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압박 줄어들 가능성…‘전략적 인내 또는 무시’ 답습하지 않을 듯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이 다시 이끌어야 한다(America Must Lead Again)”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협력을 회복하고, 동맹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국내 혼란과 어려움으로 대외정책에 얼마나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미관계는 일단 바이든의 공약대로 동맹 관계의 복구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트럼프식의 양자적인 압박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특히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동맹을 트럼프 방식인 ‘보호비 갈취(protection rackets)’의 대상으로 보지 않겠다고 천명한 만큼 해소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기본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미국은 역사적으로 동맹을 동등한 친구로 대한 적이 없다. 바이든이 등장했다고 우리 스스로 동맹을 다시 실용적 관점을 넘어 신화로 되돌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특히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의 기치 아래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의 대중봉쇄망 구축과 미사일 방어를 위한 상호운용성의 제고에 방점을 두었던 것은 오바마 8년의 민주당 정권이었다.
미국 민주당의 축적된 대북 데이터
전문가 대다수는 한미동맹은 바이든 정부가 훨씬 나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대북정책에 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어왔다. 이유는 북한 문제를 거의 방치했던 오바마 정부 8년의 소위 ‘전략적 인내의 부활’ 가능성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대통령의 부족한 외교적 역량을 보완했던 바이든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오바마 정부와의 연속성을 강조할 수 있다.
또한 북한체제와 맞았던 트럼프의 하향식(top down) 방식과 비교해 실무진의 협상을 통한 상향식(bottom-up) 접근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부정적 요소다. 지난 30년간 대북 실무협상은 주로 민주당 측에서 담당해왔는데, 신고, 사찰, 검증, 제재 등을 강조하는 바람에 협상이 결렬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부 교체의 경우 정책 검토와 외교안보팀 임명과 인준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 손실이 예상되고, 미국 내 산적한 문제로 말미암아 북한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 크다는 점도 거론된다.
그러나 긍정적인 요소도 꽤 있다. 우선 바이든 캠프 인사들은 ‘전략적 인내 또는 무시’라는 비판에 반발한다. 오바마 정부 당시 북한의 태도로 인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가능한 옵션들을 성의껏 추진했다고 주장한다. 바이든 정부는 전략적 인내에 대한 비판을 충분히 인지하고 불편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했으며, 바이든 당선자는 이들의 견해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민주당의 축적된 대북 데이터와 경험에다 전문성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북한문제 해결에 나설 수도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을 선호하며, 한미 양국의 진보 정부가 공유하고 있는 외교 철학이 디딤돌이다.
무엇보다 바이든 당선자가 앞으로 어떻게 외교안보팀을 구성할지가 주목된다. 현재 파악되고 있는 바는 크게 두 축으로 나눌 수 있다. 외교안보정책의 경우 특정 지역이나 국가를 전문으로 하는 ‘지역주의자(regionalist)’와 특정 분야나 이슈를 다루는 ‘기능주의자(functionalist)’로 나뉘는데, 한반도 및 아시아 전문가 또는 북한 전문가들이 전자에 속하고, 핵무기 및 비핵화 전문가들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지역주의자들은 온건한 편이고, 지역 불문하고 미국의 대외정책 전반의 통일적인 접근을 중시하는 기능주의자들은 강경파들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북한에 관해서는 지역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불신이 깊고, 과거 협상 실패의 경험으로 인해 타협보다는 엄격한 제재와 압박을 통한 포괄적 비핵화를 주장한다. 반대로 기능주의자는 북한의 핵 능력이 과거와 달리 매우 다양하고 고도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꺼번에 비핵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므로 일단 동결 같은 중간과정을 거침으로써 핵전력 강화를 막은 다음 장기적으로 비핵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들이 전체 대외정책에서는 주류지만, 한반도 문제에 관련해서는 비주류다. 하지만 최근 조금씩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문제 직접 다룰 전문가는 누구
국가안전보장회의 안보보좌관,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 최고위급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토니 블링컨, 제이크 설리번, 수전 라이스, 크리스 쿤 등은 북한을 신뢰하지 않아 때때로 대북 강경발언을 내뱉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협상을 통한 해결을 지지한다. 이들은 미국 대외정책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북한 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직접 북한 문제를 다룰 관료들과 자문역할을 하는 전문가들의 의견 개진이 중요하고, 바이든이 누구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인가가 관건이다.
의회의 움직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9년 2월 샌더스를 포함한 51명의 진보파 의원들이 종전선언 결의안을 제출했다. 2016년 민주당 내의 진보파들이 나서지 않았던 것이 선거패배의 중요한 이유였는데, 이번에는 트럼프의 낙선을 위해 대체로 통합적이었다. 이는 이들 진보세력이 바이든 당선에 지분이 있다는 뜻이다.
북한 문제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있어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 어젠다다. 즉 미국이 해결한다고 해도 미국의 이익에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 핵문제가 해결되고 남북이 평화공존을 이루거나, 또 통일될 경우 중국 경사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있다. 따라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성공을 위해 한국은 이 부분에 대해 미국을 설득시킬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그래야 미국의 외교안보팀과 바이든을 움직일 수 있다.
미·중 갈등이 새 정부에서도 지속할 상황에서 우리의 대응 카드는 결국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적극적인 추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서 이용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남북의 평화공존이 요구된다. 바이든 정부의 출범이 미국이나 세계질서에도 변곡점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한반도에도 기대와 동시에 도전이다.
<김준형 국립외교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