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김세연의 ‘세대반란’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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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생 두 정치인 대담집 <리셋 대한민국> 이후 행보 주목

줌으로 이뤄진 출간 기자간담회. 진행은 매끄럽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비대면회의가 일상화된 지 벌써 1년 가깝게 됐는데 아직도 어색했다. 질문도 기자를 포함한 초반 몇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채팅으로 이뤄졌다.

2월 24일 <리셋 대한민국> 출간에 맞춰 경제학자 우석훈 교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왼쪽부터)이 온라인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오픈하우스 제공

2월 24일 <리셋 대한민국> 출간에 맞춰 경제학자 우석훈 교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왼쪽부터)이 온라인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오픈하우스 제공

“…서울시 민주당 의원들이 질문하는 데 날이 서 있었다. 60년대생인데 공격적으로 질문하더라고. 대부분 83·84학번들인데 어느새 자신들이 세대교체 대상이 됐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안 좋았던 것 같더라고. 거의 환갑나이잖아.” 박용진 의원으로 추정되는 발언이다. 기자간담회 시작 전 사담(私談)이다. 줌으로 화면이 송출되지 않은 상태로 마이크가 켜진지 모르고 나눈, 말하자면 ‘방송사고’다.

“미래 위해선 586기득권 타파 필요” 공감

<리셋 대한민국>은 경제학자 우석훈이 사회를 보고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리고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나눈 대담이다. 정리는 정치평론가 공희준씨가 맡았다. 역할이 나눠져 있는 것 같지만, 책을 읽어보면 네 사람의 방담에 가깝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논한 책이다. <88만원 세대> 이후 정치권 의제로 들어온 세대론에 대한 암묵적 동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세대지체는 정치를 넘어 한국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된 문제다. 정확히 말하면 세대독점, 산업화에 이은 민주화를 훈장처럼 여기고 있는 586기득권 독점을 타파하고 한국사회를 재구조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좌담 참석자들은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간담회 전날, 이 기획에 참여한 공희준씨는 “개인적으로 한국은 386 장기 집권체제로 들어갔다고 본다”라며 “현재 586은 진보의 대표주자가 아니라 앙시앵 레짐(구체제)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586이 아닌 70년대생 정치인들의 역할이 이 ‘악의 축’을 청산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박용진 의원은 1971년생이다. 1994년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갔고, 출옥 뒤에는 재야단체에서 일하다가 국민승리21로 정치권에 들어왔다. 2010년 민주노동당의 후신인 진보신당 부대표까지 역임한 뒤 민주당에 들어가 20·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재선 의원이다. 유치원 3법과 삼성 재벌 부당승계 문제 등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할 일은 하고 할 말은 하는’ 당내 소장파라는 인식을 얻었다.

김세연 전 의원은 1972년생이다. 기업가 출신으로 5공 시절 전두환이 영입한 김진재 의원의 아들로 18대 무소속으로 지역구로 당선돼 내리 3선을 한 의원이다. 탄핵 후 바른정당으로 옮겨 사무총장과 바른 정책연구소장을 역임한 뒤 자유한국당에 복당, 여의도연구원장을 역임했다. 2019년, 그가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내놓은 “자유한국당은 좀비와 같은 정당이며 없어져야 할 존재”라는 해체론을 주장해 파문을 낳았다.

지난 1월 초, 박 의원이 최근 서울 마포에 개설한 ‘온국민행복정치연구소(가칭)’에 우석훈 교수가 참여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석훈 교수가 박용진 대선 싱크탱크의 수장을 맡는다는 소식이다. 박 의원이 2022년에 치러질 대선에 도전할 계획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다만 공식선언이나 캠프 개설이나 비전 등은 서울·부산 보궐선거 등을 치른 뒤인 4월 중순 이후로 미뤄놓았다. 자연인으로 돌아간 김 전 의원의 행보 역시 정치권 주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 보궐선거가 확정됐을 때 야권 일각에서 김 전 의원 차출론이 나왔다. 김 전 의원은 거절했다. 바로 “더 큰 꿈, 빅픽처를 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대담집 발간이 정치권 안팎에서 주목을 받은 까닭이다. 관련해 주간경향의 질문에 박 의원은 “우석훈 교수는 과거 진보정당 시절부터 알고 흠모하는 분이라 연구소 소장을 맡아주길 부탁했다”라며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계파도 없는 사람(박용진)이 대선에 나선다는 용기와 도전을 가상하게 생각했는지 흔쾌히 수락했던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우석훈 교수가 싱크탱크 수장을 맡기로 한 것과 이번 대담집은 별개라며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대담집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쏟아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관점을 단단히 하면서 또 교감을 통해 수정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국회 임기를 마친 후 학교수업을 맡아보라는 권유를 받아 수업준비를 한다고 기본소득에 대해 공부하고, 그 결과를 SNS에 종종 올리곤 했다”라며 “기본소득 논쟁에 참여하고 있지만, 대선과 관련해서는 내 이름을 빼줘도 될 것”이라고 답했다. 대선 출마는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픈하우스 제공

