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친윤계, ‘제3자 변제’ 등 적극 두둔
윤, 총선 압승보다 ‘자기 사람 심기’ 택할 수도
임기 2년차 대통령과 총선을 1년여 앞둔 여당의 ‘밀착 동행’이 시작됐다. 이론적으로는 시너지 효과가 날 수도 있다. 여론과 관계없이 장기적 목표를 제시하는 대통령과 어긋난 민심을 포용하는 정당의 역할분배가 적절히 이뤄지는 경우다. 하지만 이러한 국정운영의 황금분할 사례는 역사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권력에는 각자의 지분이 있고,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계층구조가 (여)당-대(통령) 관계를 마치 동행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다. 동행은 양측의 힘의 차이가 있을 때 지속되고, 힘이 대등해질수록 삐거덕거리거나 결국 멈춰서 버린다는 과거 사례들이 이를 방증한다. 역대 정권 레임덕 상황의 당-대 관계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한국 정치 체제의 특수성이 당-대 관계를 역동적 구조로 이끈다는 점 역시 이들의 동행을 흥미롭게 바라보게 한다. 당장 한국은 대통령 단임제다. “욕먹을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 수사로 보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이 정한 선 위에만 있다면 후일까지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선수 제한이 없는 국회의원과는 입장 자체가 다르다. 무엇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대선과 총선 간 시차가 발생한다. 국정운영 동력, 책임성 약화라는 문제 제기도 있지만 이는 정당 내 다양성을 담보하는 순기능이 있다. 직업 정치인들은 ‘밥줄’이 걸린 상황에서 덮어놓고 대통령만 지지할 수 없다. 총선이 임박할수록 윤 대통령식 표현대로 ‘내부총질’이 나오며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대통령제였다면 ‘여당과 대통령이 국정운영 동반자’라는 관계가 유지되리라 전망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의 동행은 선거로 직접 평가받을 일이 없는 쪽과 눈앞에 평가를 앞둔 쪽의 만남이다. 이에 따라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모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친윤’의 당권장악과 윤 대통령 지지율의 한계가 뚜렷해지는 상황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얘기다.
완전히 밀착한 당-대 관계
지난 3월 8일 끝난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여당의 ‘당심’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결과는 ‘친윤’으로 평가받는 김기현 당대표 체제의 출범이었다. 김 대표는 선거 초반 3%대 지지율을 기록하며 하위권에 속했다. 전국 인지도가 낮아 총선을 이끌기 어렵다는 평가까지 나왔지만, 한계를 극복하고 최종 당선됐다. 결선투표조차 없는 깔끔한 승리였다. 이러한 김 대표의 역전에 윤 대통령의 힘이 작용했음을 부인키는 어렵다. 지난해 11월 말 김 대표가 윤 대통령과 한남동 관저에서 독대했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며 ‘윤심이 김기현에게 있다’는 소문이 선거판을 주도했다. 이로 인해 정치인 김기현의 승리라는 ‘사실’보다 윤 대통령이 당권을 장악했다는 ‘해석’에 더 관심이 쏠리게 됐다.
실제로 김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은 사무총장 이철규, 전략기획부총장 박성민, 조직부총장에 배현진 의원 등을 각각 선임하며 주요 보직 인선을 마쳤다. 모두 ‘친윤’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다. 특히 사무총장은 당의 조직과 예산을 관장할 뿐만 아니라 총선 공천관리위원회가 구성되면 당연직 부위원장으로 공천 관련 실무를 총괄한다. 총선에서 새로운 친윤계 인물들의 국회 입성이 이뤄지리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국정운영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친윤’ 시대를 알리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 ‘주 69시간 노동시간 재편’을 둘러싼 대응이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는 한·일 정상회담을 위한 선제조치처럼 보이며 비판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김 대표는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정상회담 성과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국정조사 움직임이 일자 “구한 말 쇄국정책을 고집하면서 내부 권력 투쟁에만 골몰하던 국가 지도자들이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엄청난 고통 속에 밀어넣었다”고 맞섰다.
노동시간 문제를 두고도 비슷한 상황이다. 정부는 주 단위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한 노동시간을 노사 합의에 따라 월·분기·연 단위로도 운용할 수 있도록 하고, 1주일에 69시간까지(6일 기준) 허용하자는 방침을 내놨다. 공식 명칭은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이었다. 이를 두고 논란이 거세지자 윤 대통령 스스로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했다. 당초 국민의힘에서는 주 69시간 논란을 두고 ‘가짜뉴스’, ‘취지 오해’, ‘홍보 부족’ 등으로 방어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후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역시 친윤계로 분류되는 김병민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입장을 참모들이 제대로 헤아리고 이 부분을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대응에서는 두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하나는 문제가 생길 경우 정부와 윤 대통령을 분리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정부를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상한 이야기다. 이 세계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만큼은 무결점으로 보위하는 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정당이 여론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정일체’라는 김기현 대표 체제의 특징은 윤석열 정부의 문제를 고스란히 당의 문제로 만든다. 당이 정책에 대한 여론을 정부에 전달하며 조율자로 서기보다 마치 정책 집행자처럼 정부 논리를 옹호하며 여론과 부딪친다. 이미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대통령 지지율보다 가파르게 하락하며 당-대 지지율의 하향 동기화가 나타나고 있다.
