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장비, 속은 조조'라는 문희상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를 떠났다. 참여정부 1년의 산 증인인 그는 자신을 '병풍'에 비유하곤 했다. 들볶고 투쟁하기보다는 감싸안고 통합시키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고, 그래서 집권 초기마다 중용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문 전 실장은 김대중 정부 첫해 청와대 정무수석을 맡았고, 노무현 정부 첫해엔 비서실장을 지냈다. 하지만 이젠 '결혼식 때 쓸 병풍과 제삿날 쓸 병풍은 달라야 한다'며 자신의 병풍을 스스로 접고 열린우리당으로의 하방을 택했다.
문 전 실장을 참여정부의 첫돌인 지난 2월 25일 만났다. 퇴임 후 첫 공식 인터뷰였다. 그는 "청와대에서 벗어나니 잠을 실컷 잘 수 있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하지만 표정에선 아쉬움도 엿보였다.
![[인터뷰]문희상 전 대통령 비서실장](https://img.khan.co.kr/nm/ContentsObject/6/6727_1_a5_1.jpg)
"개인적으로는 A++를 주고 싶다. 최선을 다했다. 대통령이 재신임 발언을 하던 날, 기진맥진하더라. 더 도와드릴 일이 없다, 책임을 져야겠다고 했다. 그날 이후론 죽은 목숨, 가시방석이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모르겠다. 종래 권위주의적 대통령 시절의 2인자로서 비서실장 역할은 전혀 한 것이 없다. 그러나 2인자가 있을 수 있나. 종전 기준과 역할에 맞춘다면 C-도 안 될 것이다."
참여정부 첫해의 국정수행 평가가 낮은데.
"지지자나 반대자나 옛날 식으로 대통령을 봐서 그렇다. 대통령은 자신의 어법이 있다. 때로 경솔하게 들리지만 우리가 볼 때는 큰 실수가 아니다. 연수회 같은 데 가면 100% 청중들을 따르게 한다. 설득력이 있다. 타고난 재능이다.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은 기존 관념으로만 본다."
국민한테도 좀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도 말을 아끼고 조심해야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솝우화에 당나귀 부자가 나온다. 아버지가 당나귀 타고 가면 아들이 걷게 되고, 아들이 타면 아버지가 걷게 되고, 결국 나귀를 짊어지고 갔다는 얘기다. 이런저런 것 신경쓰면 아무것도 못한다. 일은 또박또박 챙기되, 갈 길을 갈 것이다."
특히 경제 분야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
"(피부로 느끼는)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럴 것이다. 대통령은 경제부총리에게 어렵더라도 인기 위주의 정책을 쓰지 말라고 했다. 대신 부동산 안정은 확실하게 하라고 주문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카드 사용 확대 정책을 펴는 등 '외상'을 했고, 지금 그것을 갚는 과정에서 경기가 좋지 않았다고 본다."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경기가 안 좋아서 누가 그 자리를 맡았더라도 욕을 먹었을 것이다. 경기가 회복기에 들어서 이제 점수를 딸 수 있을 때쯤 나가게 돼서 대통령이 많이 안타까워했다. 1기 내각은 할 일을 다했다. 밥 짓는 사람과 밥 먹는 사람이 다른 법인데, 공직자와 정치인은 이에 대해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과거 정부는 경부고속도로-인천공항 등 후세대를 위한 국가기반시설을 만들었다. 참여정부는 이같은 노력이 없는 것 같다.
"이 정부가 다른 정부와 다른 점은 하드웨어적 측면보다 소프트웨어적 측면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슬로건 위주, 눈에 보이는 과시 위주가 아니다. 질적인 측면에서 천지개벽을 이루려고 한다. 일례로, 권력 운용에서는 '체크 앤드 밸런스'다. 총리에게 사회적 이슈에 대한 조정권을 거의 넘겼다. 옛날에는 대통령이 수석비서관을 통해 장관들을 좌지우지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가적 현안에 대해 정부가 국회를 적극 설득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대통령은 최선을 다했다. 권위를 무너뜨리며 할 것 다했다. 직접 국회에 가 4당 대표에게 부탁했다. 총리실에 대책반 만들어놓고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동그라미-세모-가위표 다 챙겼다."
측근비리와 관련, 청와대 민정시스템에 대한 지적이 많았는데.
"세상이 바뀌어 검찰과 국정원이 개혁됐다. 민정(수석실)이 담당했다. 그런데 민정이 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수사권이 없다. 옛날 생각하면 검찰 동원하면 되지만, 오버하면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다."
대통령이 안희정씨를 동업자라고 하고, 이기명씨에게 공개서한을 보낸 것은 온정주의 아닌가.
![[인터뷰]문희상 전 대통령 비서실장](https://img.khan.co.kr/nm/ContentsObject/6/6727_2_a5_2.jpg)
신임 민정수석이 대통령과 사시공부를 함께 한 사람이고, 공직기강비서관도 대통령의 고교 후배다. 측근 인사 아닌가.
"사실이 아니며 동의할 수 없다. 지연이나 혈연으로 이어지는 것이 역대 대통령 중 제일 약하다. 부산상고 출신이 장-차관 중 한 명도 없다."
대통령이 최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과 인터뷰했다. 사주와 인터뷰한 것은 이례적이고, 그자리에서 기업인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언급도 나왔다.
"언론정책이 바뀐 것은 아니다. (중앙일보에 대해) 봐준 것 없다. 부수를 늘려주기라도 했나. 모든 발행인과 인터뷰하지 말라는 의미냐. 기업인에 대해선 대통령이 시종일관 살살 다뤘으면 좋겠다고 말해왔다. SK 수사 때부터 그랬다. 국민정서는 반반이겠지만, 공갈받아 어쩔 수 없이 준 것 아닌가."
삼성 돈은 공갈받아 준 돈치고 액수가 너무 크다.
"액수가 크니까 공갈이지. 미친 사람 아니면 공갈받지 않고 이 정도 주겠나."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지적도 있다.
"요즘에는 대통령이 말하면 거꾸로 된다. 세상이 변했다. 대통령과 가깝다고 말하는 순간 더 당한다."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몇 석이나 얻을 것으로 보나.
"100석은 넘을 것이다. 국운을 믿는다. 지금 국운이 상승세다."
비서실장 그만둘 때 대통령의 특별한 당부가 있었나.
"무슨 말씀을 해서가 아니라 나는 나의 임무를 알고 있다. 지금까지 할 만큼 했고, 내가 할 일은 또 있다. 충실히 하겠다.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글 김민아(정치부 기자) makim@kyunghyang.com·김용석(경제부 기자) kimys@kyunghyang.com·사진 김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