오픈하우스 제공

박 의원은 대통령선거에 도전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년 전부터라고 이날 간담회에서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나서면 연구소도 만들고, 책도 내고 캠프도 꾸리는 것이 초식에 해당한다”라며 “내 생각을 준비하는 것은 지난해 11월에 다른 책에서 끝냈다”라고 말했다. 대담집은 이미 대선용 책을 만들어 놓고 낸 것이라는 뜻이다. 책은 4월 재보궐선거 후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공개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날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다음 대통령선거에는 모든 후보가 개헌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밝혀야 한다”며 그 일단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 개헌안을 내놨지만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는 건 쉽지 않고, 분권형 대통령제를 명시하고 원포인트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의 개편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분점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은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당장 총리를 (현재처럼 대통령이 지목하는 방식이 아닌) 국회가 추천하는 2명의 총리후보 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만 바뀌어도 정치에서 내각제적 성격이 살아날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박용진 대권카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개헌을 통해 총리권한 강화-내각제적 요소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치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권형 개헌을 목표로 기존의 양극화된 진영을 재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자기 마케팅이나 간 보기,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정치는 실전이다’는 말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 같다.” 대담집을 정리한 정치평론가 공희준씨의 평이다. 2022년 대선에 나가겠다는 것이 연습게임이나 몸풀기가 아니라 실제 586기득권과 각을 세우기 위해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존재감이 없는 박 의원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YS(김영삼)가 신민당 후보 지명전에 출마하며 ‘40대 기수론’을 내놓은 때가 1969년이다. 실제로 그가 유력대선주자가 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고, 대통령이 된 것은 1992년이다. YS나 DJ(김대중)나 처음 세대교체론을 내놓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20년 걸렸다. 물론 시대가 변했고 정치주기도 빨라졌으니 그것보다는 당겨지겠지만.”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의 말이다. 기존의 빅3(이재명·이낙연·윤석열) 대권구도에 변화를 일으키기는 힘들겠지만 586기득권에 대한 포스트386의 도전 자체가 긴장효과는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당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내부의 주류에 대응해 상대편을 극복해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태우가 1987년에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두환을 딛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권력은 단순히 이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선 자기편 내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위험부담을 딛고 극복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박용진이 이번에 한번 나와 정치적 체급을 올리겠다면 또 모르겠지만, 진짜 성공하려면 소위 윤석열이 될 각오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건 김세연이 만약 대선에 출마할 뜻을 품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가져야 할 태도다.”

‘용기 있는 대통령’, ‘기본소득’ 어젠다 아냐

김성순 시사평론가는 “586기득권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실히 설득력이 있는 것은 지난 20년간 자신이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때(1980년대) 너는 어디에 있었는가’가 기득권의 유무를 가린다는 경험칙”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그 기득권 동맹의 아웃사이더 내지는 언저리에 있다고 극복할 적임자가 자신이라는 것이 자동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시쳇말로 민주당의 386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다 합쳐도 김세연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은 못 당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차기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정치인이라면 이야기할 것은 세대론이 아니라 다음 먹거리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이슈를 제기하고 나가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기본소득 논쟁을 벌이고 있는 김세연 전 의원의 경우 나름 미래에 대한 어젠다를 던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용진 의원은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수식어가 붙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용기 있는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바 있다. 훌륭한 대통령은 지지층에게 박수만 받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지지자에게 욕을 먹더라도 미래를 위한 결단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용기 있다는 것은 일종의 캐릭터인데 대표와 책임원리로 운영되는 대의제와 마찬가지로 선거와 정치에서도 누구의 대표이고, 무엇을 대변하느냐가 특히 중요하다.” 엄경영 시대정신 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박 의원이나 김 전 의원이나 자기 기반에서 대표성이 취약하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라는 것이다. “물론 세대교체가 의미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당내 현안은 아니다. 알다시피 노무현 대통령의 기반은 당시 20대였던 386세대였고, 지금 30·40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재명도 1964년생, 이제 50대 중반을 넘긴 사람으로 상대적으로 젊다. 집권세력의 586에 대한 피로도가 쌓이고 있고, 이 정부 들어 586이 권력 전면에 나섰지만, 그동안 사회나 정치에서 586은 참모에서 리더로 막 나온 상황이다. 20대에서 반문정서가 확산되고 있다지만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은 30·40대에서 보수정당에 대한 비토정서는 아직 강하다. 박 의원에게 이 30·40대 대표성 확보가 과제라면 김세연 전 의원 역시 이미 이재명 지사가 선점한 기본소득이 아닌 새로운 보수 가치로 ‘김세연 정치’를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세대반란’을 꿈꾼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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