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방사청, KDDX 사업 ‘승자의 저주’로 몰고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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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차기 구축함 이미지/ HD현대중공업

한국형 차기 구축함 이미지/ HD현대중공업

이전투구(泥田鬪狗)란 말이 있다. 이익을 위해 볼썽사납게 서로 헐뜯거나 다투는 진흙탕 싸움이다. 요즘 국내 대표 방산업체들 분위기가 이렇다. 과거에는 국내 방위사업체들이 물밑에서 수주 경쟁을 벌였다면, 이제는 공개적인 상호 비난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업체들의 다툼을 중재해야 할 방위사업청은 사업관리 실패의 책임을 피하고자 방산업체들을 ‘승자의 저주’로 밀어 넣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전투구의 중심에는 한화가 있다. 한화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한화오션 3사가 육·해·공 무기체계와 우주발사체 사업까지 하는 대한민국 대표 방산그룹이다.

한화는 지난해 5월 인수한 대우조선해양의 이름을 한화오션으로 바꾸고 공격적으로 방산시장 공략에 나섰다. 적극적인 국제 방산시장 개척과 함께 국내에서는 ‘싸움닭’처럼 경쟁업체와 다투고 있다. 이를 위해 법무와 대언론·대관 분야를 집중적으로 강화했다. 법무 분야를 통해서는 경쟁 기업의 계약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경쟁업체의 약점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과거 의혹의 재수사 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맞서 경쟁업체도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방산 수주전이 비방전으로 변질하고 있다.

한화는 최근 수년간 신문·방송 매체의 기자를 대거 영입했다. 언론인 출신들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방산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우호적 여론 형성을 위해 기자 출신을 많이 뽑아 서로 실적 경쟁시키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한화는 예비역 군 간부도 상당수 영입했다. 한화오션이 영입한 해군 출신만 해도 중·대령은 물론이고 방사청 함정사업부장을 지낸 장성 2명에 차관급까지 두루 포진해 있다.

천궁·무인수상정 갈등

한화는 3조7000억원 규모로 체결된 ‘천궁-Ⅱ’의 이라크 수출 계약 조건을 놓고 LIG넥스원과 갈등을 빚고 있다. 수출 계약을 맺어놓고 국내 방산업체들끼리 무기의 가격과 납기 등을 놓고 책임은 상대방에 있다며 엇갈린 주장으로 다투고 있다.

‘한국형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천궁-Ⅱ는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로, 주계약(주체계)업체인 LIG넥스원과 부체계업체인 한화의 합작품이다. 미사일과 통합 체계는 LIG넥스원, 레이더는 한화시스템, 8개 발사관을 탑재한 발사대 차량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각각 생산한다. LIG넥스원이 맡는 미사일의 탄두와 추진기관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공급한다. 이라크에 배치되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중동 주요 3개국을 잇는 ‘K방공망 벨트’를 형성하게 된다.

두 업체의 갈등은 이라크가 조기 납품을 전제로 주체계업체인 LIG넥스원과 단독 협상을 하면서 비롯됐다. 한화 측은 LIG넥스원이 납기와 가격에 대한 사전 합의 없이 이라크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라크에 조기 공급하기로 계약한 것에 대해 납기 이행이 어렵다고 반발하고 있다.

LIG넥스원은 한화 측이 납기 단축과 가격에 큰 틀로 합의를 해놓고, 이후 국내 업체 간 협상을 피해서 어쩔 수 없이 단독 협상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라크의 조속한 협상 요구가 있어 지난 7월 중순 한화에 빠른 검토를 요청했지만, 답이 제대로 안 왔다는 것이다.

방위사업청이 사실관계 규명과 중재에 나섰지만, 두 업체 간 갈등은 상당 기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앞서 한화시스템은 총사업비 419억6400만원이 투입되는 방위사업청의 ‘정찰용 무인수상정(USV)’ 사업을 놓고도 LIG넥스원과 다퉜다.

한화시스템은 이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LIG넥스원이 사실상 확정되자 6년 전 이 사업과 관련한 일부 정보가 LIG넥스원 쪽에 유출됐다는 의혹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법적인 이의신청을 시사했다가 최종적으로는 포기했다. 이는 한화 내부적으로 법적 검토를 한 결과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방첩사령부의 해군 무인수상정 기밀 유출 사건 수사가 불거진 시점이 제안서 평가를 놓고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 간 경쟁이 치열할 때였다는 점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승자의 저주

한화오션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놓고 HD현대중공업과 싸우고 있다. KDDX는 2036년까지 6000t급 ‘미니 이지스함’을 국산화해 6척을 실전 배치하는 사업이다. 사업비만 7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 사업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과의 다툼으로 인해 방위사업청이 사업방식 결정을 유보하면서 사실상 표류하고 있다.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지난 7월까지 해야 했는데 KDDX 비리 의혹 수사와 함께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간 갈등이 심화해 무산됐다.

방사청은 최근 “KDDX 사업 추진 방안에 대해 ‘공동 개발, 동시 발주, 동시 건조’를 포함한 다양한 사업 추진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두 업체가 공동으로 KDDX 상세설계에 참여한 후 1~2번 함을 동시에 건조하는 아이디어다. 그러나 방사청의 검토 방안은 사업 지연에 따른 책임 소재 문제와 두 업체 간 연구 협력의 어려움 등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 전례가 없는 ‘면피용’ 아이디어라는 비판도 나왔다.

지금까지 해군 함정 연구개발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수행했고, 시험평가를 포함해 책임을 져 왔다. 관례대로라면 기본설계업체인 HD현대중공업이 수의계약 형태로 맡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한화오션이 과거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보안 사고를 들어 경쟁입찰을 주장하면서 사업방식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경쟁입찰 방식이 채택되면 보안 분야에서 감점을 받는 HD현대중공업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도다. 여기에다 KDDX 사업이 재벌가 3세인 정기선 HD현대중공업 부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비치면서 양 그룹의 자존심 경쟁으로 비화했다.

사업자 결정이 계속 늦어지면 사업자로 선정되더라도 업체가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 사업 진행이 늦어지는 만큼 전력화 시기가 늦춰져 책임 문제가 뒤따르고, 함정의 건조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당장 협력업체와의 단가 계약 비용도 늘어나는 구조다.

한화오션은 위험이 더 크다. 한화오션은 기본설계를 하지 않았기에 통상적인 함정 상세설계기간인 18개월을 맞추기 어렵다. 이지스함 설계 가능인력은 HD현대중공업이 250여명인데 한화오션은 이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오션은 2008년 이후 이지스함 설계를 맡은 적이 없어 관련 인력이 대거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보다 승자의 저주에 더 깊게 빠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번 방사청이 내놓은 안은 겉으로 보기에는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보면 한화오션에 특혜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과거 이지스함 건조업체로 지정받은 적 있는 HJ중공업의 움직임도 변수다. HJ중공업도 KDDX 공동개발에 나서겠다며 KDDX 방산업체 지정을 요구할 경우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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