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일하는 국회’ 효율성 주장… 통합당 ‘의회 민주주의’ 협의 강조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 소위원회에서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안건을 표결에 부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가 지난 5월 말 막을 내리면서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6월 16일 국회 법사위 첫 전체회의에 상임위 강제 배정에 항의하는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해 좌석들이 비어 있다. / 연합뉴스
전 의원이 이 법안을 낸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8월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전 의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위 위원들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광역지자체에도 하도급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자는 개정안이었다. 이 법안은 한 의원의 반대로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법안소위에서는 단 한 명의 위원이라도 반대하면 의결하지 않고 다음 법안소위로 넘어가는 관행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전 의원은 지난해 8월 법안소위에서 “국회법에 따르면 다수결로 하게 되어 있다”면서 “그것이 13대 국회부터 아무런 근거도 없이 협의·합의 관행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법안소위 만장일치도 그동안 관행
현행법에서 법안소위는 상임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돼 있다.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법안소위에서는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통과되는 관행이 있다. 단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그다음에 열리는 법안소위로 넘어간다. 하지만 다음 법안소위에서는 다른 수많은 법안이 쏟아지기 때문에 이전에 통과되지 못한 법안은 사실상 논의할 시간조차 없다. 결과적으로 단 한 명이라도 소위 위원이 반대하면 그 법안은 결국 국회를 통과할 수 없게 된다. 전 의원 측은 “일부 국회의원이 만장일치를 ‘아름다운 관행’이라고 표현하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다”면서 “한 소위 위원이 개정안에 대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인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몇 건의 개정안이 여러 차례 법안소위에서 일부 위원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자, 전 의원은 2018년 국회입법조사처에 ‘상임위 법안소위 의결방식’에 대해 입법조사 회답을 의뢰했다. 입법조사처는 ‘법안소위에서 한 명이라도 반대하는 의원이 있으면 의결하지 않는다는 것은 13대 국회 이후 자리 잡아 온 ‘협의에 입각한 국회 운영 및 위원회 운영의 관행’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며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님’이라고 해석했다.
21대 국회 개원 후 전해철 의원실에서는 민주당의 ‘일하는 국회추진단’에 이 법안을 제출했다. 추진단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 등의 국회법 개정안을 마련해 의원총회를 거쳐 당론 법안으로 발의할 계획이다. 전 의원 측은 “일하는 국회법에 법안소위 표결에 관한 개정안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21대 국회는 유독 ‘관행’과 ‘국회법’ 사이에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은 법사위원장 몫 때문에 촉발됐다. 미래통합당은 18개 상임위원장 중 법사위원장만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법사위원장은 늘 야당 몫이라는 관행이 있다는 것이다.
16대 국회까지 원내 1당의 몫이던 법사위원장 자리는 17대 국회 때부터 야당 몫이 돼 왔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상임위원회를 나누는 합의에서 법사위원장은 야당인 한나라당의 몫이 됐다. 이후 법사위원장은 줄곧 야당 몫이 돼 왔다. 하지만 이 관행은 20대 국회 전반기에 일시적으로 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새누리당(미래통합당의 전신)에 한 석 차이로 제1당이 됐다. 국회 개원 협상에서는 불과 한 석이라는 차이를 놓고 여당인 새누리당과 야당인 민주당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국회의장직과 상임위원장 몫을 놓고 각 당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결국 국회의장직을 가져오고, 법사위원장을 포기하는 선에서 양보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법사위원장 대신 예결특위 위원장을 갖고 왔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6월 16일 상임위원회 강제 배정에 항의하며 박병석 국회의장실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대 국회 전·후반기 달라진 입장
2018년 20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에서는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 2017년 5월 대선으로 민주당은 여당이 됐고,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은 야당이 됐다. 법사위원장은 그대로 한국당 몫이 됐다. 전반기에는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차지했다가, 후반기에는 야당이 되면서 다시 야당의 몫이 된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게 된 것은 20대 국회의 법사위 운영 탓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권성동(전반기)·여상규(후반기) 법사위원장이 법사위를 맡았다. 민주당이 원했던 법들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에 가로막혔다. 민주당에서는 법사위에 표창원·이철희·박주민·백혜련·김종민 의원 등 쟁쟁한 공격수들을 배치했지만, 법사위원장의 벽에 부딪혔다. 법사위 위원이었던 표창원·이철희 전 의원은 21대 총선에 불출마한다고 선언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20대 국회 법사위에서 일어난 온갖 정치적 논란이 이들 초선 의원이 불출마하게 된 원인이었다고 보고 있다.
