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VS 고영희 목숨 건 후계자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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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한 국가의 정보당국을 긴장시키는 정보가 입수됐다. 북한 최고실력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 고영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정보당국은 즉시 분석팀을 가동, 미국에 망명한 북한 인사들에게 이 정보가 함축하는 의미를 캐묻기도 했다. 망명 인사들 가운데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부인 고영희(50)의 여동생 고영숙(45)과, 그녀의 남편이자 김 위원장의 비자금을 담당했던 박건(47)이 포함돼 있었다.

미 망명 김정일 처제 고영숙 증언

김정남 VS 고영희 목숨 건 후계자 전쟁

지난 9월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차량정비소에 최고급 벤츠가 한 대 들어왔다. 벤츠는 앞 부분에 커다란 외상을 입은 상태였다. 교통사고가 틀림없었다. 정비소 근무자들은 그 차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보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이자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고영희였다. 차에서는 향수 냄새가 진동했다. 고영희가 자주 사용하는 향수였다. 정밀조사 결과 차량 내부의 기능은 이상이 없었다. 운전자 실수나 외부 충격에 의한 사고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그러나 당 중앙 차량정비소 사고조사 보고서에는 사고 이유로 브레이크 파열 즉 '차체 결함'으로 기록된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누구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긴 기록이었다. 정비 불량에 따른 사고라면 정비소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숙청되거나 처형당할 수밖에 없다. 운전 실수 역시 운전자뿐 아니라 운전자의 상급자들도 무사할 수 없다. 출고된 지 1년도 안 된 차량이 브레이크 사고가 났다는 기록을 벤츠회사가 알았다면 항의할 만한 일이었지만 적어도 북한에서만큼은 그럴 일이 없었다.

고영숙에 따르면 고영희는 김 위원장으로부터 차를 10여 대 가량 선물받았다. 모두 216(김 위원장의 생일인 2월 16일에서 따온 것)으로 시작하는 번호판이 달려 있는 것이다. 고영희는 운전을 할 줄 모른다. 고영희가 외출하면 무장 경호차량이 2중, 3중으로 호위한다. 다른 차량이 접근하는 일도 없지만 혹여 접근할 경우 경호차량이 무조건 공격을 한다. 따라서 좀처럼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의해 교통사고가 날 수 없는 구조다.

운전자 실수에 의한 사고 발생 가능성도 적다. 운행 상황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경호차량이 다가가 막아 멎도록 하기 때문이다. 차량 결함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고영희의 차량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벤츠다. 고영숙은 "결론은 단 하나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운전자가 고의로 사고를 낸 것이다. 사고 배경에 김정남이 있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문제는 고영희가 그 사고 차량에 타고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고영숙은 고영희가 외출 시 반드시 향수를 뿌릴 만큼 향수를 애용한다고 밝혔다. 이로 미뤄 사고 차량에 고영희가 타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 정보당국은 모종의 루트를 통해 고영희가 김정일의 부름을 받고 급히 가다가 커브길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 VS 고영희 목숨 건 후계자 전쟁

이 즈음 정보기관들의 시선은 지난 6월 16일 김용순 노동당 중앙위 대남담당 비서의 교통사고에 집중됐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이 주최한 비밀파티에 참석한 직후 귀가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차량을 조사한 당 중앙 차량정비소 기록에 따르면 그 사고 원인도 브레이크 파열이었다. 이 사고로 중상을 입은 김 비서는 지난 10월 26일 숨졌다.

3개월 간격으로 발생한 두 건의 교통사고는 언뜻 보면 연결고리가 전혀 없다. 그러나 김 비서가 생전에 고영희에게 충성을 바쳤으며, 고영희의 소생인 김정철(22)-정운(20) 형제의 후계자 옹립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고영숙의 충격적 증언을 감안하면 두 건의 교통사고가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고영숙에 따르면 고영희는 1991년도부터 김 비서에게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받았다고 한다. "김용순은 달리 선택의 길이 없었을 것이다. 언니의 눈 밖에 나면 숙청당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고 고영숙은 말했다고 한다. 고영희는 처음 자신의 두 아들이 당시 위세당당했던 김정남에 의해 해코지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소박한 마음에서 김 비서를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였다. 김 비서에게 자주 선물을 주었고, 비밀파티에서는 공개리에 김 비서에게만 술을 내리기도 했다.

고영희와 김 비서의 연대는 차츰 두 형제의 후계자 옹립 쪽으로 성격이 변해갔다. 두 아들의 안전을 위해선 두 아들 가운데 한 명이 후계자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고영희가 판단한 것이다. 고영숙은 자신이 미국 망명을 한 1998년에 고영희가 김 비서와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고영숙의 증언에 따라 미 정보당국의 시선은 김정남에게로 돌려졌다.

1990년대 중반까지 김정남은 누가 봐도 김 위원장의 후계자였다. 그는 10만 병력의 호위총국 간부직을 맡은 적이 있었고, 총국장 이을설로부터 무한대의 충성을 향유했다. 이을설은 김정남을 친손자나 다름없이 아꼈다고 한다. 노동당의 지지도 상당했다. 장자를 선호하는 유교적 관행이 남아 있는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의 위상은 굳건한 바위 같았다. 김정남은 김 위원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의 책임자가 됐고, 미사일의 해외판매업무도 맡았다. 가히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권세였다.

