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여당 강·온 입장 갈려 단속법안 마련 쉽지 않아
8월 28일 오후 네이버와 다음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가짜뉴스 아웃’이 상위권에 올랐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에,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네티즌들이 ‘가짜뉴스’를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조 후보자 측 역시 몇몇 의혹성 보도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조 후보자는 8월 21일 자신의 딸이 고교 시절 논문 ‘제1저자’ 등재로 대학에 부정입학했다는 의혹에 대해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말했다.
‘가짜뉴스’는 지난해 내내 문제가 됐던 사안이다. 유튜브 1인 방송을 통한 가짜뉴스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가 다시 위력을 발휘한 것은 공교롭게도 이번 8월 개각의 청문회 정국에서다. 조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쏟아지면서 덩달아 가짜뉴스도 기승을 부렸다. 더구나 이번 개각에서는 가짜뉴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방송통신위원장에 한상혁 후보자가 지명됐다. 이효성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임기 1년을 남긴 채 물러났다. 이 전 위원장이 물러나게 된 데에는 가짜뉴스가 원인이 됐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가짜뉴스에 대해 원칙적인 대응 입장을 유지한 이 전 위원장과 특단의 대책을 요구한 청와대·정부가 서로 갈등을 빚었다는 것이다.
미온적 대처한 방통위원장 사퇴
문화연대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진보 성향의 미디어 시민단체는 8월 2일 이 전 위원장의 사퇴에 대해 논평에서 이 전 위원장이 ‘범정부 허위·조작정보 근절대책’을 발표하려 했으나 정부에서 더 강력한 규제를 요구했다고 언급했다. ‘나왔다고 한다’ ‘후문이다’라는 완곡한 표현이 들어갔지만, 가짜뉴스를 둘러싼 정부와 방통위 사이의 갈등을 표현한 것이었다.
가짜뉴스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입장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확연히 달라졌다. 보수 쪽 유튜브 방송이 더 많은 가짜뉴스를 양산하면서 청와대와 정부가 대응에 나선 것이다. 반면 보수여당 시절 댓글 등 온라인 민주주의에 부정적이던 한국당은 야당이 된 후 보수 쪽 유튜브 방송에 대한 대응을 ‘탄압’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지난 8월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튜브와 정치 편향성, 그리고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토론회에서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유튜브 뉴스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 결과(8월 조사)를 발표했다. 55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유튜브에서 유통되는 정보를 정부가 규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진보는 찬성이 62%였지만, 보수는 반대가 69%였다. 중도는 찬성과 반대가 서로 비슷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를 보수 측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나 인사들은 보수 측 유튜브 방송이든, 진보 측 댓글이든 ‘표현의 자유’에 방점을 찍고 있다. 어떤 규제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민주당 간사인 김성수 의원은 “가짜뉴스 근절에 대해 진보 측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고 주장하고, 한국당에서는 보수 유튜브 방송을 탄압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국회 차원에서는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최근 가짜뉴스 대책을 둘러싸고 강·온의 입장이 달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의 한 가짜뉴스가 내부에서 논쟁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뾰족한 묘수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여당 내부에서 이 같은 갈등은 내내 지속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보수정권에서 민주당이 야당일 때 끝까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웠다”면서 “지금 여당이 됐다고 해서 입장이 달라지면 안 된다는 의견이 당내에서 많았다”고 말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때문에 당내에서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강경파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온건파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졌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와 총리실에서 강경하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당에서는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짜뉴스 단속 법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국회에서는 20대 들어 김관영 의원(바른미래당), 안호영 의원(민주당), 송희경·강효상·김성태 의원(자유한국당), 박광온 의원(민주당) 등이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법안을 내놓았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여당 의원의 가짜뉴스 대책 법안에 대해 특히 말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뉴스 관련 법안들은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한국당의 한 의원 측은 “민주당 내부에서 강경파와 온건파의 목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한국당으로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민주당이 내는 법안에 대해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어 무조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야당 시절 표현의 자유 주장
가짜뉴스에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는 정부에 대해 한국당 의원들은 이를 비판했다. 지난해 방통위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한국당이 내놓은 법안에도 가짜뉴스를 근절하는 대책이 들어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성수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초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이 낸 9개 관련 법안을 언급했다. 김 의원은 “지금 (한국당에서) 왜 자꾸 (가짜뉴스 대책 마련에) 총리가 나서냐고 말씀을 하는데, 강효상 (한국당) 의원이 낸 법안의 주요 내용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가짜뉴스대책위원회를 만들도록 되어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가짜뉴스 대책에 관한 한 일관된 입장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당은 한상혁 방통위원장 후보자에 대해서 경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한 후보자는 8월 12일 청문회 준비 장소로 처음 출근하는 길에서 기자들을 만나 가짜뉴스에 대한 척결 의지를 밝혔다. 한 후보자는 “법률가여서 표현의 자유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그 부분을 강조해왔다”면서 “하지만 지금 문제되는 가짜뉴스 내지 허위·조작정보는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 밖에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이효성 전 방통위원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당 과방위 의원들은 8월 25일 “이 전 위원장은 가짜뉴스 대응 지시에 반해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왔다”며 “청와대에 반기를 들었다고 사실상 경질된 셈”이라고 말했다. 여당은 증인 채택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의원 측은 “한국당이 이 전 위원장에 대해 의무 출석을 전제로 참고인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 역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반대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당으로서는 이 전 위원장이 ‘표현의 자유’ 원칙을 고수한 만큼 한 위원장 후보자에게도 남은 1년의 임기 내내 동일한 원칙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김성수 민주당 의원은 “가짜뉴스에 대한 실질적인 업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하지만, 방통위는 행정기관으로서 가짜뉴스가 근절돼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아야 했다”면서 “그런데 이 전 위원장은 학자적 입장을 내세우며 내내 미온적이었다”고 아쉬워했다. 김 의원은 “새로운 법안을 마련하기는 힘들지만 방통위원장은 가짜뉴스 근절에 대한 의지를 표명해 밖으로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 후보자가 기존의 법 틀 안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가짜뉴스를 막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