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일찌감치 시스템 공천을 공언했다. 당 지도부의 입김을 없애고 공천을 투명하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현역 의원이나 청와대 출신 후보는 반드시 경선을 거치도록 했다. 사실상 중앙당에서 내리꽂는 전략공천은 총선 불출마 의원의 지역구로 한정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해찬 대표가 시스템 공천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면서 “대표의 측근 인사가 공천에서 혜택을 받지 못했을 뿐더러 청와대 출신 인사들에게는 경선 때 경력 표시에 대통령 이름을 쓰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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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통합당에 비해 당내 경선이 훨씬 더 많았다. 경선은 대부분 일반 여론조사 50%, 권리당원 투표 50%로 이뤄졌다. 많은 경선이 실시됐지만 시스템 공천 결과는 통합당에 비해 밋밋했다. 당내 주류 의원들에게는 내부 경쟁자가 거의 없었다. 사실상 단수 공천이 되거나 경선에서 승리해 공천권을 확보했다. 특히 86세대 운동권 정치인은 대부분 무난히 본선에 진출했다. 반면 일부 비주류 의원은 경선에서 탈락했다. 청와대 출신 인사는 비록 경선을 거쳤지만 많은 인사가 공천을 받았다는 외부의 비판을 듣게 됐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출신 인사는 이번 총선에 워낙 많이 신청했기 때문에 떨어진 사람들이 다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숫자가 많아졌다”며 “만약 경력에 대통령 이름을 넣었다면 그 현상이 더 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가 대통령 이름을 빼기로 하는 등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민주당의 전략공천 가운데는 유난히 법률가가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수진·소병철·김남국·김용민·이탄희 예비후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전략공천으로 현역의원 불출마 지역에 출마하거나 전략적으로 통합당과 결전을 벌여야 하는 곳으로 투입됐다. 이수진 전 판사는 서울 동작을에서 역시 판사 출신인 나경원 통합당 의원과 맞대결을 펼친다. 김용민 변호사는 경기 남양주병에서 검사 출신인 주광덕 통합당 의원과 맞붙는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통합당도 마찬가지지만 민주당의 공천을 보면 21대 국회에서 법 논리 싸움에서 일전을 벌일 각오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패스트트랙이 만들어 놓은 정치권의 새로운 공천 흐름”이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의 공천은 ‘친문’과 ‘투쟁력이 있는 인물’로 특징된다”면서 “공천 자체에서 ‘투쟁력 있는 친정체제’라는 키워드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2월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제1차 회의에서 박병석 공동선대위원장이 지역별 승리를 다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미래통합당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3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에 참석하며 재심관련 서류를 건네는 한 예비후보(왼쪽)를 지나치고 있다./ 연합뉴스
시스템 공천의 결과로 민주당 내부의 부작용은 예전 총선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유승희 의원 등 일부 후보들이 여론조사 기관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또한 전략공천에 대한 반발이 있었지만 예전 총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에서 대부분의 유력 후보에게 경선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한 만큼 불만의 소지를 아예 없앤 것이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민주당은 너무 무난하고, 분열을 피하는 공천을 선택해 평가할 거리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당내 분란은 없었지만 예전에 비해 공천의 역동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와우!’라는 감탄사는 없었지만 ‘왜?’라는 논란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통합당에서 보는 민주당 평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통합당의 한 인사는 “민주당의 공천을 보면 철저히 여론조사에 기반을 둔 시스템 공천이어서 기계적이란 느낌이 든다”면서 “전략공천조차 전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밋밋했던 민주당의 당내 경선
민주당이 시스템에 기반을 둔 공천이었다면 통합당은 인위적인 공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형오 공관위원장의 인위적 물갈이가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특히 영남의 다선 현역의원이나 중진 정치인은 공관위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불출마 압박을 받았다. 그 결과 다선 의원이나 중진 정치인들이 대거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공천에서 탈락했다. 물갈이가 대폭 이뤄진 것이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나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공천을 받지 못했고, 이주영·권성동·강석호 등 다선 의원들이 컷오프됐다. 이 과정에서 정작 황교안 대표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김형오의 입만 두드러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때문에 공천이 아니라 김 위원장의 ‘사천(私薦)’이라는 말까지 터져나왔다. 통합당의 한 인사는 “김 위원장의 친소 관계가 공천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통합당의 다른 한 인사는 “김 위원장이 황 대표를 위해 차기 대권주자인 홍준표·김태호 전 지사를 치는 대신, 자신의 칼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시스템 공천을 표방한 민주당에서 원혜영 공관위원장의 존재감은 아예 드러나지 않았고, 공천의 칼을 휘두른 김형오 통합당 공관위원장은 매일 언론의 주목 대상이 됐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통합당은 현역의원의 물갈이를 하면서 공천 혁신에 방점에 뒀으나 공천이라는 것은 원래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천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통합당 내부에서는 황보승희(부산 중구·영도 예비후보) 등 김 위원장과 가까운 인물들이 공천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친박 의원들이 대거 불출마하거나 공천을 받지 못했고, 아니면 험지로 나가야 했다. 때문에 감정에 치우친 공천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반면 친이계(친이명박계)와 유승민계, 안철수계 예비후보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공천 결과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주류 친박이 배제되고 이에 대한 부작용까지 감안해 탄핵 관련 친이 인사까지 골고루 잘랐다”면서 “참신한 인물은 보이지 않지만 향후 통합당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분위기는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인위적 물갈이 두드러진 통합당
김 위원장의 공천은 물갈이에는 성공했지만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통합당의 한 인사는 “악재만 잘라냈을 뿐 그 자리에 새로운 인재가 들어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성철 소장은 “비우기는 잘했지만 잘 채우지 못했다”면서 “준비가 덜 된 채 자르기만 하다보니 나중에는 대안을 찾기에 급급했다”고 평가했다.

