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접촉 부재” “의사결정 벽” 당 안팎서 부정적 평가 잇달아
“윤·한 관계는 투덕거리는 부부와 비슷”…좀더 두고 봐야 할 듯
“아무래도 홍영림은 같이 가기 어렵지 않겠어요.” 지난 8월 9일 기자가 만난 국민의힘 한 의원의 말이다. 그는 지난 당대표 경선에서 ‘팀 한동훈’으로 불린 국민의힘 의원 텔레그램 단톡방 멤버 17인 중 한 명이다. 이 의원은 홍영림 여의도연구원장이 곧 교체되리라 전망했다. 조선일보 여론조사 기자 출신인 홍영림 원장은 지난해 12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주재한 첫 회의에서 임명됐다. 한동훈 대표에겐 개국공신 같은 인물이다. 당대표 선거기간, 지난 총선 때 여의도연구원의 조사를 두고 공격이 이어졌다. 지역 여론조사 결과가 국민의힘 출마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든가, 총선 판세와 무관한 한동훈 지지 여부 같은 조사를 했다는 등의 비판이었다. 홍 원장에 대한 비난이라기보다 ‘한동훈의 사람들’ 비판을 통한 ‘당대표 후보 한동훈’에 대한 우회 공격이었다.
결국 이 의원의 전망이 맞았다. 지난 8월 14일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의힘은 3선 의원으로 이번 총선에서 떨어져 원외가 된 유의동 전 의원을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중앙윤리위원장에는 신의진 전 의원이, 당무감사위원장에는 유일준 변호사, 홍보본부장에는 장서정 전 비상대책위원이 임명됐다. 당 중앙위 의장은 3선 송석준 의원이 맡았다. 이번 당직 인선을 보면 비대위 시절 한 위원장과 호흡을 맞췄던 인물들로 ‘친정 체제’를 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의동 전 의원은 한동훈 비대위 시절 당 정책위 의장을 맡아 실세로 불렸다. 당무감사를 담당할 유일준 변호사도 총선 당시 비대위원장이 임명하는 당 공천관리위원이었다.
친한 체제 구축으로 마무리된 당직 인사
7월 23일 선출된 한동훈 당대표 체제는 이제 3주를 넘어 4주차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은 아직 봉합되지 않았다. 왜일까. 용산이나 당내 친윤의 불신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가 만나본 정치권 주변 인사나 정치평론가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솔직히 말한다면 한동훈으로는 정권 재창출은 어렵다고 판단한다.” 지난 8월 13일 만난 국민의힘 쪽에서 전략통으로 통하는 인사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친윤’보다는 ‘보수의 코어들이 갖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전당대회 이후에도 여론조사를 보면 저쪽이 조국까지 포함하면 더블스코어로 앞선다. 서울·경기에서는 지고,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쪽이 상당한 지지세를 얻고 있다. 이미 얻어낼 지지율은 다 얻어냈기에 확장력은 없다고 본다.” 그는 한동훈 당대표 체제에 의문을 던지는 당내 의원들의 기류도 전했다. “같이 회의를 해본 의원의 말인데 이 사람(한동훈)은 순간순간 외우고 연구해서 던지는 것은 잘하는데 정작 내공이 필요한 경제나 사회형태에 대한 아이디어는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최고위원 회의에서도 결국 기재부 출신인 추경호 원내대표가 받아서 부연 설명을 할 수밖에 없다. 의원들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공통으로 느끼는 것이 ‘한동훈은 정말 허깨비구나’라는 것이다. 게다가 남은 시간도 길다. 윤 대통령이야 출마 선언부터 대통령이 되기까지 9개월밖에 안 걸렸기 때문에 설혹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거를 틈이 없었지만, 한동훈은 내년 9월에 사퇴하더라도 1년은 더 넘게 가야 한다. 결국 ‘허당’이라는 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인사는 ‘정치인 한동훈’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대면 접촉의 부재를 꼽았다. “국민 눈높이나 민심을 강조하는데 한동훈은 그것을 인터넷 댓글이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오는 평판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사람을 만나야 할 시간에 혼자 휴대전화를 보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결정권자들이 자기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하는 버릇이 있잖은가. 한동훈은 네이버에서 자기 이름 쳐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이게 트위터(현 X), 커뮤니티, 유튜브까지 가는 것 같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시절 기자는 모 비대위원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용산 측 모 인사가 관여하고 있는 댓글팀에서 자신의 재산 축적 과정 문제와 한동훈 위원장의 사생활 문제를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 ‘비대위 갤러리’를 통해 조직적으로 유포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소문을 기자에게 전하면서 “디씨인사이드에 그런 이름의 게시판이 있다는 걸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 알았다”라며 “그런 식으로 비대위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 용산 측의 공격이 너무나 저열해 한심스럽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빋갤(비대위 갤러리의 약칭)’을 통한 네거티브 공세는 당대표 선거기간에도 계속됐다. 선거 과정에 나온 한동훈 네거티브 자료의 최초 출처는 대부분 ‘빋갤’이었다. 당대표 선거 후 ‘한동훈=(윤석열 대통령의) 배신자’ 프레임이 지속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빋갤’과 ‘빋갤’에 올라온 폭로를 원자료로 하는 우파 유튜버들의 방송이다.
