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클레어 주한 아일랜드 대사 인터뷰
아일랜드는 한국인에게 낯선 나라다. 영국 서쪽 섬에 있는 아일랜드는 20세기 초, 독립전쟁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분리됐다. 그러나 영국 신교도가 다수인 섬의 동북부 ‘얼스터’ 지방 6개주는 독립을 거부했고,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남았다. 이후 북아일랜드 지역에서 발생한 가톨릭 신자에 대한 차별, 아일랜드 내부의 민족주의 움직임 등이 섬을 ‘내전’ 상태로 만들었다. 당시 북아일랜드에 있는 영국군을 상대로 테러활동이 활발했는데 이때 이름을 떨친 것이 아일랜드공화국군, 이른바 ‘IRA’다.
아일랜드는 현재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공화국이다. 하지만 섬 내부에 북아일랜드가 있다는 점은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당장 유럽연합(EU) 소속으로 사실상 국경이 없던 섬은 영국의 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로 새로운 문제를 안게 됐다. 영국은 EU와 브렉시트 협정을 하며 북아일랜드를 EU 단일 시장에 남기기로 했다. 이로 인해 북아일랜드가 EU 국가와 교역할 때는 통관 작업을 하지 않지만, 정작 영국 본토와 교역할 때는 절차를 밟게 된 상황이다. 이에 영국은 이른바 ‘북아일랜드 협약’을 수정할 것을 요청했다. 결과에 따라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다시 국경이 생기고, 이로 인한 긴장이 조성될 수 있다.
그런데 아일랜드 독립과 내전, 직면한 문제 등은 왠지 낯설지가 않다. 1945년 이후, 한반도 상황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인식이 아니다. 양국의 유사한 역사적·사회적 맥락은 아일랜드 최대 인도주의 구호단체 ‘컨선월드와이드’가 한국지부를 운영하는 계기가 됐다. 아일랜드에서 뿌리내린 활동은 한국에서도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브렉시트 이후 아일랜드의 미래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현재까지 북아일랜드와의 분쟁을 관리하고, 세계기아문제 해결까지 힘쓰는 모습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와 관련해 지난 12월 6일 서울 종로구 아일랜드대사관에서 줄리안 클레어 주한 아일랜드 대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박병률 주간경향 편집장이 진행했다.
-아일랜드에 뿌리를 둔 구호단체가 한국에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데.
“컨선월드와이드는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위기 대응에 효과성을 입증해온 구호단체다. 특히 극빈층의 빈곤 해결을 돕는다. 컨선월드와이드를 정부 차원에서 보면 아일랜드 최대 규모의 비정부기구(NGO)이자, 정부 재정 지원을 최대수준으로 받는 단체다. 또 민간 차원에서 보면 아일랜드 국민이 컨선월드와이드의 전체 공여금의 20~25%를 낸다. 그만큼 국민과도 견고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단체다.”
-왜 한국에 지부를 냈다고 생각하나.
“한국을 선택한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한국인의 따뜻함 때문이고, 둘째는 한국도 국가적 차원에서 아픔을 겪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은 기아문제에 대한 이해가 높고,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국가다. 아일랜드 정부와 구호단체 입장에서는 한국에 지부를 두는 것이 당연한 선택지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실제로 한국지부는 단순히 기아라는 이슈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빈곤 담론에 있어서도 선도 기관 역할을 하고 있다.”
-유독, 기아문제 대응에 특화돼 있는데.
“기아가 아일랜드 역사에서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아일랜드에는 19세기 중반 대기근이 발생했다. 이른바 ‘감자 기근’으로 수백만명의 아일랜드인이 타국으로 떠났고, 또 수백만명이 사망했다. 대기근이 발생할 무렵 아일랜드 인구가 약 875만명 수준이었는데 현재까지도 이 정도 인구 규모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19세기 중반보다 인구가 줄어든 국가는 아일랜드가 유일할 것이다. 대기근의 참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아동이 굶어죽은 ‘기아’문제다. 이에 대한 기억이 아일랜드인에게 깊이 남아 있다. 그래서 경제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아일랜드 국민은 기아문제에 기꺼이 돈을 내고 있다.”
-대기근 당시 미국으로도 많이 갔다고 들었다.
“미국계 아일랜드인 숫자가 대략 4000만명 정도 된다. 가장 대표적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선친이 서부 아일랜드 지역에서 미국으로 떠난 이민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존 F. 케네디, 레이건, 클린턴 전 대통령도 아일랜드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안다.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취임 당시만 해도 아일랜드와의 연관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뒤에 한 역사학자가 연관성을 밝혀낸 바 있다. 이렇듯 미국과 아일랜드는 역사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지금도 선린 우호국으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아일랜드에 투자하고 있고, 특히 북아일랜드와의 평화 프로세스 구축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도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미국 내에서 견실한 지위를 구축하고 있다.”
-기아부터 이민자의 성공까지 한국과 아일랜드가 닮은 점이 많은데.
“양국이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한국은 단기간에 빈곤을 퇴출하고 번영 국가로 거듭난 유일무이한 국가다. 전 세계의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거듭난 점 역시 어느 나라와도 비길 수 없는 성과다. 아일랜드 역시 서유럽 최빈국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실업 등의 경제문제로 고통받으면서도 교육, 민주주의 등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 역시 한국 역사와 비슷한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아일랜드가 반전의 계기를 맞은 것은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유럽이라는 단일 시장에서 쏟아지는 인적·물적 투자와 관세 완화로 인한 혜택을 누렸다. 이후 유럽연합(EU)의 일원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자체 산업을 육성하고, 경제적 번영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처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도 받은 적도 있다. 이런 점까지도 한국과 유사한 것 같다.”
