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취재계획이 어그러졌다. 5월 2일 오전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의 추가 일정이 떴다. “-11:30 GTX-A 2공구 방문/ -14:00 안양 평촌 1기 신도시 아파트 방문/ -15:00 수원 군공항 소음피해 주민초청 간담회/ -16:30 용인 중앙시장 방문.” 추가된 일정은 ‘풀단’으로만 운영된다고 공지됐다. 풀(pool)단은 언론계 용어다. 취재 언론사들이 합의해 대표로 서너명의 기자만 선발해 취재한 내용을 현장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병원 응급실이나 화재현장처럼 장소가 협소하거나 언론취재가 긴급한 업무를 방해할 경우 출입기자단 합의를 통해 임시·제한적으로 운영하는 취재다. 경기도지사 선거는 대부분 지방지나 중앙지의 지역 주재 기자들이 취재를 맡는다. 별도의 취재 T.O를 요청했다. 거절당했다. 이날 오전에 통화한 김은혜 후보 선거캠프 공보단장의 말이다. “…당선인과 함께하는 일정이라서요. 경호 문제 때문에 인수위 기자단이 들어가고 기사는 풀하는 방식이 될 것 같습니다. 아마 현장에 가더라도 실내에서 하는 일정이 많아 취재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당선인이 함께하는 일정이라 보안 등 경호상의 이유를 들었지만, 이날 김은혜 후보의 일정은 이미 상대편인 김동연 후보 측에도 다 알려진 상황이었다.
이어 통화한 김동연 후보 측의 말이다. “우리도 알아보니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 과연 없을까요. 그동안 일정도 국민의힘 후보들 있는 곳만 가서 같이 다녔잖아요. 곧 대통령이 될 분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통령이 아닙니다. 여든 야든, 윤석열을 찍은 사람이건 아니건 대한민국 대통령이지 않습니까.” 이날 오후 김동연 캠프의 박종국 대변인은 ‘윤석열 당선인은 누구의 대통령이 되려는 것입니까’라는 제목의 공식 논평을 냈다. “아무리 김은혜 후보가 ‘석열 찬스’로 후보가 된 ‘아바타 후보’라지만 그렇게 못 미더워 직접 나선 겁니까. 정권 출범이 코앞인 요즘 인수위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관저 쇼핑, 참사라는 말도 부족한 국무위원 후보자들 내정뿐입니다. 윤 당선인이 지방순회를 하는 바로 그 순간 국회 청문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모든 후보가 집중 난타를 당하고 있습니다. 당선인의 관심은 오직 지방선거뿐입니까.”
윤석열 지방순회 선거개입 논란 논란은 정치권 공방으로 번졌다. 5월 4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2월 중앙선관위에 ‘공직선거법상 대통령 당선인이 6·1 지방선거에서 할 수 있는 활동과 할 수 없는 활동’을 문의한 적이 있다. 임기 시작 전까지 대통령 당선인이 공무원의 선거개입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선거법 제9조와 제85·86조의 의무와 금지행위 조항 적용을 받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조 의원 측에 따르면 당시 중앙선관위는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법 해당 조항에 적용되는지 여부를 떠나, 당선인이라는 지위를 고려할 때 문의한 행위들(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등)은 자제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다시 같은 날 한국일보가 윤 당선인의 지방순회 행위가 자제돼야 할 행위냐고 질의하자 선관위 측은 “현행 선거법은 당선인의 중립 의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당선인에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여할지는 국회에서 입법정책적으로 고려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측은 “윤 당선인의 지방순회 일정 중 양승조 충남도지사, 이시종 충북도지사 등 민주당 측 지자체장도 만났으므로 선거개입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경기도가 최대승부처라고 하지만 지역언론을 빼면 구체적 쟁점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양측이 개설한 ‘기자단톡방’에 업로드되는 각 후보자 측의 논평·일정·행사 참석 소식 등을 보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치열한 ‘막후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김동연 후보는 주말, 5월 1일(일) 일정에 따라 경기 북부로 넘어와 한 교회에서 예배를 본 뒤 오후엔 경기도 고양의 서점에서 열린 ‘1기 신도시 주민간담회’에 참석했다. 다시 3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역시 고양에서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차담회에 들렀다. 배달노동자 일정은 이날이 노동절이라 기획한 걸로 보인다. 김은혜 후보는 어떨까. 같은 날 새벽 6시 40분에 경기도 구리시 법인택시 차고지를 방문한 뒤 오전 10시 종편 생방송 출연, 저녁 6시 30분엔 경기도 수원의 한 사찰에 가서 점등식에 참여했다. 김은혜 후보의 새벽 차고지 일정도 노동절을 염두에 둔 일정이었다. 두 후보의 일정을 비교해보면 1기 신도시 주민들의 ‘민원 청취’라는 중요한 일정에서 김동연 후보 측이 치고 나가는 모양새다. 지역매체들이 김동연 후보의 1기 신도시 주민간담회 관련 보도를 내자 김은혜 후보 측은 “부동산에 불 지르고 도망가고서는 ‘나는 불날 때 없었다’는 김동연 후보. 부동산정책 실패에 대한 사과가 먼저다”라는 논평을 냈다. 이어 이튿날인 5월 2일 오전 9시와 10시에 고양시 ‘1기 신도시 아파트 방문’ 일정을 잡았다. 바짝 추격하는 그림이다.
