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 친한-친윤 힘겨루기에 부각…야선 전 대표와 각 세워 화제
강성의 원내대표 대신 협상 새로운 통로로 내세워지며 위상 상승
늘 당 원내대표의 그늘에만 머물러 있는 것으로 여겨져 존재감이 미약했던 여야 양당의 정책위 의장이 한여름 뜨거운 정국의 한가운데에 섰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당 정책위 의장직을 놓고 친윤계(친 윤석열 대통령계)와 친한계(친 한동훈 대표계)가 힘겨루기를 한판 벌였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폐지 반대에 이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 고수로 화제가 됐다.
두 정책위 의장은 지난 8월 7일 회동을 하면서 또다시 뉴스의 중심인물이 됐다. 여야 정쟁으로 여야 원내대표(추경호·박찬대) 간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진 반면, 여야 협상의 새로운 통로로 정책위 의장 간 대화가 오랜만에 두드러졌다. 예전 당 지도부 3역(원내총무·사무총장·정책위 의장)의 하나였던 정책위 의장이 이제야 ‘정책 수장’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고위원 회의 계파 간 구도 때문에 불거져
여당 정책위 의장직은 친윤-친한 갈등의 최전선이 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7월 23일 선출되면서 친윤계인 정점식 당시 정책위 의장의 유임 여부가 관심을 끌었다. 예상대로 정 의장은 한동안 사퇴하지 않고 버텨, 친윤계의 ‘알박기’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계파 간 힘겨루기 끝에 결국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한 대표는 4선의 김상훈 의원을 후임 정책위 의장으로 지명해 지난 8월 5일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점식 의원이 여당 정책위 의장인 줄 이제야 알았다”, “지금까지 정책위 의장 중 가장 이름을 널리 알렸다”, “평소에 정책을 세우지 않던 의장이 반한(반 한동훈) 정책을 세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또 “당대표가 정책위 의장을 임명하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시절 정책위 의장은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로 선출됐다. 국민의힘에서는 당대표 임명 방식으로 바꿨다.
국민의힘의 정책위 의장 논란은 정책 책임자란 자리 때문에 불거진 것은 아니다. 정책위 의장이 당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해 계파 간 구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전체 9명의 최고위원 중 친한계 5명(한동훈·진종오·장동혁·김종혁·김상훈)으로 친윤계 4명(추경호·인요한·김재원·김민전)보다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됐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정치평론가)는 “대선 1년 6개월 전 대표 사퇴 규정에 따라 한 대표가 내년 9월에 물러나더라도, 친한계는 곧바로 비대위 체제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당협 위원장 교체에도 최고위원 구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구·경북(TK) 3선의 추경호 원내대표에 맞서, 같은 지역 4선의 김 의장을 임명함으로써 견제를 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 한 인사는 “무색무취한 김 의장의 성향상 굳이 추 원내대표와의 관계를 견제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면서 “한 대표가 전형적인 관료 출신으로 무난한 김 의장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의 임명으로 한 대표가 보수의 텃밭인 TK에 탄탄한 지지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는 해석도 나왔다.
정책위 의장 역할 가능성 더욱 중요해질 듯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 의장 역시 김상훈 의장만큼이나 존재감이 커졌다. 지난 4월 총선 대승 이후 임명된 진 의장은 지난 5월 이후 종부세 폐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친명계(친 이재명계)인 박찬대 원내대표가 인터뷰에서 1주택자 종부세 폐지 의견을 밝히자 진 의장은 “(원내대표) 개인 의견”이라며 반대 뜻을 고수했다. 그런데 이재명 전 대표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종부세 완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또다시 논란이 됐다. 이제는 진 정책위 의장이 자신을 임명한 이 전 대표와 각을 세우는 모양새가 됐다.
내년에 도입을 앞둔 금투세에 대해서도 이 전 대표와 진 정책위 의장의 생각이 다르다. 이 전 대표는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인 반면, 진 정책위 의장은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가가 역대 최대 하락 폭을 기록한 지난 8월 5일의 ‘검은 월요일’ 이후 ‘개미 투자자’ 사이에서는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개미 투자자들은 진 의장의 블로그에 ‘증시 폭락 책임지라’며 성토의 글을 올려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진 정책위 의장의 입장은 ‘금투세는 내년에 시행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진 의장은 보좌관 시절부터 민주당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어 민주당의 가치를 지키는 것에 본분을 다하는 인물”이라면서 “정책위 의장에서 물러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일각에서는 ‘친명계의 종부세·금투세 완화 대 친문계의 원칙 고집’으로 보고 있으나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사안을 계파 간 갈등이 아닌, 대선을 앞둔 ‘이 전 대표의 중도 전략 대 진 정책위 의장을 비롯한 다수 민주당 의원들의 원칙 사수’로 보고 있다. 계파에 관련 없이 종부세와 금투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엇갈린다는 이유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이재명 일극체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오히려 민주당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다는 점에서 당의 건강성을 보여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당은 왼쪽을 지키고, 대선후보는 중도 쪽으로 가려는 전략적 대립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서로의 생각이 원칙적으로 다르다는 의견대립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과 용산 대통령실에서는 금투세 폐지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여당과 주식투자자의 폐지 입장과 진 정책위 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내부의 도입 입장 사이에서 ‘완화’ 또는 ‘유예’라는 절묘한 당론 선택을 관철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오는 8월 18일 전당대회에서 이 전 대표가 대표에 재선출되면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과연 진 정책위 의장을 교체할 것인지, 아니면 유임시킬지에 이 전 대표의 진정한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협상의 새로운 통로로 정책위 의장을 내세우면서 당 정책위의 위상도 덩달아 올라갔다. 최 소장은 “여야가 대치하는 현 상황에서 이재명 전 대표와 한동훈 대표는 어떻게든 당의 새로운 변화를 끌어내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고 하므로 각 당 정책위 의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