2월 24일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관위 위원들이 마스크를 쓴 채 선거장비(선상투표용 쉴드팩스)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통합당은 민주당에 비해 단독공천이 훨씬 많았다. 때문에 민주당에 비해 경선을 치른 지역구가 훨씬 적었다. 공관위에서 단독공천을 하자, 경선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지역구 예비후보들이 대거 반발했다. ‘무소속 출마 불사’를 외치는 예비후보들도 하나둘 나타났다. 권성동 의원이 강원 강릉 지역구에서 컷오프되는 등 막바지 공천마저 논란이 일자, 급기야 3월 12일 황교안 대표가 나서 공관위에 재의를 요구했다. 황교안 대표-김형오 공관위원장의 힘겨루기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선대위원장 설이 나도는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조차 김 위원장의 공천을 문제 삼으면서 ‘공천-사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져나가고 있다.
통합당의 텃밭인 영남이나 강남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들이 서울 험지로 내몰리면서 또 다른 역풍도 감지되고 있다. 험지로 분류된 서울의 해당 지역구에서 ‘중진 낙하산’에 대한 반발 심리가 일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버리는 카드’라고 하지만 다른 인근 지역에도 부정적인 효과를 낳게 됨으로써 수도권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두 당의 공천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공천 전략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로 요약된다. 새로 정치권에 충원된 인물 중 공천 콘셉트를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안일원 대표는 “두 당이 새로 공천한 인물을 보면 대동소이하다”며 “공천의 핵심 키워드가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형식 소장은 “예전 총선에서는 민생·경제·통일·세대교체와 같은 콘셉트가 있었는데, 이번에 양당에서 충원된 후보를 보면 콘셉트가 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양당 공천의 비교 우위 평가에서는 통합당 쪽에 더 점수를 주는 분위기다. 이슈·영입·전략 공천이 잘 됐다기보다 ‘공천 물갈이’가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장성철 소장은 “국민은 물갈이를 많이 한 쪽을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홍준표·김태호 전 지사와 같은 거물 정치인의 공천 탈락과 불복 역시 통합당의 물갈이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신율 교수는 “역대 선거에서는 물갈이를 잘한 쪽이 대부분 승리했다”면서 “많이 자른 것보다 거물 정치인을 자른 것에 유권자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형식 소장은 “통합당이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상식 이하의 인물을 족집게식으로 끄집어냈다”면서 “이에 비해 민주당은 청와대 출신이라든지, 86운동권 출신이라는 경력만 눈에 띄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합당의 물갈이 공천 효과가 실제 선거 판세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확산 때문이다.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에 유권자들의 관심은 코로나에 집중돼 있을 뿐 공천 이슈나 후보에 대한 관심은 예전 총선에 비해 대폭 줄어들었다. 안일원 대표는 “코로나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블랙홀이 됐기 때문에 정치 이슈는 왜소해졌다”면서 “어느 당이 물갈이 공천을 잘했느냐는 것보다 정부의 방역 능력이 다른 나라보다 더 우수한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보수진영 통합 이후 통합당의 지지율 상승이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서 “오히려 투표일인 4월 중순의 코로나 국내 상황과 해외 상황이 표심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민주당은 ‘코로나 정국’의 효과를 보고 있다.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 덕분이다. 홍형식 소장은 “코로나 정국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박원순 서울시장·이낙연 전 총리 등 민주당 소속 차기 대권주자들이 부각되면서 민주당이 이전의 정당 지지율을 유지하는 프리미엄 효과를 누리게 됐다”고 말했다.
표심의 주요 변수가 될 ‘코로나 민심’
시스템 공천과 인위적 물갈이의 대결은 4월 15일 각 지역구에서 승부를 가리게 된다. 안일원 대표는 “수도권 승부가 중요한데,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수도권에 대거 의석을 확보했다”면서 “이들 수도권 현역 민주당 의원이 대부분 다시 공천을 받게 됨으로써 지역구에서는 사실상 현역 프리미엄 10%를 안고 가는 형국이 됐다”고 말했다. 공천 결과 수도권에서는 여전히 민주당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비례대표 47석을 뽑는 정당투표가 있긴 하지만, 총선은 대선과는 달리 253개의 각 지역구에서 의원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 선거다. 지역구에서의 승패가 사실상 승부를 가른다. 때문에 물갈이 효과보다 물갈이로 빠져나간 지역구에 어떤 인물이 오느냐가 본선에서는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 정치권의 이야기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 민주당에서도 인위적 물갈이를 더 많이 해봤지만 성과가 그대로 나타나지는 않았다”면서 “예전과 달리 요즘은 중앙당의 정치적 인물보다 지역 밀착형 인물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시 의원 출신의 한 인사는 “큰바람이 불면 당을 선택하지만, 큰 이슈가 없을 때는 지역에서 표를 다진 인물이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때문에 새로 영입된 인사들이 선거 과정에 지역구에서 어떻게 능력을 발휘하느냐가 각 당의 총선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