김동연·김은혜 후보의 막후 신경전 정치평론가·선거컨설턴트 등 선거전문가들은 판세를 어떻게 볼까. “전국을 순회했다고 하지만 유심히 뜯어보면 광주·전남은 광양만 잠깐 들르고 갔다. 취임 이후 일정인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또 참석하려는 것 같다. 윤석열의 ‘톤 앤 매너’로 볼 때 과거 이준석 당대표가 DJ의 고향인 하의도를 갔던 일의 연장선에서 평가하면 된다.” 현재 여러 종편방송에서 정치평론가로 활동 중인 김유정 전 의원의 말이다. 지난 대선 시기 민주당에 복당한 그는 “민주당이 이기기 쉽진 않겠지만 이기더라도 아슬아슬하게 이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심(尹心)을 등에 업은 김은혜가 유리한 국면에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재명 변수가 아직 남아 있다.”
지난 대선에서 낙선한 이재명 민주당 고문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여부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송영길 후보의 지역구, 인천 계양을에 출마하면 인천시장을 두고 리턴매치를 벌이는 민주당 소속 박남춘 현 시장과 국민의힘 유정복 전 시장 선거에 ‘붐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전 의원은 여기에 김은혜 후보의 도지사 출마로 보궐선거를 치를 경기 성남 분당갑 출마를 저울질 중인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출마 변수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5월 6일 인수위 해산 후 안철수의 역할은 없다. 총리도 안 한다고 했지 추천 장관도 하나도 안 되고 간신히 봉합했지만 결국 얻은 것도 없지 않느냐. 안철수가 요구했던 청와대 과학기술수석도 안 된 마당에 빈손으로 당으로 어떻게 돌아가나. 대표라고 하지만 평당원인데 내년에 당권을 쥐려면 원내와 원외 대표라는 신분은 천지 차이다. 분당갑으로 출마해 원내로 들어가 자기지분을 확보하는 것밖에 길이 없다. 분당갑은 안철수, 계양을은 이재명식으로 각자 나간 다음 이겨 국회에서 둘이 만나더라도 분위기 반전은 될 것이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도 “지방선거 최대승부처인 경기도선거의 핵심변수는 윤석열이며 이재명의 계양을 출마 여부가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가 전체적으로 보면 보수가 우위인 동네다. 김은혜 후보는 최초의 여성 도지사 후보인데 그에 대한 수용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게다가 김동연은 지금은 민주당 사람이지만 민주당 이미지가 강하지 않다. 경기도 색깔과 맞는 편이다.” 그럼에도 ‘검수완박’ 상황 이후 민주당으로서는 불리한 형국에 놓여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민주당이 우위인 특정 지역을 빼놓고 전반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도지사와 시장·군수와 같은 지자체장 선거가 파트너십처럼 간다는 것이다. 김동연이 지자체장과 파트너십을 긴밀하게 형성할 것인가, 이게 김동연 당락의 관건이 될 것이다. 누구나 선거에 나올 때는 자신이 당선된다고 생각해 나오겠지만 객관적으로 안 되는 지역이 있다. 그런 지역의 후보들이 그럼에도 격전지 경기도에서 김동연을 당선시키는 방향으로 뛴다면 유리할 것이고, ‘내가 왜 도와야지?’라고 생각한다면 어렵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의 생각은 다르다. 검수완박 처리 전까지는 김동연 후보가 박빙의 차이로 이길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했는데 처리 이후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했다. “검수완박은 사실상 대선불복의 성격이 있다고 봐야 한다. 국회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중간평가를 하는 것이다. ‘172석 의석을 가졌다고 당신들 마음대로 법안 처리를 하지 말라’는 걸 대선 민의로 본다면 그에 반해 밀어붙인 셈이다. 결국 민주당에 대한 심판으로 지방선거가 치러질 수도 있다.” 엄 소장은 최악의 경우 민주당이 경기도뿐 아니라 호남 3곳을 제외한 전 지역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의 판단도 비슷하다. 취임식 이후에는 정국이 바로 지방선거 모드로 세팅된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민주당으로서는 아무래도 수성전(守城戰)이 될 수밖에 없다.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흔히 이야기하는 선거의 3요소, 구도와 인물, 정책 모두 녹록지 않다. 