김용순 대남비서 교통사고도 의혹

김정남 VS 고영희 목숨 건 후계자 전쟁

김정남은 이런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이을설의 도움을 받아 호위총국을 완전히 장악했다. 노동당과 국가안전보위부의 상당수 간부도 충성을 맹세했다. 고영숙은 "그러나 대다수 군 및 당 간부들은 김정남과 고영희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들은 겉으로 말은 안 했지만 김정남과 언니가 대결 양상으로 치닫자 대단히 곤혹스러워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김정남은 세력이 강했지만 그렇다고 김정일이 아끼는 언니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보일 수도 없어 전전긍긍했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김정남과 고영희의 세력 다툼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001년 5월 김정남이 위조여권을 소지한 채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되는 바람에 중국으로 강제출국 조치된 뒤 귀국하지 않은 것이다. 김정남이 여태껏 쌓아온 권력기반을 잃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중국 소식에 밝은 한 재미교포는 "김정남은 중국 추방 직후 김 위원장에게 혼날 것을 우려해 귀국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북에 들어가면 자신의 활동이 제한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 교포는 "김정남은 이후 언행이 한결 신중해졌다"고 밝혔다. 베이징에 머물 때 이전과 달리 미국 등 서방 인사들과 접촉하는 것을 자제했으며, 서방 국가로의 여행도 꼭 필요할 때 외에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으로 김정남은 해외에 거주하면서도 호위총국 등 북한 내부 인사들과의 연락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김정남이 해외에 머무는 동안 고영희는 자신의 위상 다지기와 아들들의 후계자 옹립 작업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 2월 북한 인민군 내부 문건이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에게 헌신하는 어머님"을 찬양한 것은 고영희를 우상화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김정남을 제치고 김정철이 후계자로 낙점됐음을 시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미 정보당국은 김정남이 그의 이종여동생 이남옥에게 그가 '권력을 잡기 위해 모종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는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정남은 베이징과 오스트리아 등지로 찾아온 북한 인사들과 잦은 접촉을 했으며, 이들은 김정남의 지시를 받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또다른 재미교포는 "김정남은 이남옥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비밀스런 얘기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어머니 성혜림, 이종동생 이한영 등 가까운 피붙이들이 숨졌고 라이벌인 고영희가 세력을 확대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그럴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남옥은 영국 체류 중 만난 프랑스 외교관과 결혼한 뒤 그 외교관이 부임한 동남아 국가에 머물고 있다.

김정남 VS 고영희 목숨 건 후계자 전쟁

김정남 해외서 자기 위상 강화 작전

고영희와 김 비서의 교통사고는 고영희에 대한 김정남의 승부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 승부수가 적중할 것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후계다툼으로 북한은 또 한 번 요동칠 것이란 점이다.

그러나 설령 그가 후계자가 되더라도 그의 앞길은 순탄할 수 없을 것 같다. 북한은 지금 망가진 경제와 일상화된 대량 탈북 사태로 사회시스템이 무너져가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핵개발로 미국과 갈등하고 있고 마약 및 미사일 밀수출 등으로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난국 상황을 고스란히 부담으로 떠안아야 한다.

고영숙은 미 정보당국에 "조선에 심상치 않은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언니와 조카들이 걱정되고 조선이 걱정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다른 외교소식통은 "북한에서 고위층이 식물인간이 되거나 사망하는 석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언급은 바로 후계자를 목표로 한 김정남의 역공을 지목하는 것이다.

애들 학교 보내지 말라우!

北 로열패밀리 초-중-고-대학 교육 안 받아... "행적 노출로 신비감 사라져"

북한의 '별'들은 공교육을 받지 않는다. 여기서 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가족을 일컫는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자녀들은 일절 공교육을 받지 않았다. 1974년 결혼한 첫번째 부인 김영숙과의 사이에서 난 설송(29),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출생한 김정남(33), 현재 부인 고영희 소생인 정철(22)-정운(20) 형제 등은 인민학교(초등학교)나 고등중학교(중-고교), 대학 교육을 일절 받지 않았다. 김 위원장 본인이 인민학교를 거쳐 남산고등중학교를 졸업한 뒤 김일성종합대 정치경제학부(1964년 졸업)를 나온 것과는 다르다. 김 위원장의 이복동생이자 현재 주 폴란드 대사인 김평일(49)도 김일성종합대(1977년 졸업)를 나왔다. 

김 위원장의 자녀들이 유독 공교육을 받지 않게 된 것은 김 위원장의 특별지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왜 그같은 지시를 내렸을까. 그것은 바로 김 위원장 자신의 경험 때문이라는 것이 고영숙의 증언이다. 공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학우와 교사-교수 등에게 자신의 행적이 노출돼 지도자로서의 신비감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김일성종합대를 다니면서 여성 편력과 총기 사건을 일으켰고, 학우들도 이것을 다 알게 됐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김 위원장의 김일성종합대 동기생 가운데 현재 고위 인사로는 노동당 중앙위 남상필 과장밖에 없다는 게 정보당국의 결론이다. 남 과장은 성격이 무던하고 개인능력도 김 위원장에 비해 크게 떨어졌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학교생활을 알고 있는 동기생들을 한직으로 내몰거나 숙청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의 지시로 정남-정철-정운 형제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개인교습을 받고 있다고 정보당국은 전하고 있다. 물론 김평일 등 최고 권좌에 오를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은 공교육을 받았다.

경향신문 외교안보팀-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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