21대 국회는 6월 15일 본회의에서 법사위를 비롯한 6개 상임위의 위원장을 선출했다. 여야 개원 협상이 이뤄지지 않자, 여당이 여당 몫으로 제시한 상임위의 위원장을 우선 선출한 것이다. 통합당만 이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국회법에 따르면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게 돼 있다. 하지만 역대 국회에서는 관행적으로 개원 협상에서 여야가 합의로 상임위원장을 배분한 후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다.
기존 관행을 깨고, 21대 국회의 전반기 법사위원장에는 민주당의 윤호중 의원이 선출됐다.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이번 총선 결과는 20대 국회에 내린 국민의 냉엄한 평가였다”면서 국민이 ‘일하는 국회’를 요구한 만큼 걸림돌이 됐던 법사위원장 문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일하는 국회를 위해서는 법사위원장을 여당 몫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대 국회의 법사위 평가에 대해 권영세 통합당 의원은 “20대 국회 법사위만 놓고 민주당이 법사위의 폐해를 말하지만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차지했던 18대 국회, 19대 국회의 법사위에서는 그 폐해가 더 심했다”고 말했다. 역지사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관행’과 ‘법대로 국회법’ 사이에는 ‘의회 민주주의’와 ‘일하는 국회’라는 제1야당과 여당의 시각차가 존재한다.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라는 효율성을 주장하며 국회법을 꺼내들었다. 통합당은 ‘관행’을 주장하며, 협의라는 의회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조해진 통합당 의원은 “국회법대로의 표결은 의회 민주주의에 있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수단”이라면서 “국회의 관행은 일종의 관습법인 만큼 국회법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국회법에서도 회기결정이나 의사결정에 있어서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를 거치도록 돼 있다”며 “관행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교섭단체 간 협의, 또 그다음이 국회법”이라고 말했다.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6월 11일 국회의장실에서 만나 원구성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300명의 국회의원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의원 개개인은 그 자체로 입법기관이다. 모든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조해진 통합당 의원은 “의석 숫자로 할 것 같으면 굳이 300명의 의원이 토론하고 심사하고 절충하고 협의할 필요가 없다”면서 “국회법대로 하자고 하면 법안을 심사할 필요 없이 그대로 표결해서 통과시키면 된다는 논리”라고 말했다. 300명의 의원이 심사하고 협의한 결과가 입법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300명의 국회의원이 가진 입권 권한을 제대로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권을 통해 다른 상임위의 윗자리에 있게 되면, 300명의 의원이 각각 상임위 활동을 하고 개별적인 입법활동을 할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법사위 등 일부 소수 의원에게 의회 권력이 과도하게 주어진다면 300명 의원 개개인의 입법 기능은 불필요하게 된다”고 말했다.
의사일정 합의도 관행의 일종
국회에는 ‘법사위원장 야당 몫’, ‘상임위원장 배분 교섭단체 대표 합의’, ‘법안소위 만장일치’ 등의 관행 이외에도 다른 관행들이 있어왔다. 국회의 한 인사는 “국회법에 짝수 달에 임시회를 열도록 하고 있지만 여야 원내대표가 의사일정을 합의해야 겨우 열리는 것도 관행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국정감사에서 증인·참고인을 결정할 때 여야가 반드시 합의해야 결정되는 것도 국회에서는 하나의 관행”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을 제1당에서 차지할 경우 국회도서관장은 야당 몫이라는 관행도 있다. 이 인사는 “국회도서관장이 야당 몫이라는 관행도 야당에 대한 배려라는 아름다운 관행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전문가를 임명하는 것이 도서관 운영을 위해서는 합리적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관행도 시대에 맞춰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 협상이 양보와 타협 없이 계속 ‘강 대 강’으로 맞서는 이유에는 최근의 정치적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야합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여야가 서로 양보를 하면서 결국 타협을 이뤄냈다”면서 “하지만 전직 대통령과 관련한 일이 터진 후 여야가 서로를 협상 상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 간주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가 언급한 ‘전직 대통령 관련한 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이다. 그만큼 여야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국회 안팎에서는 관행과 국회법 사이의 여야 협의를 강조하고 있다. 권영세 통합당 의원은 “관행이 없어지는 순간 여야 정쟁은 더 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행이 없어지면 새로운 룰을 놓고 여야가 더 싸움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국회 자체가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인 만큼 관행과 국회법 사이에서 절묘한 합의점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여야 간 협치가 잘되면 바람직하겠지만 불가피하게 정쟁이 격화된 상황에서는 비효율적 관행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효율적 관행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