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카 의혹’ 등 논란 휩싸인 김혜경씨
‘집밥의 의미’를 담은 책을 낸 저자답게 가정에 충실한 사람일까, ‘갑질 의혹’을 받을 만큼 권력의 ‘단맛’에 사로잡힌 사람일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 / 이재명 후보 선대위 제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김씨는 2017년 이 후보와 함께 방송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특히 이 후보의 ‘수행비서’를 자청하는 등의 희생적인 면모와 고장난 TV, 에어컨 등을 사용하는 소탈한 모습이 주목받았다. 이는 상대적으로 냉철하고 실용적인 면모가 두드러진 이 후보의 이미지를 보완하며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김씨에게는 정반대의 이미지도 있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논란이 시작이었다. 해당 SNS에 올라온 글들은 당시 이 후보와 경쟁관계였던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등을 조롱하는 글도 담겨 있어 논란이 더 커졌다. 당시 SNS 주인이 김씨라는 의혹이 제기되며 이른바 ‘혜경궁 김씨’ 사건으로 비화했다. 검찰이 명예훼손 혐의는 ‘기소중지’, 허위사실유포 혐의는 ‘혐의없음’ 결론을 내렸지만, 세간의 모든 의혹이 말끔히 정리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김씨는 오는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도 ‘법인카드 유용’, ‘과잉 의전’ 논란 등에 휩싸여 있다.
김씨를 둘러싼 양극단의 이미지를 정치권 안팎에선 사실상 ‘리스크’로 분류한다.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됐지만, 김씨가 공개 유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문제가 불거지자 보란 듯이 이 후보와 다정한 모습으로 야구장을 찾았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 후보 선거캠프도 김씨의 가정적 이미지가 만들 긍정효과보다 각종 의혹으로 인한 부정효과를 더욱 신경쓰는 모양새다. 자의든 타의든 김씨는 대중 앞에서의 노출을 최대한 줄였다. 이와 함께 “대통령이라는 큰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한 검증해야 한다”는 김씨의 발언도 무색해졌다.
김혜경은 누구 김씨는 1967년생으로 서울 출생이다. 1985년 선화예술고를 졸업한 뒤 숙명여대 피아노과에 진학해 음악을 전공했다. 갓 대학을 졸업한 1990년 8월 이 후보를 만나 채 1년도 안 된 1991년 3월에 결혼했다. 이듬해 장남을, 그다음 해에 곧바로 차남을 낳았다. “남편을 만난 지 고작 3년이 지났을 뿐인데 식구가 둘에서 셋으로, 넷으로 순식간에 불어났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사실상 대학 졸업 후 곧장 전업주부로서의 삶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과 직면하고 말았던 셈이다.

김혜경씨가 지난 2018년 출간한 책 <밥을 지어요> / 김영사 제공
실제로 김씨의 특징은 대부분 전업주부로서의 삶과 연결돼 있다. 김씨가 2018년 출간한 책의 제목도 <밥을 지어요>다. 확인 가능한 김씨의 유일한 독자적 대외활동이다. 책에는 요리법 소개와 함께 김씨가 이 후보와 보낸 지난 30여년의 세월이 담겨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김씨가 주부로서의 삶과 정치인 배우자로서의 삶을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생각하는 집밥은 고급 식재료로 만든 근사한 상차림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다 미뤄둔 채 아무 말 대잔치나 늘어놓으며 함께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는 그 시간과 공기까지 포괄하는 것일 테다. 우리 삼식이(이 후보)가 집밥을 찾는다는 것은 ‘여보, 나 힘들어! 당신이 필요해’라는 신호인 셈이다”(김혜경 <밥을 지어요>, 7p)고 설명하는 식이다.
식사를 챙기는 일상적 ‘내조’를 넘어 선거과정의 ‘내조’ 역시 주부로서의 경험과 연결된다. “내가 구입한 목록까지 알고 계시는 상인분들, 요즘 농수산물의 생산과 유통 현황까지 설명해주시는 상인분들과의 대화도 살아가는 데 쏠쏠한 재미를 준다. 남편에게 생생하게 전할 수 있는 소중한 시민들의 목소리도 대부분 나의 장보기 현장에서 나온다고나 할까? 특별히 선거 때마다 시장에 가서 연출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김혜경 <밥을 지어요>, 25p)라고 밝혔다.
