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해제 대신 고밀도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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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시 정책보좌관 언론 인터뷰서 밝혀… 박원순 유지를 정부가 받았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 내 노동분업 변화와 그에 따른 직장·거주양태 변화를 반영해 새로운 21세기 도시모델을 만들려 했던 것이다.”

지난 8월 11일 접촉한 전 서울시 고위 핵심인사의 말이다. ‘박원순 서울시 6층’ 정무직 인사인 그는 박 시장의 사망과 함께 물러났다. 그는 익명을 요청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모인 ‘초록 태릉을 지키는 시민들’ 회원들이 8월 9일 오후 서울 노원구 롯데백화점 앞에서 8.4 정부 부동산 대책에 대한 반대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모인 ‘초록 태릉을 지키는 시민들’ 회원들이 8월 9일 오후 서울 노원구 롯데백화점 앞에서 8.4 정부 부동산 대책에 대한 반대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기자는 박 시장의 사망 후 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서울시와 청와대·국토부 갈등 기사를 썼다. 서울시가 “해제 대신 고밀도 개발안을 대안으로 발표하려 했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최병천 전 서울시 정책보좌관이 매일경제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7월 27일 인터뷰에서 최 전 보좌관은 “6월 초 박 시장이 주재한 서울주택도시공사(SH) 현안 보고 자리에 배석했으며,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이 ‘도심 고밀도 개발 공급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해 총 4차례 회의를 가져 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7월 13일 월요일 공급방안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고, 7월 8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만난 뒤 이낙연, 김부겸 당 대표 후보를 만날 예정이었지만 박 전 시장이 사망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됐다”고 주간경향의 보도내용을 확인했다.

박 시장 계획 주간경향 보도 사실로 드러나

인터뷰에서 최 전 보좌관은 확정했던 안과 관련해 “30·40세대들이 직주근접(직장과 집이 가까움)할 수 있는 곳에 대량 공급하자는 것이 핵심이었고, 모토는 ‘신도시가 아닌 신도심’이었다”며 “도심, 즉 서울 사대문 안에 5000~6000가구를 공급하되 SH가 참여하는 공공재개발 방식으로 인근 지역 집값이 덩달아 뛰는 것을 막는 안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외에도 서울의료원 부지(3500가구), DMC랜드마크 부지(5000~8000가구), 구 중구청 부지(600가구), 용산정비창 부지 추가 활용 등으로 추가공급분 기준으로 총 1만5000가구를 공급하려 했으며, 공급방식으로는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을 도입할 계획이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8월 4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공급방안과 관련해 최 보좌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자신이 인터뷰에서 밝혔던 ‘박원순 서울시의 공급대안’이 정부안에 거의 수용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서울시가 발표하려 했던 안은 문재인 정부를 측면지원하려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8월 10일 그는 다시 글을 올려 이날 국토부가 ‘강남 3구 개발이익을 강북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 “‘강남 3구 개발이익의 광역화’는 ‘전국민고용보험’에 이어 준비했던 두 번째 이슈”라고도 주장했다.

정부 당국이나 국토부가 박 시장이 남긴 부동산 정책을 실제로 수용해 정책 방향을 수정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최 전 보좌관에 이어 정세균 총리의 매일경제 인터뷰를 보면 서울시와 정부 사이에 벌어진 막후논의의 일단이 드러난다. 정 총리는 인터뷰에서 “고밀도 개발정책으로 갔을 때 용적률 등 규제가 완화되면 부작용으로 인근 지역 부동산 가격이 오를 수 있다”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민간 재건축에는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그런 측면에서 서울시 본부장(김성보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의 태도는 아주 부적절했다”고 서울시를 비판했다. 다시 ‘서울시가 말을 바꿨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부연 설명한다.

“서울시가 중시하는 그린벨트는 해제하지 않기로 정부가 초기 결단을 낸 것도 우리가 양보하는 대신 서울시가 그에 상응하는 성의를 보여서 같이 ‘원팀’으로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재건축 형식에 대해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이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을 수 있지만,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공직자로서 처신은 아주 적절하지 못했다.”

국무총리가 서울시 정책담당자를 사실상 특정해서 비판한 건 이례적이다. 총리의 비판은 정부가 부동산 공급대책을 발표한 지난 8월 4일 서울시 김 본부장이 브리핑에서 “공공재건축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애초 서울시는 별로 찬성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딴소리를 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고밀도 개발과 관련한 층수 제한을 풀 권한은 서울시에 있다. 당장 서울시가 반대하면 정부의 공급대책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주택공급방안이 사전에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채 발표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자 기재부와 국토부, 서울시는 다시 공동으로 이날 오후 늦게 낸 보도자료에서 “공공이 참여하는 경우 최대 50층까지 허용하겠다는 입장에 이견은 없다”고 밝혔다. 어쨌든 적어도 서울시가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기로 한 정부의 ‘초기 결단’ 대신 (서울시가 주장한) 고밀도 개발을 수용했다는 것은 정 총리 발언에서 확인된다.

서울시와 정부 갈등 핵심은 ‘강남 재개발’

그러나 “박 전 시장의 유지가 그린벨트 유지 대신 도심 고밀도 개발이라는 대안이었다”는 최 전 보좌관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견이 나온다. 서울시장 비서실장을 역임한 천준호 의원은 8월 11일 기자를 만나 “서울시에서 고밀도 개발을 찬성하는 측이 있었지만 박원순 시장은 부정적인 시각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찬성하는 측에서) 마지막까지 설득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린벨트 해제 대신 원도심 고밀도 개발 대안을 정부 측에 관철시켰다’는 주장과 관련 “원도심 개발은 또 다른 이야기이며 (서울시와 정부 당국 간 논쟁의) 핵심은 강남 재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강남 재개발의 경우 용적률을 제한하는 대신 그동안 사업성이 안 나와서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못 하는 곳에는 공공재개발을 통해 질 좋은 공공임대나 분양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밀도 개발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나온다. 김석수 직접민주주의 연구원장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대의는 차치하더라도 정보통신 발달과 코로나 이후 비대면 사회가 보편적 삶의 원리가 되는 마당에 도심을 고밀도 개발한다는 것은 시대적 추세와 반대로 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문제로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현재도 도심에는 텅 빈 사무실이 많은데 행정조치나 시행령 개정으로 주거용으로 쓸 수 있도록만 해줘도 신개발이나 재건축은 안 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굳이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안 해도 얼마든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공급이 가능한데 고밀도 재개발이 대안이라는 것은 콘크리트 토건족이나 떠올릴 발상이라는 비판이다.

“박원순 시장은 고밀도 재개발에 마지막까지 부정적인 시각이었다”는 증언과 관련 앞서 서울시 고위 인사는 “박 시장이 흔쾌히 동의하는 입장은 아니었고 주변의 시민사회 출신 측근들은 내켜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그린벨트 사수, 도쿄 등 해외 대도시의 도심개발 사례에 대한 긍정적 인식, 도심 고밀도 개발을 주장하는 측근 인사들에 대한 신뢰 등 때문에 공식회의에서 결정 추진했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박 시장은 시민사회 출신들보다 글로벌 대도시 발전에 대한 시각이 명확했다”며 “그래서 잠실운동장 자리에 컨벤션센터 등을 들여놓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승인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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