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사건에 드리운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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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인물들 통화기록서 사건 축소·방해 정황 속속 드러나

집중호우 피해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 상병 사고 조사를 담당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지난해 12월 7일 항명죄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집중호우 피해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 상병 사고 조사를 담당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지난해 12월 7일 항명죄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채 상병 특검법’이 총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달될 첫 청구서가 됐다. 국회는 지난 5월 2일 본회의를 열고 재석 의원 168명 전원 찬성으로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21대 국회에서 법안이 폐기돼도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될 가능성이 높다. 특검 출범은 시간 문제라는 얘기다.

‘이채양명주(이태원 참사·채 상병 사망 사건·양평고속도로 게이트·김 여사 명품백 수수 및 주가조작 의혹)’라는 더불어민주당의 다양한 패 중에 왜 채 상병 특검이 처음일까. 이 의혹의 진행 경과에 ‘보이지 않는 손’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손이 뻗어 나온 곳이 대통령실임을 가리키는 정황도 많다.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의 정상적인 조사 절차가 뒤틀리는 과정을 당사자들의 통화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핵심 인물들이 그 당시 주고받은 통화기록은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군대 특유의 수직적인 의사소통 구조로 비정상적 지시가 하달되는 과정까지 여과 없이 드러났다.

지난해 7월 31일에 무슨 일이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크게 ‘수사 외압’과 ‘사건기록 회수’ 두 가지로 나뉜다. 누군가 모종의 이유를 가지고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를 축소 또는 방해하려 했다. 이어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사건기록을 넘기자 이를 근거도 없이 회수했다. 이런 시도는 단 사흘 동안, 단숨에 이뤄졌다.

사건 진행 과정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하루는 지난해 7월 31일이다. 이날은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언론 브리핑, 국회 보고가 예정돼 있었다. 이날 오후 2시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해병대 박정훈 당시 수사단장(대령)은 국방부 인근에서 대기 중이었다. 낮 12시 2분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중장)의 전화가 왔다. 언론 브리핑이 취소됐으니 부대로 복귀하라는 내용이었다.

전날까지의 경과를 살피면 이해가 가지 않는 지시다. 지난해 7월 19일 채 상병 순직 사건 이후 약 열흘간 사건을 조사한 해병대 수사단은 사망에 대한 책임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소장) 등 지휘관 8명에게 있다고 봤다. 해병대에 몇 안 되는 장성급 지휘관까지 조사했고, 유가족들도 큰 이견 없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조사 대상이었던 임성근 사단장조차 지난해 7월 28일 김계환 사령관에게 “사단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재선을 따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이종호 해군참모총장에게 보고가 이뤄졌고, 일요일이던 7월 30일에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도 보고해 결재를 받았다. 그런데 하루 만인 7월 31일 기류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두 가지 ‘스모킹건’이 있다. 지난해 7월 31일 오전 11시쯤 대통령실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 분야 수석보좌관 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오전 11시 45~50분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02’로 시작하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발신지는 ‘이태원로’, 가입자는 ‘대통령실’로 등록된 번호였다.

같은 날 오전 11시 57분과 11시 59분,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인 박진희 소장(당시 준장)이 김계환 사령관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직후인 낮 12시 2분 김계환 사령관이 박정훈 수사단장에 언론 브리핑 취소를 지시한다. ‘대통령 주재 회의→대통령실,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국방부 장관 보좌관,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해병대 사령관,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전화’의 흐름으로 지시가 내려왔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추정에 무게를 싣는 정황은 더 있다. 박 수사단장은 이날 부대 복귀 후 김계환 사령관과 대화를 했다. 아래는 박 수사단장이 군검찰에 진술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박정훈 수사단장 “도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 것입니까.”

김계환 사령관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 주재 회의 중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됐다.”

박 수사단장 “정말 VIP가 맞습니까?”

김 사령관 (고개 끄덕)

이후에는 지금껏 보고·결재 과정에 빠져 있던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등장한다. 유 법무관리관은 이날 오후 3시 18분부터 다음날까지 총 5차례 박정훈 수사단장과 통화하면서 ‘죄명, 혐의자, 혐의 내용을 빼고 경찰에 서류를 넘겨라’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사망 사건, 성폭력 사건은 군에서 일어났더라도 군 수사기관이 아니라 민간 수사기관에서 수사해야 한다. 수사 무마 등을 목적으로 한 군 지휘관의 개입을 막기 위해 법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도 유 법무관리관은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사건기록을 이첩하려는 과정에 개입했다. 2022년 7월 군사법원법 개정 이후 채 상병 사건 전까지 군은 총 6차례 경찰에 사건을 넘겼는데 혐의를 기재하지 않은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군 수사기관에서 경찰에 보내는 인지통보서 양식 자체가 피의자 이름과 죄명, 범죄 사실을 적게 하고 있다.

