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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파면 결정문의 빛나는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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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5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돼 조사를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구치소로 향하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월 15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돼 조사를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구치소로 향하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다. 이는 지난 4월 4일 나온 총 114페이지에 이르는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문 중 가장 빛나는 문장이다.

윤석열이 지난해 12월 3일 22시 37분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국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될 때까지 시민들은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려는 특전사와 공수부대 군인들을 맨몸으로 막았다. 군경은 국회 출입을 통제하고 국회의원을 빨리 끌어내라는 윤석열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을 밝힌 한강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이날은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 날이었다.

헌재가 결정문에 쓴 이 명문은 8명의 헌법재판관 중 누군가가 생중계로 본 이 상황을 결정문에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러한 장면이 빠졌다면 비역사적이고 비헌법적이었을 것이다. 헌재의 파면 결정은 마지막 계엄이 선포된 때로부터 약 45년이 지난 시점에 일어난 역사의 반동에, 역사의 주인인 시민이 직접 나서 물리치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지켜낸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헌법재판소 결정문에는 비상계엄의 이유와 성격에 대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결정문은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장황한 계엄 선포 사유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배척했을 뿐이다. 또한 피청구인이 말하는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것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 주요 정치인, 법조인에 대한 체포 목적의 위치 확인 지시, 중앙선관위원회의 압수, 수색 지시 사실 등에 비추어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병력으로써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비상계엄의 본질상 처음부터 경고성 계엄은 존재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윤석열의 쿠데타는 처음이 아니다

나는 이번 비상계엄을 친위 쿠데타로 생각한다. 또한 윤석열은 두 번의 쿠데타를 저질렀다고 본다. 하나는 검찰총장으로서 검찰권을 무기로 국민을 기만해 정권을 잡은 연성 쿠데타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친위 쿠데타다.

검사 출신 윤석열은 검찰권을 사유화하고 보수언론과 합작해 수사와 기소를 통해 마치 자신을 공정과 상식의 대변자인 양 국민을 속였다. 사실상 연성 쿠데타를 거쳐 불과 0.73%(24만7077표)라는 매우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처음부터 정당성이 취약한 반민주적인 정권이었으므로, 역대 권위주의 정부가 그러했듯이 검찰을 ‘정권의 칼’로 사용해 정적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재창출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참여정부, 촛불혁명을 거치며 성장한 깨어 있는 시민들의 투쟁이 광장을 중심으로 계속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김건희 특검 등 계속된 특검 의결, 검찰 정치 수사의 물적 토대인 특수활동비 전면 삭감 등 적극적 의정활동을 전개했다. 채 해병 사망 사건에서 박정훈 대령, 공천 개입 사건인 명태균 게이트의 강혜경 공익제보자 등 곳곳에서 용기를 내 증언한 진실의 힘들이 함께 모여 검찰정권, 부패 정부를 밀어붙였다. 이에 겁을 먹고 당황한 윤석열 정권이 독재를 통한 정권 유지와 재창출을 위해 친위쿠데타인 비상계엄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결정문 중 빛나는 두 번째 문장은 이것이다. “피청구인이 헌법상 권한을 행사할 때마다 헌법이 규정하는 것과는 다른 숨은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헌법과 법률을 (실질적으로) 위반한 것은 아닌지 등을 끊임없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심판정 구두변론 과정에서 수많은 거짓말을 했는데, 헌법재판관들이 이를 두고 윤석열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그러나 단호하게 결정문에 못 박아 적시한 것으로 본다.

나는 대검 감찰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약 1년 5개월간 윤석열의 검찰을 직접 지켜보았다. 이 문장을 보면 검사의 부정적인 ‘종족특성(종특)’ 내지 ‘직무용 인격(working personality)’과 연결 지어 생각된다. 윤석열은 특수부 검사의 계보를 잇는 맏형 격이다. 그는 검사들이 지닌 부정적인 태도와 습성인 ‘거짓과 교만’이 극대화돼 나타난 사람이다.

검찰의 특수수사는 수사권을 독점한 가운데 수사 상황을 언론에 흘려 자신의 의도하는 바대로 ‘국민을 속인다’. 또한 기록과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방법으로 공적 감시의 대상에서 벗어나 자의적으로 사건을 결정함으로써 ‘국민을 무시한다’. 결과적으로 헌재의 이 문장은 검찰 조직에서 수사부서를 분리함으로써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한 개혁과제라는 점을 시사하고 증명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윤석열을 파면하는 결정을 내렸고, 위와 같은 빛나는 문장들로 헌법수호의 책무를 다했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겼다.

남은 과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탄핵심판 과정을 통해 살펴볼 지점들이 있다. 첫째, 2월 25일 변론이 종결된 이후 5주가 지나도록 선고기일이 지정되지 않으면서 국민의 불안과 의구심이 증폭됐다. 둘째, 헌법재판관 구성의 다양화와 대통령 탄핵심판을 헌법재판소가 아닌 국민투표로 하자는 등 국민의 요구가 제기됐다. 셋째, 헌재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의 결정적 원인인 검찰의 수사 미진과 수사서류 미제출에 대한 규율, 탄핵심판 절차에서 수사로 수집된 증거의 사용, 탄핵소추 사유의 변경 관련 규정의 신설 등 헌법재판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나는 2018년 10월 검찰개혁의 소명에 따라 한 사람의 힘을 믿고 검찰의 심장부인 대검에 들어갔다. 그때로부터 4년 6개월 만에 마침내 대통령이 돼 검찰정권을 수립했던 윤석열 파면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나는 역사의 도구로써 맡겨진 역할을 다 하고자 했다. 내란 세력은 아직 준동하면서 역사의 반동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역사의 발전을 굳게 믿는다. 많은 희생으로 쌓아올린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공정하고 청렴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근본적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에 일조한 위대한 시민들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검찰

<한동수 변호사·전 대검찰청 감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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