김씨가 소개하는 일상과 집에서의 역할분담은 전통적 가족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역대 대통령 배우자들의 모습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통령 배우자들에게 수동적·가정적 역할에서 탈피해 전문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 이름 높았던 고 이희호 여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국정에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사회공헌 역할은 충실히 수행하라는 과제를 대통령 배우자들에게 던진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임에도 김씨는 MBN과의 인터뷰(1월 30일)에서 이미 소신을 밝혔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듣는 것도 있고, 경험한 것도 있어서 남편에게 말을 하면 어떤 선에서 딱 막히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열심히 (선거를) 도왔는데 이 정도 말도 못 하나 기분이 나빴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선을 지키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러면서도 “소외되고 손길이 많이 필요한 곳의 소리를 많이 듣고 전달하는 역할 정도를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답변은 과거 대통령 배우자들의 전형적인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불러온 ‘국정농단 리스크’,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선판을 흔들고 있는 ‘배우자 리스크’ 등을 감안할 때 “선을 지키겠다”는 발언은 모범답안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만약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김씨의 역할은 김정숙 여사와 비슷한 스타일이 될 것 같다”며 “투표로 선출되지도 않은 대통령의 배우자가 사회적 광폭 활동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기보다 드러나지 않는 범위에서 조용히 활동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가 지난 2월 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과잉 의전’ 논란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김씨의 정치적 인기는 나쁘지 않다. 지난 1월 19일 문을 연 김씨의 인터넷 팬카페 ‘함께해요’는 2월 24일 기준 약 3만40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도덕적·법적 논란에 휩싸인 윤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와 비교되며 반사이익을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교적 평범한 이미지에 가정적 면모가 도드라졌던 김씨에게 악재가 터진 건 대선을 불과 30여일 앞둔 지난 1월 28일이었다.
도덕적·법적 논란 불가피 전직 경기도청 별정직 공무원 A씨는 이날 김씨 관련 의혹을 폭로했다. A씨는 “경기도 5급 공무원 배모씨의 지시로 김혜경씨의 사적 심부름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약 대리 처방·수령과 음식 배달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김씨가 남편(이 후보)의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 비서실 법인카드로 반찬을 구매하거나 식사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직접 장을 보고, 상인분들과 대화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라고 했던 김씨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비판 여론이 일자 김씨는 지난 2월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다. “공과 사의 구분을 분명히 해야 했는데 제가 많이 부족했다. 앞으로 더 조심하고 더 경계하겠다”며 “수사와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결과가 나오면, 응분의 책임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다시, 대체 무엇을 사과한다는 건지 ‘주어가 빠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와 김씨 등 관련자 5명을 국고손실과 직권남용,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후보 선대위는 “A씨가 반찬 조달, 음식 배달, 의약품 구매 등을 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설혹 일부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배씨의 지시였을 뿐 김씨는 관여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일이다”며 “당장 배씨가 ‘A씨의 일은 김혜경 여사와는 아무 상관없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김씨가 사과 이후 대중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의혹은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국민적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김씨가 공식석상에 나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본인 역시 염치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 교수 역시 “유세 활동을 하더라도 본인이 조용히 혼자 하는 방법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드러날 경우 규정에 따라 책임지겠다”며 사과한 이 후보는 아내(김씨) 관련 발언을 아끼고 있다. 장인의 고향인 충북 충주를 찾으면서도 김씨와 동행하지 않았다. 대선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김씨의 공식 등판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배우자 김혜경씨가 지난해 11월,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을 관람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청와대로 간다면 이 후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러차례 김씨를 향한 마음을 밝혔다. “나는 아내에게 늘 빚진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산다. 아내가 나보다 많은 일을 하면서도 아내만의 공인된 일이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신혼 시절 장난삼아 만난 설악산 오색약수 고양이 할매의 ‘아내도 일을 해야 한다. 안 되면 사채놀이라도 해야 한다’는 점괘에 공감을 표하던 아내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김혜경 <밥을 지어요>, 240p)고 말했다.
김씨의 경력은 가정주부의 삶이 대부분이다. 오랜 시간 정치인의 배우자로 살면서 김씨가 공식석상에서 언급한 발언 역시 주로 ‘살림 생활’에 관한 것들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본인 스스로 “선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입성 후에도 김씨가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보는 등 소탈한 모습을 이어가며 상인들의 애환을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전령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이 소장은 “서구 문화의 산물인 ‘영부인’ 제도가 의전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특권을 구조화한 상황”이라며 “이번 대선을 계기로 대통령 배우자도 평범하게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공공장소에서 줄을 서는 모습을 일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