구도는 굉장히 불리하고, 인물에서 민주당이 변별력이나 우위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아보인다. 대선 때도 정책 차별화를 도모하지 못했으니 부동산 이슈·청년세대 이탈 문제도 그대로 살아 있다. 2018년의 경우 14개 광역자치단체·152개 자치단체장을 민주당이 휩쓸어 압승했는데 광역만 놓고 보면 끝까지 지켜볼 만한 곳이 경기, 인천, 세종, 충남, 강원 정도다. 기존의 호남권 셋과 더불어 다 이기면 민주당이 8개 광역단체장을 차지한다. 그러더라도 2018년 결과의 반타작 수준밖에 안 된다. 문제는 그것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특히 승부처로 거론되는 경기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안 대표는 진단했다. “과거 역대선거를 보면 부천, 수원, 광명, 오산, 화성은 민주당의 초강세지역이었다. 아직 경선이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수원, 오산, 화성 발표자료를 보면 정당지지도가 심상찮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비슷하거나 국민의힘이 약간의 우위를 보이고 있다. 동북권·서남권의 민주당 초강세지역이 흔들리면 도지사선거도 힘들어질 것이다.”
관전포인트는 역시 ‘윤심 대 명심’ 최광웅 데이터정경연구원 원장은 “6·1 지방선거가 대통령이 바뀐 뒤 초입에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5월 10일 이후 칼자루는 윤석열 정부가 쥔다. 대선 공약을 후퇴시켰다고 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100만원을 주든 200만원을 주든, 선거 전이든 후이든 간에 얼마를 주겠다고 약속하면 자영업자들이 안 찍겠는가. 지난 대선 막판에 이재명이 0.73%P 차로 따라붙은 것도 선거 막판 지급된 방역지원금의 덕도 있었다고 본다. 윤석열이 헛발질을 한다고 하지만 돈을 뿌릴 권리를 쥔 주체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확실히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는 시장·군수선거에 국민의힘 전직 국회의원 출신들이 출마러시를 보이는 현상과 관련해 “절박함 측면에서 국민의힘 쪽이 앞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도지사선거에서 민주당의 경우 김동연 후보에 명심(明心)이 실려 있는 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명심에 밀려 엎어진 사람들, 예컨대 염태영 수원시장이나 조정식·안민석 의원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흔쾌히 돕겠나. 뻔할 뻔 자 아닌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절박한 놈한테는 못 당한다. 저쪽(국민의힘)은 전직 의원들이 경기도 시장뿐 아니라 서울시 구청장도 나오고 있다. 경기도 시장은 그래도 말이 되지만, 국회의원들이 구청장에까지 나올 이유는 없다. 속사정까지는 모르겠지만, 그쪽에선 절박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쪽(민주당)은? 그런 게 안 느껴진다.”
선거컨설턴트 출신인 신철우 시사평론가는 “국민의힘 경선에서 유승민 후보가 됐다면 위험했겠지만, 김은혜가 됐기 때문에 민주당 김동연 후보가 유리한 국면”이라고 말했다. “상대후보가 김은혜라는 것은 김동연으로서는 천운이다. 최근에 윤석열을 앞세우고 다닌 건 그만큼 본인 스스로 내세울 게 없다는 뜻이다. 김동연을 이재명이 밀고 있다는 말은 맞다. 실제 캠프에 가 보면 이재명 쪽 사람들이 거의 다 세팅돼 있다. 민주당 조직과 이재명 쪽 간에 자리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캠프에서 자리싸움·내분이 벌어진다면 위기 징후 아닐까. “잘되는 캠프에 먹을 게 많다고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자리싸움은 그래서 벌어진다. 안 되는 캠프에서는 자리싸움도 없다. 술 먹고 헛소리하는 취객이나 많지.”
경기도 전체 판세를 놓고는 선거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리는 전망이 나왔다. 선거일이 닥쳐오지만 양측 모두 아직 물밑 샅바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도지사 선거 대진표는 완성됐지만 기초단체장 선거의 양당 당내 경선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닥민심을 짚는 여론조사도 이제 막 시작됐다. 경기도민들은 최종적으로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까. 결과에 따라 윤석열 정부 5년의 정치 지형이 크게 바뀌게 된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