-분쟁을 겪고 있다는 점 역시 한국과 유사하지 않나.
“북아일랜드와는 평화 프로세스가 구축돼 운영 중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중반까지는 북아일랜드와 폭력적 갈등이 이어졌다. 1980년대 무렵부터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 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모여 이 문제를 어떻게 균형 있게 해결할 수 있을지 논의를 시작했다. 북아일랜드 신교도 신자들은 영국과 친밀성을 느끼는 반면, 가톨릭 신자들은 아일랜드와 친밀성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각각의 대표성을 온전히 유지하며 공존할 수 있을지가 화두였다. 이후 경찰력을 재구성하는 등의 자체 개혁이 있었고, 북아일랜드를 스스로 다른 해결책을 원하지 않는 이상 기존 상황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이루게 됐다. 아일랜드 헌법도 이러한 가치를 존중할 수 있게 개정함과 동시에 존중이 주요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조처를 시행했다. 대표적으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의 물리적 국경을 없앴고, 화폐, 관광, 문화 등에서도 협업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 상황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아일랜드’라는 슬로건 하에 꾸준히 추진하다 보니 북아일랜드에서도 이러한 제안을 수용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비록 분쟁 과정에서 3000여명의 인명 손실이 있었지만 이를 통해 화합했다.”
-분쟁 상황 종식이 아일랜드의 경제적·사회적 번영에도 기여했다고 보나.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평화는 분명 유익한 혜택을 가져왔다.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경제발전의 선결 요건이 된 것이다. 다만 이질화된 두 집단 간 실질적 관계복원이 이뤄졌느냐 하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노력이 필요하다. 협정에 서명하고, 무기를 내려놓는 것만으로 완전하지 않다. 양 집단이 동일한 소속감을 느낄 때까지 적극적인 노력은 계속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가 있다. 그동안 영국이 EU에 함께 있음으로써 경제적 번영뿐만 아니라 국경 문제도 마찰을 빚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영국이 EU에서 탈퇴함으로써 향후 이러한 행보가 가능할지 미지수가 됐다.”
-북한 대사도 겸임하고 있다고 들었다.
“주한 아일랜드 대사는 북한 대사도 겸임한다. 현재는 코로나19 문제로 북한 방문은 어려운 상황이다. 인권문제, 핵무기 개발 등에 대한 북한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 아일랜드는 현재 2년 임기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을 맡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비판한다. 북한은 기아로 인해 비극을 겪고 있다. 한국과 같은 언어, 문화 등을 공유하지만 약 2500만명의 북한 사람은 한국 사람들처럼 자유와 번영을 누리지 못한다. 이런 상황은 ‘불의’라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 40%가량이 식량 부족으로 인한 위기를 겪는 상황이다. 북한 정권은 보유한 자원을 활용해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미사일이나 무기체계 개발에 급급할 때가 아니다.”
-한반도 종전선언 추진이 분쟁 해결에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보나.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틀 때도 북한은 도발을 일삼았다. 북한이 핵실험 등을 감행하는 상황에서 관여 정책을 꺼내든 것은 문 대통령의 용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신의성실 원칙에 입각해 비핵화를 추진하고, 유엔 안보리 제재를 잘 지켜나가야 한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예외적 접근을 말하고 싶다. 원조가 시급한 북한 주민들이 있다. 종전선언 등을 통해 일단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낼 수 있다면 어떤 형식으로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한국이 대외 구호활동에 나설 만큼의 정치경제적 위상을 확보했다고 보나. 국내적으로는 누구를 돕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대외 구호활동을 하는 국가는 없다. 아일랜드와 한국 모두 교육에 대한 투자와 수출역량을 바탕으로 발전을 이뤘다. 이를 통해 발생한 과실이 모두에게 돌아가기 전까지 만족은 어려울 것이다. 아일랜드 역시 한국과 유사하게 높은 주거비용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 문제들은 정부나 시장 차원에서 숙고하고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해결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현재 한국의 위치라면 국제사회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국민 스스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몸을 던졌고. 단기간에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자유와 경제적 번영을 쟁취한 국가다. 이는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향후 유럽연합과도 양방향 파트너십을 강화하길 희망한다.”
-예를 들어 공적개발원조(ODA) 확대에 대해 마뜩잖아하는 여론이 있다.
“아일랜드도 ODA 부분에서 분담된 역할을 수행하는데 부족함이 있다. 유엔이 권유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ODA 목표 수치는 0.7% 정도다. 그런데 현재 아일랜드는 0.32% 정도 기여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조를 하는 상황은 점점 더 녹록지 않게 됐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공적부채가 막대한 상황에서도 ODA에 대한 전반적 기조 자체는 유지가 됐다. 이상적 상황이 지속된다면, 아일랜드도 2030년까진 ODA를 GDP 대비 0.7%로 늘릴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선진국들이 ODA를 늘려 개도국을 돕는다고 해도 기아문제가 해결될까.
“유엔이 2015년 채택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보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구체적 로드맵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구호는 교육에 대한 질적 향상과 투자, 위생·식수·기후변화 등을 연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원조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이러한 로드맵을 참고하면 기아문제 해결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젠더 측면에서 여성이 평화구축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기아의 60%는 분쟁지역에서 발생한다. 분쟁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문제가 된다. ODA뿐만 아니라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평화구축을 추진하고, 평화유지 활동을 함으로써 분쟁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글로벌 NGO인 ‘컨선월드와이드’가 아직 낯선 한국독자들에게 소개하면.
“한번쯤 시간을 내서 컨선월드와이드 웹 사이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컨선월드와이드는 아일랜드의 내에서도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국제 구호단체이다. 이들이 빈곤 퇴치를 위해 얼마나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관심과 지원 부탁드린다.”
<진행·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정리·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