총선의 목표는 무엇인가
강제동원 문제의 ‘제3자 변제 방식’을 두고 진행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대부분 50% 이상을 기록 중이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3월 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9%가 제3자 변제 방식이 ‘굴욕 외교’라고 답했다. ‘미래를 위한 결단’은 39.7%,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4.3%였다(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비단 여론조사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일본과의 외교 문제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정상회담 전후로 규탄 시위가 발생했고, 서울대·동국대·고려대 교수의 시국선언,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가 잇따라 열렸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21일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선택해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며 “엄중한 국제 정세를 뒤로하고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 4년 안에 일본의 전향적인 움직임이 나오면 상황, 맥락과 관계없이 모두 자신의 치적으로 삼을 공산이 크다. 꼭 지지율 반등과 연결되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직접 평가받을 일은 없다. 총선을 치러야 하는 국민의힘 입장은 다르다. 일본이 1년 내에 국내 여론을 돌릴 만큼의 전향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면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해당 문제와 엮일수록 손해다. 적절한 거리 두기가 없다면 한국 여당이 일본의 입장 변화만 쳐다보며 정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노동시간 개편안 역시 매한가지다. 한국갤럽은 지난 3월 14~16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자체 여론조사를 벌였다. ‘주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는 노동시간 개편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56%가 반대했다. 찬성은 36%, 모름/응답거절이 8%였다(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이를 연령별로 나눠보면 흥미롭다. 10대부터 50대까지 모두 반대가 60%에 육박한다. 반면 60대는 찬성이 53%, 반대가 42%다. 70대 이상은 찬성이 41%, 반대가 38%다. 한국의 법정 정년은 60세다.
두 사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윤 대통령, 국민의힘 지지율과도 연관된다. 뉴스핌 의뢰로 알앤써치가 지난 3월 19~2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4명을 대상으로 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를 물은 결과, 37.1%가 긍정적으로 답했다(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3월 13~17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505명을 대상으로 선호 정당을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응답도 37%로 나타났다(95% 신뢰수준에 ±2.0%포인트). ‘제3자 변제’, ‘노동시간 개편안’, ‘윤 대통령 지지율’, ‘국민의힘 지지율’ 모두 다른 업체의 여론조사다. 그럼에도 40% 이하에서 모두 동기화된다. 쉽게 말해 기존 윤 대통령 및 국민의힘 지지자들만 해당 사안들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정당으로선 확장성 없이 지지율만 까먹는 사안인 셈이다.
이정진 배재대 교수는 2018년 ‘대통령 및 여당·야당 지지도가 대통령의 정책추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대통령·여당·야당에 대한 지지도 변화에 따라 여당의 대통령 지지 패턴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추적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 정치에서는 대통령 지지도가 낮으면 여당 지지도가 낮아질수록 대통령에 대한 지원이 힘들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통령 지지도가 낮고 여야 지지도가 비슷한 경우, 특정 정책에 대한 여론이 매우 나쁘고 특히 정책이 이미 실패한 것으로 평가돼 명분이 없을 경우 지지하지 않는 패턴이 나타났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여러 번 40%를 상단으로 해서 이를 밑돌고 있다. 총선 체제가 본격화된 시점에도 지지율이 지금처럼 30~40%를 오가는 상태에 머문다면 김 대표의 ‘당정일체’는 방향을 선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문제는 ‘너무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세운 김 대표 체제가 당정일체를 끝까지 유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윤 대통령이 ‘내부총질’하는 의원이 다수 포함된 총선 승리와 여야가 승부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의석을 나눠가지더라도 믿을 수 있는 검찰 출신 의원을 다수 포진시키는 방향 중 어느 쪽을 더 원하느냐와 연결된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당정일체 기조가 끝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며 “어차피 총선 압승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은 적어도 자기 사람을 최대한 많이 심을 수 있는 쪽으로 최적의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 역시 “윤 대통령이 가장 두려운 것은 총선 이후 책임론이 불거졌을 때 당이 자신과 거리 두기를 하는 모습”이라며 “이를 막고 퇴임 이후 자기 보호를 위해서라도 결국 자기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심는 방향으로 목표를 삼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