채 상병 사건에 드리운 ‘보이지 않는 손’

국방부에 앞서 움직인 대통령실?

‘사건기록 회수’는 초법적으로 이뤄졌다.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해 8월 2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시간 20분가량 채 상병 사건기록을 경북경찰청에 넘기고 사건에 관해 설명했다. 국방부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법적 근거 없이 이 기록을 다시 가져왔다.

사건기록 회수의 주체는 국방부 검찰단이다.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은 이날 오후 2시 40분쯤 회의를 열어 사건기록 회수를 지시했다. 오후 3시쯤에는 국방부 검찰단 수사관이 경북경찰청에 연락해 사건기록을 가지러 가겠다고 알렸고, 오후 7시 20분 국방부 검찰단 관계자가 기록을 회수했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지난해 9월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사건기록을 가져오라고 지시한 사람을 묻자 “국방부 검찰단에서 판단했다”고 답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등을 통해 확인된 통화기록은 국방부에 앞서 움직인 ‘다른 라인’의 존재 가능성을 드러낸다. 이날 낮 12시 40분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가 경북경찰청 간부에게 전화해 ‘국방부가 사건 기록을 가져갈 것’이라는 취지의 이야기와 함께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번호를 알려줬다. 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앞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 파견 경찰관 박모 행정관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경북경찰청 간부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실제로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오후 1시 50분쯤 경북경찰청 간부에게 전화해 사건기록 회수 의사를 밝힌다. ‘공직기강비서관실 파견 경찰관→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경북경찰청 간부’ 순으로 사건기록 회수가 사전 논의된 셈이다. 이 모든 과정은 국방부 검찰단이 기록 회수를 위한 회의를 열기도 전에 이뤄졌다.

사건기록 회수 과정에서도 대통령실의 개입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더 있다. 이날 오후 늦게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통화했다. 이 비서관은 검사 시절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담당했다가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공직기강비서관에 발탁돼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됐다. 유 법무관리관은 최근 공수처 조사에서 이시원 비서관과의 통화에 대해 ‘채 상병 사건이 아닌 군 사법 정책 관련 얘기를 나눴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직제에 비춰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다. 국방 관련 정책, 법률에 대한 논의라면 국가안보실, 법률비서관과 협의하는 것이 맞다. 공직기강비서관의 업무는 공직사회의 복무 점검 및 감찰, 복무 평가 등으로 업무영역이 다르다.

오히려 주무부처의 장인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이 과정에서 빠져 있었다. 이종섭 장관은 지난해 7월 31일 채 상병 사건 언론 브리핑 취소 지시를 내린 직후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해 8월 3일까지 머물렀다. 이 장관 측은 지난 4월 17일 “(사건기록) 회수는 이 전 장관이 귀국 뒤 사후 보고받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안”이라고 했다. 장관 모르게 진행된 일이라면 장관보다 윗선이 사건기록 회수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장관이 해외에 있어 국방부가 ‘선조치 후보고’를 했을 가능성도 작아 보인다. 이 장관은 해외 출장 중에도 현지에서 이 사건의 진행 상황을 챙겼다. 예컨대 지난해 8월 1일에는 군사보좌관을 통해 해병대 사령관에게 임성근 사단장이 정상 근무 중인지 확인했다. 앞서 7월 30일에는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임 사단장을 현장 지휘에서 배제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승인했다가, 7월 31일에는 임 사단장을 정상 출근시키라고 지시하고, 그다음 날엔 해외에서 정상 출근 여부를 확인한 것이다. ‘임성근 구명’에 대한 윗선 지시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특검 출범 시간 문제

대통령실의 개입, 수사 외압 등 의혹에 대한 실체 규명은 특검의 몫이 될 공산이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따라 특검 출범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이 있지만, 여당 내에서도 채 상병 특검법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특검 출범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사실관계 확인과 함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적용 여부도 특검 수사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는 상급자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남용해 하급자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시켰을 때 적용된다.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국정농단 수사를 진행하면서 부활했고, 각종 수사에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법원은 권한이 남용됐는지보다는 남용한 권한이 법적 권한인지, 하급자가 수행한 일이 의무에 없는 일인지를 더 꼼꼼히 따져 인정 범위가 좁다. 이 때문에 이종섭 전 장관 측도 최근 “군에 수사권이 없어 수사 외압으로 인한 직권남용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들고나왔다. 다만 검찰은 수사권이 법으로 규정돼 있지는 않지만 조사나 감찰을 방해한 상급자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한 적이 있다.

별개로 공수처는 해병대와 국방부, 대통령실 관계자 등을 상대로 조사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지난 4월 23일 “지금의 수사 일정과 계획에 맞게 진행하는 것이 더 급한 상황이라 특검 상황을 고려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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