세인 정 의장과의 관계 설정에서 엇갈렸다. 지난해 이 전 단장은 정 의장과 함께 김원기-이해찬-정대철 의원 등 시니어그룹을 뒤로 밀어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월 전당대회에서 이 전 단장이 신기남 의원을 밀면서 조금씩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틈은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의 영입 이후 더 벌어졌다. 김 전 지사를 영입한 이 전 단장이 김 전 지사가 '차기 지도자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 의장측으로서는 불쾌하게 들렸을 법한 이야기였다.
비례대표 후보 선정 과정에서 ㅂ후보를 고집했던 이 전 단장은 끝내 정 의장측과 대립,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이 전 단장과 정 의장의 갈등은 정 의장의 '노인 폄훼 발언'으로 절정에 다다랐다. '노풍'으로 대구-경북의 지지율이 급속도로 가라앉아버린 것이다. 일부 대구-경북 후보들이 정 의장의 선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다. 정 의장이 지원유세를 위해 이 전 단장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에 가려고 했으나 이 전 단장측은 이를 거절했다.
총선 결과가 발표된 직후 정 의장측의 한 인사는 "이 전 단장이 총선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두 사람은 화해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전 단장측 인사는 "대구 지역 후보들이 정 의장의 사퇴를 요구할 때도 이 전 단장은 가만히 있었다"며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이 없다"고 말했다. 정 의장측에서도 이 전 단장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염 당선자가 이 전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 의장과 화해하기를 촉구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이 전 단장은 최근 6월 지방선거를 위한 공직후보자자격심사위원이 됐다.
2002년 대선의 주역인 두 전 특보는 총선 이후 새로운 위상을 부여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저울추는 초선의원인 염 당선자 쪽으로 기울었다. 염 당선자는 계속 정무조정위원장으로 당내와 청와대, 공기업 인사를 총괄하는 임무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당내 여러 인사들이 벌써 염 당선자 주위로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일부 대구-경북 인사들조차 염 당선자와의 친분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이 전 단장의 청와대행 여부와 염 당선자의 '나라종금 재판' 2심 결과에 따라 두 전 특보의 저울추는 다시 움직일지도 모른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