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부로 ‘탈(脫)정치부’ 인사 발령이 났다. 문재인 정권 말미인 2021년 9월 28일 국민의힘에 배치됐으니, 꼭 2년 7개월 반 만이다. 그사이 ‘윤석열 후보’의 당내 경선 통과와 대통령 당선을 지켜봤고, 지방선거와 국회의원선거까지 치렀다. 기자들의 농담을 빌리면 ‘그랜드 슬램’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 생각하는 방식이나 정치권 돌아가는 생리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들이 권력 획득에 골몰하고 민생엔 무감하단 건 쉬운 비판이다. 정치권에 몸담아 본 사람은 누구나 의원들의 지독한 스케줄을 안다. 대부분은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당 공식 일정이니 지역구 동네잔치니 온갖 행사에 참석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시간을 쪼개 만나는 사람도 많다. ‘민심’을 모를 수가 있나.
‘그럴 수 있다’는 게 내 잠정 결론이다. 의원들이 만나는 사람은 누구인가. 같은 의원부터 기자, 정부 공무원, 법조인, 기업가까지 힘세고 목소리 큰 사람이 상당수다. 혹은 조직된 소수다. 정부의 행정 조치에 ‘약자’처럼 행동하지만, 의사가 어디 약자인가. 의사협회는 단상에만 서면 취재 경쟁이 벌어지고, 의사 개인 발언도 ‘업계 의견’으로 포장돼 기사화된다. 평일 낮 국회를 찾는 사람은 사회 전체로 보면 여유 있는 편이기 쉽다. 거꾸로 정치인이 찾는 현장도, 언론이 찾기 좋은 시간에 말 잘해줄 사람 섭외해둔 경우가 태반이다.
여야는 바뀌어도 그렇게 ‘적당히’ 만나고 메시지를 포장해 내는 업무 관행은 달라지지 않는다. 목소리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잉대표되고, 정치권은 그중 진영에 따라 취사선택한다. 시장 등 민생 현장을 찾긴 하지만 악수하느라 바쁘다. 주변부 민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돈 되고 표 되는 사람들을 더 만난다. 공천 때는 ‘윤핵관’이니 뭐니 힘 있는 쪽 ‘줄서기’에 시간 쓰는 게 우월 전략이다.
‘민심 듣기 노력 평가’가 공천 하한선이라면 어떨까. 음주운전, 성범죄 등 ‘결격’ 사유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여야 모두 당연한 기준을 혁신·쇄신 포장하는 게 실은 우스웠다. 특정 기준에 못 미치면 떨어뜨리는 ‘과락’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이준석표 PPAT처럼 지식을 보는 시험 말고, 지난 4년간 이력을 보는 것이다. 시민 공청회 개최 또는 참석, 직능단체와의 만남, 당원 교육, 재난·민생 현장 봉사활동…. 완벽은 못 할지언정 ‘만남 노력’을 직간접 평가할 수단은 지금도 있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공천이 당장 반년 뒤인데 민심 청취 점수가 모자란 사람을 상상해 본다. “어, 이 의원. 여기 ‘찐명’ 계신대”, “죄송합니다. 시민부터 만나야 해요.” 과락은 면해야 공천 심사를 받을 터, 당대표·대통령이 별건가. 보란 듯 추레한 옷 꺼낼 시간도 없이 현장에 나서는 거다. 자영업자·알바생에게 인사와 잔소리를 번갈아 듣는 거다. 카메라 한 대 없이 묵묵히. “로터리클럽 회원님들과 자리 만들어 뒀다”는 보좌관 말에는 의원이 경악하는 거다. “면접 때 ‘중복 청취’라고 지적하면 어떻게 해!” 정치학자 데이비드 메이휴는 재선이 국회의원의 제일 목표라던데, 그 정도 판돈은 걸려야 겨우 사람 만나는 습관을 교정하지 싶다. 친윤·친명의 공천 과락 기사를 기대해 본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