“김경수 사면 반대는 한동훈의 자가당착”
“이렇게 비겁한 여당 대표는 근래에 보기 드문 것 같다.” 여러 시사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활동하고 있는 김유정 전 민주당 의원의 한동훈 당대표 3주에 대한 평가다. “결정적으로 채 상병 특검에 대한 태도가 당대표 당선된 후 달라졌다. 김경수 복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김경수 사면 문제에는 발끈하면서 독립기념관장 문제에는 여론 추이를 보겠다고 하고 있다. 아무리 금투세 문제를 제기하고 민생정책 문제를 제기해 차별화하고, 건건이 윤석열과 다른 모습을 보이게 하려고 포장하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윤석열 시즌2, 검사 출신 당대표에서 못 벗어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윤·한 갈등’에서 부분적으로 승리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한 대표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소신이나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전망은 어둡다는 평가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의 평가도 박하긴 마찬가지다. “당대표 선거 때 승부수로 들고나왔던 채 상병 3자 특검법은 거둬들였고, 김경수 사면에 대한 반대 입장도 굉장히 비겁했다고 평가한다. 여의도 문법을 배웠다면 나쁜 것만 빨리 배운 셈이다. 윤·한 갈등을 넘어 한동훈이 당대표가 됐다는 것은 윤석열에 대한 당심의 심판이 내려졌다는 뜻이었는데, 지난 3주를 평가해보면 그런 당심을 안아가고 있다는 평가는 하기 어렵다. 오히려 빨간불이 들어왔다.” 그는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의사결정에서 혼자 생각해 결정하는 ‘홀로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공당의 대표라는 것은 당내의 시스템을 총괄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여의도연구원도 있고 당 전략기획실, 정책실, 대변인실 등을 통해 여러 민심을 받아 수렴하고 토론해 정리하고 입장을 내는 것이 정상적인 프로세스다. 그런데 그런 당 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 피아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측근이라는 사람들도 측근이라고 분류돼 있을 뿐 토론이나 의사결정에서는 벽을 느낀다고 한다.” 앞서 당내 인사의 진단과 묘하게 겹치는 대목이다.
“지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는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이슈가 전면에 나온 이례적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이른바 ‘배신자 프레임’과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논란’ 등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이 용산의 지원 내지는 묵인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배신자론의 등장 전후를 살펴보면 한동훈의 지지율이 올라갔다. 50% 중반대에서 최종 63% 지지로 당선됐다. 이건 국민의힘 코어 지지층에서 윤석열을 거부했다는 걸 의미한다.”
최 소장은 한 대표가 법무부 장관일 때 “보수의 세대교체를 이룰 ‘스마트 우파’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진단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한동훈 당대표 체제의 등장을 보수의 세대교체로 봐야 하느냐를 놓고는 유보적이다. “세대교체는 한편으로 세계관의 교체이며 최종적으로는 유권자 재정렬이다. 과거 3김시대의 기본적인 유권자 지형은 지역주의지만 현대 한국 정치는 세대 대결이다. 단순하게 요약한다면 4050은 민주당, 6070은 국민의힘, 2030은 무당층이다. 현재까지 여론 조사상으론 한동훈을 포함해 국민의힘 지지기반이 4050이나 2030으로 확대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당대표 한동훈의 정치를 역설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과의 관계 설정이다. 정치권에서는 비대위 시절부터 누적돼온 윤·한 갈등이 당대표 선거 후 다시 불거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정점식 정책위 의장 교체, 김경수 사면 문제 등을 둘러싸고 소소한 갈등이 나왔지만 크게 터져 나온 것은 아직 없다. 정치권 주변이나 정치평론가들은 앞으로 야권이 다시 상정할 채 상병·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한동훈 당대표의 태도가 향후 정국을 가를 이정표가 되리라 본다. 한동훈 당대표 체제 출범 후 국회로 돌아온 두 번째 채 상병 특검법 의결에서 ‘국민의힘 이탈표’는 4표였다. 야권이 한동훈 당대표 공약대로 3자 채 상병 특검법을 내놓는다면 거부할 명분이 약해진다.
파국 피하기 위한 윤·한 갈등 봉합?
용산도 한동훈 대표를 위협할 카드가 있다. 조국혁신당이 1호 법안으로 추진하는 한동훈 특검법이다. 본회의를 통과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다시 국회로 돌아오면 무기명 투표다. 용산이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몇몇 친윤계 의원만 이탈하면 한동훈 당대표 체제를 무력화할 수 있다.
결국 서로 약점을 쥐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윤·한 갈등은 봉합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총선 당시 정치분석서 <73년생 한동훈>을 낸 심규진 스페인IE대 교수는 “윤·한 관계는 비유하자면 투덕거리는 부부관계와 비슷하다. 사이는 좋지 않지만, 갈라설 수는 없는 그런 기조가 상당히 갈 것이라고 본다”라며 “변수는 지지율인데 지지층이 어느 한쪽을 압도하지 않는 한 ‘이재명-문재인 관계’와 유사하게 강제로 이인삼각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아직 한동훈 정치의 비전이나 본질이 뭔지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보수 정체성과 화합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단계로 봐야 한다”라며 “보수에서 한동훈 대세론은 큰 틀에서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민주당처럼 차기 대권주자는 이재명으로 확실히 정리된 상황이 아니라 오세훈, 홍준표 등 다른 주자에게도 기회가 열려 있는 과도적 상황이기 때문에 좀더 두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